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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운 Oct 15. 2024

14, 사랑 행복

요즘 퇴근 시간이 빨라졌다. 유연근무제 이후 오후 5시면 퇴근을 해 큰 딸을 데리고 아내가 있는 가게로 향한다."저녁에 뭐 먹지?" 똑같은 질문을 퇴근길에 서로에게 늘 한다. "엄마하고 상의해 봐야죠."라고는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 오늘 저녁은 뭐 먹나요?" 전화기너머로 글쎄 집에 가 냉장고를 한번 털어봐야지?라는 답변이 들린다. 아내와 셋이서 집에 오면 아내와 큰 딸은 냉장고를 털어서 뚝딱 먹음직한 한 상을 차려낸다. 끼니마다 요리를 하는 게 귀찮을 법도 한데 내색하지 않고 어느 요릿집 주방장 보다도 척척 잘해 내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아내가 쌀을 씻기 시작하면 큰 애는 웍을 꺼내 기름을 한 바퀴 두르고는 계란말이 어묵볶음 요리를 마법사처럼 기똥차게 한다. 내가 보기에는 아내보다 큰 딸이 요리하는 걸 좋아하며 즐겨하는 것 같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아내도 요리는 별로다. 근데 우리 부부의 유전자를 닮지 않고 요리를 잘하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어떤 날에는 각종 채소와 두부를 넣고 된장국을 끓여내기도 하고, 볶음밥과 오이무침은 기본으로 쓱쓱 해낸다. 심지어 파스타, 찹스테이크, 굴전, 새우를 넣고 만든 감바스 이태리 요리도 스스럼없이 밥상에 올려놓기도 한다. 먹기만 하는 난 미안해 사랑스러운 딸에게 은근슬쩍 고맙다는 말로 모든 것을 대신한다.

그런 마음이 미안하게 "잘 먹어줘서 감사하다"라고 되레 인사를 건넨다. 딸이 간혹 늦게 출근하는 날이 있다. 챙겨 출근하기도 바쁠 텐데 점심을 집에 와 먹는 나를 위해 김치찌개를 끓여놓고 나간다. 탁자에는 "아빠 파이팅!! 이것 드시고 힘내요!"라고 적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려온다. 만든 음식에 딸도 보이고 딸의 사랑도 보인다. 자기 일인 양 묵묵히 감당해 내는 딸을 보면서 지난날 나의 아픔 때문에 다정다감하게 대해주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스러움이 눈물짓게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귀찮고 힘든 일을 아내를 대신해 희생하는 큰 딸에게 존경을 넘어 고귀한 사랑을 느낀다. 큰 딸아이는 피아노를 전공했다. 지방에서 피아노를 전공해 서울에 있는 대학 가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물론 있는 집 자녀들은 예외일 수 있으나, 딸애한테 레슨을 받게 해 줄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다. 어느 지방전문대 실용음악과를 진학했다. 1년만 재수를 시켜 달라는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때 당시 말은 안 했지만 가진 것이 없는 부모를 원망 많이 했을 것이다. 한데 자기 뜻을 접고 따라 주었다.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오던 날, 우리 부부는 한없이 울었다. 미안함과 서운함이 북받쳐 집에 와서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어느 기관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 자기의 노력과 실력으로 입사한 딸에게 무한한 신뢰와 응원을 보낸다. 얼마 전 둘만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고백을 했다. 아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결혼하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아내한테 대충은 들었지만 직접 들으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응애응애 울며 태어나 아장아장 걸음마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결혼이라는 말을 들으니 와닿지 않았다.


마음에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 "벌써" 결혼할 시기에 이르렀다니 이상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며 미뤘다. 때가 되면 더 깊은 대화가 오가고, 또 사귀는 친구도 만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 사귀든 딸아이를 믿고 신뢰한다. 지금껏 해온 것들을 보면 충분히 신뢰하고도 남음이 있다. 결혼이라는 말을 들은 이후엔 큰 딸과 함께 하는 밥 한 끼 한 끼가 소중하게 여겨진다. 언젠가 떠나보내야 하겠지만 정신적 감정적으로 단단한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딸이  만든 음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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