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다람쥐가 산다

by 박철

우리 아파트 단지 뒤편 산책로에는 밤나무가 즐비하다.

뒷산과 등을 맞대고 흐르는 산책로는 꾀 숲이 우거져 여느 도심의 아파트 산책로에 비해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족하다.


아내와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사람들이 뜸한 오전시간에 산책로를 따라 한 시간 정도 조깅을 한다.

산책로를 두 바퀴 뛰고 한 바퀴는 걷는 식인데 바로 그 밤나무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아무도 없는 산책로에서 걷다가 길을 멈추고 밤을 줍거나 딴다.

밤송이가 벌어졌거나 속이 꽉 찬 커다란 밤송이들이 나무에 매달려 흔들면 우수수 떨어지곤 한다.

밤송이가 떨어질 때마다 아내는 "와~"하며 손뼉을 친다.

운동은 까맣게 잊고 한참을 밤을 딴다.

작은 운동복 바지 주머니가 불룩할 때쯤에야 멈춘다.

다시 남은 산책로를 걸으며 나는 밤의 속껍질과 안껍질을 까서 아내에게 건넨다.

밤을 받은 아내는 밤을 깨물어 반은 내게 건넨다.

이빨로 대충 깐 밤에는 아직 속껍질이 붙어있고 침이 묻어 조금 불편할 수도 있지만 아내는 그런 것쯤은 아랑곳없이 “와그작” 밤을 깨물며 좋아한다.

밤을 두 개쯤 까먹을 즈음 길의 끝에서 나와 아내는 다시 뛴다.

주머니가 불룩한 나는 혹시라도 밤이 떨어질라 조심하며 뛴다.

세상에는 먹을 것이 넘쳐나고 갖가지 진귀한 음식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이 밤 맛을 무엇이 대신할까.

요즈음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치열하고 분주하다.

저마다 나라를 위해 수고하니 고맙지만 한편으로 참 안쓰럽기도 하다.

저리 화가 나고 분주하여 가을 밤나무의 밤을 따서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 넣어줄 시간인들 있을까.

가을, 밤나무의 밤은 무르익어가는데 밤나무 아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밤 껍데기를 벋기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삶을 살고 있을까.

가을,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밤나무에 밤이 열릴때면 세상을 다 구할 큰 일이 있다하여도 가던 길을 , 하던 일을 멈추고 밤을 따야지.

시간은 빠르고 계절은 흐르는데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거기 멈추고 행복을 따자.

미움도 분노도 슬픔도 밤나무 아래 묻어두면 아무것도 아닌 걸.

밤나무 가시처럼 따가운 말들로만 가득하다면 그 사람안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본성은 어찌 알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와 아직 주머니 가득한 밤들을 꺼내 마저 까서 투명하고 긴 유리컵에 가득 담는다.

하루가 지나 퇴근하고 보면 하나도 없다.

“누가 이걸 다 먹었어? 애들이 밤을 먹어?”

아내가 씩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당신이 그렇게 밤을 좋아하는 줄 몰랐네.”

“난 어릴 적 명절날 제사가 끝나면 제사상에 있는 밤부터 먹었거든...”


몰랐네.

30년이 넘도록 같이 산 사람이 밤을 이토록 좋아한다는 걸 .

이상도하지.

먹기는 아내가 먹었는데 내가 이토록 행복하다니.


내일 더 많이 밤을 따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밤 따는 꿈을 꾸며 밤이 깊어간다.

우리 집에는 귀여운 다람쥐가 산다.

두 볼 가득 밤을 깨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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