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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운 Oct 10. 2024

9, 새로운 세계로 밀어 넣어 준 프리마켓

글을 쓰는 나로 살지 못할 때는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불만이 솟구쳐 오른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아내는 한 달 전부터 토요일은 프리마켓을 나가야 한다며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얘기를 했다. 그때도 귀찮은 투로 말했지만 막상 시간이 흘러 당일이 되니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발목을 잡는다. 물론 글은 오늘 못 쓰면 내일 쓰면 되지라는 생각을 갖다가도 내일이면 또 다른 일들이 글을 못 쓰게 만든다. 그래서 주말이면 편한 마음으로 글쓰기에 힘을 기울여 보자고 애쓰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만만치 않다. 늘 익숙한 환경이고 일들이지만 이럴 땐 혼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런 간섭 없이 자유롭게 글을 쓰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으니 말이다. 현실성 없는 희망에 절규를 토해내 본다.


아침 일찍 어제 실어 둔 물품들을 다시 점검해 프리마켓을 하는 장소에 부랴부랴 달려왔다.

이른 시간이지만 다른 분들은 벌써부터 자리를 정하고 오늘 판매할 팔 물품들을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치열한 또 다른 삶의 현장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정리하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지며 아내가 무엇 때문에 프리마켓을 가자고 하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된다. 아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혼자서 카페라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두 달도 아닌 벌써 5년째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갇힌 공간에서 버티기가 힘들 만도 한데 전혀 내색이 없다. 책임감이라는 의무 때문에 날마다 이겨내야 하는 싸움을 이렇게라도 해서 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가게도 알리고 수제청을 팔아 생계에 도움도 되겠지만 그것보다 자연을 벗 삼아 바다도 보고, 산도 보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잎을 감상하면서 숨통을 이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재촉했않았을까? 그래야 자기도 살고 가족도 살고 모두가 사는 비결일 테니.


아내와 난 결혼한 지 27년이 되었다. 세월이 이렇게 빨리 지나갔다니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이 이제야 실감 난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큰 딸이 내가 결혼할 때쯤 나이가 되었다. 아무것도 가진 거 없고 가난한 집안에 나 하나 믿고 시집온 사람이 내 아내다.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엄청난 시련과 아픔 고비가 있었는지 말해 무얼 할까. 장모님과 형제간들을 비롯해 일가친척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인내와 결심이 없었다면 우리 부부의 인연은 아마도 맺지 못했을 것이다.


직장도 미래도 불퉁명하고, 홀 어머니와 9남매 이런 환경을 가지고 있는 집안에 시집을 왔다. 결혼 비용과 살 집까지 아내가 다 준비했었다. 이제까지 살면서 남편인 나에 대한 실망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근데 지금까지 결혼했다고 후회한다거나 원망스러운 투로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참고 견뎌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욕심만을 내세운 죄스런 마음에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는 미안함. 글쓰기 한다고 장애물로 여겼던 일들을 디딤돌로 삼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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