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길

by 김종운

퇴근 후 감기 증상이 있어 생강라떼를 한잔 놓고 무슨 내용으로 쓸까 고민 중이다. 직장 생활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게 다소 부담은 되지만 현재까지는 무난하게 써 왔다. 경험하고 체험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매일 글감을 찾는다는 게 솔직히 부담이 된다.


이런 고민들을 어떤 분에게 얘기를 하니 없으면 없는 대로 솔직 담백하게 써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주셨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게 어떤 내용으로 무엇을 쓸까. 출근해서 일을 하는 하루 내내 똑같은 고민을 한다. 어떤 날은 쉽게 찾기도 하고 잘 쓰이는 날도 있다. 그러나 업무가 바쁘고 쫓기듯 하루를 보내다 보면 이런 고민들을 생각할 조차도 못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거기다가 민원인들 하고 실랑이라도 벌어지는 날은 머리가 지끈지끈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아침에 나올 때 길에 대해 쓸까 아님 꽃에 관해 쓸까 고민을 했었다. 47살부터 방황 아닌 방황을 시작하면서 통영에서 시작에 인근 주변 지역 주변을 돌아다니며 많이 걸었다. 정호성 시인의 말처럼 '길이 끝나는 곳에 또 다른 길이 있다.' 걸어보니 그랬다. 통영에 살면서 이제껏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골목 길들도 걸어봤다.

길이 끝나면 없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또 다른 길이 연결되어 있었다. 토요일 주일날은 새벽 일찍 일어나 목적 없이 마음 가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3년은 걸었던 것 같다. 고독과 자유, 사색, 방황을 하면서 말이다. 지친 날엔 나무 밑에 누워 책도 읽고 글도 썼다.

무념무상으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낯선 곳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으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면서 놀라운 사실들을 하나씩 발견했다. 다음에 글을 쓸 기회가 있겠지만 꽃들이 주는 의미와,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다. 자연이 주는 신비스러움을 통해 이 우주 공간에서 아무것도 아닌 나를 발견했다. 비가 와도 걸었고 한겨울 날씨가 추워 모두가 얼어 죽을 것 같은 날도 걸었다. 자유롭고 홀로 된다는 느낌이 좋아 무작정 앞만 보고 걸었다. 어떤 날은 길을 잃고 헤맨 적도 있다. 길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바로 찾아 돌아올 때 안도감과 희열은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산으로 바다로 걷다 보며 말로 다할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을 많이 본다. 만약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었다면 평생을 후회할 장면들과 경험들은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자연이 선사한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천수만 가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 계절은 각각 다르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하며 경험하게 밀어 넣어 준다.

봄에는 탄생하는 수많은 생명들, 여름에는 풍성한 자연들, 가을에는 옷을 갈아입는 모습, 겨울에는 모든 걸 벗어 버리고 떠나는 모습 속에서 어느 계절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없다. 눈으로 담고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며 가슴으로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1월부터 12월까지 피는 꽃들도 참 많이 봤다. 처음엔 무심코 지나쳤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난 꽃을 좋아한다. 꽃만 보면 사진을 찍는다. 이름도 몰랐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꽃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이런 꽃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 꽃은 언제 피고 꽃말은 어떤 의미를 두고 이런저런 뜻들을 알고 보면 세상 모든 꽃이 다시 보였다. 어느 꽃 하나 귀하지 아니하고 아름답지 않은 꽃이 없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곳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생명을 지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또다른 생명을 탄생 시킨다. 언젠가 꽃들에 대해서 좀 더 세밀하고 상세하게 쓸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오늘은 길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다.

사람들은 산티아고와 같은 유명한 길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을 한다. 다녀 온 사람들을 유튜브를 통해서 간접으로 만나 보았다.

사실 난 그리 거창한 곳에 가 보지도 않았고 언제 기회가 온다면 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내가 사는 주변에도 정말 좋은 곳이 많이 때문에 어느 정도 가 본 뒤에 생각해 볼일이다. 가까운 곳에 언제든지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길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길에서 삶을 느끼고 인생의 의미를 배운다. 시선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인식의 눈을 갖는다. 걷는 시간들 속에서 행복, 기쁨, 우울, 슬픔, 모든 다양한 감정들도 스쳐 지나간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길이 새로운 세상과 다양한 곳으로 인도했다.

걷기 전까지 난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생각도 좁고 보는 시야도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결과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호성 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이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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