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심 시인
《지리산의 신비》
싸앗보석 김은심 시인
남녘의 하늘 끝,
구름의 강이 흘러와 지리산의 품을 적신다
천왕봉의 이마 위에 맑은 새벽빛이 내려앉고
별빛의 씨앗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씩 깨어난다
그 빛들은 흙을 적시며 나의 심장 속으로 스며든다
고요한 숲길,
이끼 낀 바위 위에 맺힌 물방울 하나
천 년 전 스님의 기도가 거기 앉아 있다
돌부처의 눈빛은 여전히 부드럽고
그 미소에 우주는 한 알의 씨앗처럼 갇혀 있다
밤이 오면 호랑이는 사라졌어도
숲은 여전히 살아 있다
고라니의 숨결이 솔바람에 묻어오고
사람이 잃어버린 침묵의 심장은
지리산의 깊은 품에서 뛰고 있다
봄은 진달래로 불을 밝히고
여름은 계곡으로 비단길을 편다
가을 억새는 황금의 파도를 흔들고
겨울 설산은 하늘의 성전을 연다
네 계절은 사방의 제단처럼 돌고 돈다
새벽, 천왕봉에서 맞는 첫 해는
금빛 씨앗처럼 눈동자에 심어지고
노고단의 안개는 하루를 정화하는 향로가 된다
이 순간, 세상은 잠시
지리산의 손바닥 위에 얹힌다
계곡 물소리는 은빛 거문고를 켜고
바람은 산의 합창단이 된다
꽃잎 한 장, 나비 한 마리,
이곳에서는 모두가 악보의 음표가 되고
한 걸음마다 내 숨도 기도가 된다
지리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들을 줄 아는 이의 마음속에는
씨앗보석처럼 반짝이는 이야기들이 박힌다
인간이 잊은 첫 목소리,
침묵이 건네는 최초의 언어가 거기 있다
나는 오늘 이 길 위에 멈춘다
돌부처의 이슬을 손끝에 올리고
별빛 한 알을 가슴에 묻는다
이 산이 내게 건넨 맑은 눈물과 침묵은
내일을 살아낼 씨앗이 된다
그 씨앗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내 마음속에서 별이 되어 날아간다
언젠가 다시 이 산에 돌아올 때
나는 이미 지리산의 한 알의 씨앗,
한 줄기 별빛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