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by 박철

우리 집 인근에 사시던 80이 넘은 아버지는 올해 초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70이 넘어 느지막이 만나

함께 의지하고 사시던 아주머니도 결국 떠났다.


대학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고 수술 또는 치료를 받고자 했으나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암이 뼈까지 전이되어 1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고생스럽고 불필요한 치료보다는 남은 시간을 편히 가시도록 잘 보살펴드리라고 권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시로 아버지를 모시고 1시간 차를 몰아 대학 병원을 드나들었다.

각종 영양제며 진통제, 식품 보조제등을 처방받고 주기적으로 검진을 해야 했다.

나 역시 일을 제쳐두고 아버지가 좋다고 하시는 약초를 찾아 지방으로 다니곤 했다.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 병원에 응급하게 입원하시면 며칠을 간병하느라 함께 병실에서 쪽잠을 자야 했다.

아들로서 아버지의 삶의 마지막을 돌봐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어렵고 좀 힘들더라도 참을 수 있었다.

아내 역시 그랬다.

맏며느리로서 집안의 대소사와 제사, 명절, 생신, 어버이날 등 한결같이 챙겼지만 결혼 후 30년, “고맙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못 들어본 며느리였지만 묵묵히 할 바를 했다.

아버지를 모시고 하루 종일 대학 병원 로비를 지켜야 했지만 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내가 항상 병원을 모시고 가다 보니 간호사들이 딸이냐고 물을 때마다 며느리라고 대답하는 것이 겸언쩍었다고 했다.


그리고 수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랬다.

나와 아내는 모두 지쳐있었고 힘이 들었다.

하지만 점점 더 쇠약해 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늘 죄인처럼 느끼곤 했다.

어쩌면 아내와 나의 일상의 삶은 보이지 않게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밥을 먹을 때, 누구를 만날 때, 일을 할 때, 어딘가를 갈 때도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고 갑작스러운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아들과 며느리의 마음이 얼마나 버거운 일이던지.

하루는 인천의 모 대학 병원에 교수로 있는 선배와 통화를 했다.

선배는 나를 위로했다.

본인이 대학병원 의사지만 본인의 아버지는 나이 60대에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다. 과도한 절망도 과도한 희망도 말고 현실을 받아들여라.”

세상 누구라도 죽는다.

죽음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삶이 아름다웠다면 죽음도 아름답지 아니한가.

남의 말이나 평가에 민감할 필요가 무엇인가.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할 수 있나니.

내 삶 전부를 남을 위해 쓰지 말고 내 삶의 반은 나를 위해 남겨두자.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살자.


죽음보다 생명을

슬픔보다 기쁨을

없어진 것보다 남은 것을

분노보다 용서를

불평보다 감사를

비난보다 칭찬을 묵상하며

지옥 말고 천국을 살자


나는 어쩌면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삶을 진진하게 바라보지 못했고 살아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게 서서히 다가서는 "죽음"을 바라보며 오히려 "삶"을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다가오지만 누구도 가져본 적이 없는 것이 내일이라 했다.


그래,

그렇게.


오늘만 살자.

오늘만 살자.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처럼

찬란한 오늘을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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