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쓰기를 독학으로 배우고 있는 중이다. 처음부터 글쓰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쓰기보다는 읽기가 먼저였다. 젊은 시절 신앙이 돈독했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신앙서적을 읽고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통찰에 관한 문장들을 사랑했었다. 읽기에서 쓰기로 전환은 아주 우연히 일어났다. 내가 속해있는 직장 밴드를 통해 전국에 있는 동료들과 소통하면서였다.
그때는 노동 강도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집배현장에서는 집배원들이 20명 정도가 과로사로 세상을 달리 했다.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나 역시 너무 힘들어 죽을 거 같았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글이라도 써 부당한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볼품없는글이었지만많은 동료들이 공감해 주었다.그들이 공감해 주지않았다면어쩌면 나의 글은 산산이 부서져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동료들의 신망을 얻어 조금이나마 글쓰기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다 한동안 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다시 글을 쓴 계기는 김도형 작가를 만나면서였다. 이분의 글을 보면서 불현듯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때가 벌써 4년 전이다. 거짓말 같지만 미친 사람처럼 글을 쓰는 일에 빠져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줄곧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까?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을 연결시켰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무리한 나머지 두 눈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평소에도 시력이 안 좋아 늘 걱정이었는데 결국 두 눈을 수술을 해야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의사로부터 듣고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멈춰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진 시간들이었다.
수술 후 충전과 회복을 통해 지난날의 글들을 되돌아보면서 쓴 글들이 "형식은 맞는지, 문법에는 오류가 없는지, 구성은 괜찮은지 글에서 주제는 담아냈는지" 찬찬히 점검해 봤다.
"무엇보다도 글의 표현력은 단어와 단어의 연결을 정확히 하는 것인데" 알맞은 단어를 적재적소에 넣지 못했음을 발견했다. "동사가 약하면 단어의 조합이 엉성해 문장이 단순하고 평범해진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문장에 형용사를 다채롭게 구사하면 문장이 특별해 보인다." 그런데 나의 글은 형용사를 너무 많이 남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뿐만 아니라 부사, 수식어, 조사 모두 올바르게 구사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쓴 대부분의 글들이 이러한 충족을 만족시키지 못했음을 책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분석할 수 있었다.
독자는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말할 수 없으나 안 좋은 글은 당장에 알아본다.
지금도 그때나 여전히 마찬가지다. 만족스러운 글을 쓰지 못함을 절실히 느낀다. 아는 것과 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형식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너무 뻔한 글, 누가 읽어도 흥미롭지가 않을 글 같다. 가슴을 울리고 흔들만한 글들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왜 글을 써야 하는가? 물음 앞에 다시 서게 된다.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앞으로 계속 쓴다고 해도 좋은 글을 쓸 자신도 없다. 그래도 서툴고 어설프지만 안 쓰고 후회하느니 후회하면서 지속적으로 써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독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