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온다

어느 조용한 날의 기록

by 박철


가을이 온다


바람이 먼저 알았고

나는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계절은 너 없이도

오고야 말았다


그리워하는 일은

참 이상한 것이다

잊으려면

더 깊이 되새기고

눈을 감으면

더 오래 바라본다

가을이 온다


네 이름을 속삭여 본다

고개를 젓는다

풀잎 위 맺힌 이슬처럼

너는 내 삶에 얼룩이 되었다

편지 한 장,

쓰지 못한 이름을 몇 번이고 적어보다가

찢어버린다


문득

종잇장처럼 얇아진

마음을 뒤적이다가

네게 쓰다 만 편지 한 장을 찾아

숲 어디쯤 묻었다.

가을은

다시 한번

너를 내게 데려온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너 없는 삶에 물들어 간다

계절이 몇 번이고 지나가고

잎은 지고 피고를 되풀이해도

너는 여전히 말이 없고

나는 여전히 묻는다


가끔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모든 것을 간직한 채

앞으로 살아야 하니

너는 알까

잊는 일보다

기억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그래도

가을은 또 온다

잊지 못하는 나를

조용히 안고

묵묵히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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