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미스터 션샤인

by 박철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와 고애신을 그리며.


유진 초이 귀하

돌아오지 말기를 바라오.

가을,

여긴 너무 위험하오.

허니,

저편에 있으시오.


잎이 지고 다시 돋는 것을 보며

또한 기다림을 배웠소.


기다림의 끝에 오는 것이

귀하든,

피멍 든 들녘이든


귀하가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내 마음은 그와 반대로 향하오.

가을은 물러선 계절이 아니라,

더 단단히 서는 계절이오.

바람 속에서도

내 마음은 한 치 물러섬이 없소.


귀하와 걷던 산길을 걸으며

그 발자국을 따라갔었소.

작금의 조선에서 그리움은 사치요.

허나,

때론 총보다 뜨겁고,

피보다 붉으오.

하여,

나는 오늘도

붉은 노을에 묻힌 동지들을 가슴에 품고,

귀하가 무사하기를 바라오.

내일의 햇살은

우리의 것이기를 —

쓸쓸한 가을이

더는 굳은 결심을 요구하는 계절이 아니기를.

간 밤 새벽녁 꿈에 당신이 왔었소.

허나,

당신은 당신의 조국에 서시오.

나는 나의 조국에 설 테니.

고애신으로부터



Dear 고애신

나는 당신에게로 가겠소.

가을,

맨해튼 시포트 항구에도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처럼 가을이 왔습니다.

돌아서 왔건만

결국 나는 당신을 향해 걷고 있다는 걸

늦게야 알았습니다.

가을,

당신은 더 단단해졌지만

나는 더 조용해졌습니다.

이국의 총을 쥔 낯선 사내의 손은

당신의 따뜻한 손을

끝내 잡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하여,

그리움은

나에게는 허락된 감정일지.

맨하튼 거리에 붉은 낙엽이 흩날리면,

그 안에 묻힌 당신의 이름을

나는 소리 없이 불렀소.

조국을 떠나 있었기에

당신을 알게 되었고,

조국을 버렸기에

당신을 사랑할 수 있었소.

부디,

당신이 지키고 싶은 나약한 조선이

당신을 지켜줄 수 있기를.

나는 이제 마지막 길을 떠나기로 했소.

그 길의 끝에서

당신이 무사하길 바랄뿐이요.

당신이 서 있는 곳이

조국이든

빼앗긴 들녘이든

그 너머에서

나는 당신을 향해

끝내 걸어가겠소.

당신이

이 편지를 손에 쥘 때쯤

나는 당신의 조국이 아니라

당신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일 거요.

부디,

그때까지 사시오.


그래야

나도 조선을 지킬 이유가 있지 않겠소.


유진초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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