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

by 박철

밤을 빛나는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수없이 반짝이지만

오직 나를 향하여 빛나며 인도해 줄

거친 밤바다에 등대 같은 그런 선생님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깊은 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문득 옷을 챙겨 입고 눈 길을 헤치고 찾아가면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따듯한 커피 한잔 내어 주실 그런 선생님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나를 기억하고

나를 위해 일기를 써줄 선생님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뒤엉키고 흩어진 인생의 수많은 길들 중에서

어떤 길이 맞는 건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먼저 가시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줄 그런 선생님이 내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내가 그리워할 선생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적 교무실 창가에 나를 앉혀두고

친구와 다투다 상처 난 내 볼에 약을 발라주시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던 담임 선생님은 지금 안녕하실까.

얼굴의 상처가 아니라 상처 난 어린 마음에 약을 발라주셨지.


오늘 밤, 그분께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쓰리.

너무나 오래도록 찾지도 않은 어린 제자를 용서하시라고.

아, 이제 내 상처에는 누가 약을 발라주나.


아직 내게 남은 저 먼 길 위에 서서 앞을 보고 뒤를 보네.

나는 어디로, 누구를 따라 무엇을 하러 먼 길을 가나.


손을 들어 나를 안내할 그런 선생님이 내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의 모퉁이에서 문득 내가 걸어온 눈길을 돌아보니

곧게 걷지 못하고 여기저기로 흩어진 발자국들이 가슴 아프다.


나의 모진 행동이 내 형제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던가.

나의 어리석은 분노가 내 가족의 마음을 얼마나 찌르고 후벼 팠을까.

나의 이기적인 결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했을까.

나는 오염된 정의가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짓밟았을까.

나의 빠른 걸음이 조금은 더딘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수치스러움과 모멸감을 주었을까.

나의 한 뼘만큼도 안 되는 지식이 얼마나 많은 사람 앞에 오만을 부렸을까.

나의 이익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물러서지 않았지.

돌아보니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 그토록 죽자고 싸워야만 했는지.


젊은 날에는 늘 내가 옳은 줄 알았고

젊은 날에는 늘 내가 모든 걸 할 수 있을 줄 알았고

젊은 날에는 늘 나만을 위해 살았나 보다.


지나간 사람들과 지나간 일들에 미안하고 후회스럽다.


진심을 담아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때는 나도 너무 어렸고

나도 너무 힘들고 두려워서 차마 남을 돌아볼 용기가 없었다고.

늘 내 상처가 가장 아팠고

늘 내 가난이 가장 배고팠으며

늘 내 짐이 가장 무겁게만 느껴졌다고.


이제는 차마 용서를 빌 사람과 시간조차 다 사라져 버리고

세월은 나를 덩그러니 남기고 사라져 가나니

어디서 나의 마음을 다 씻을까.


사람을 만나면 상처를 주고

말을 하면 비난만 더하여

매일과 순간에 더 다른 후회만 느는 거라면

차라리 외딴 숲에 오두막하나 짓고

계곡에 나가 해가 지도록 종일 피라미 낚시나 하고살껄.


하지만 아직도 내게는

차마 먹여야 하는 사람이 있고

차마 지켜야 하는 약속이 있으며

차마 갈아엎어야 하는 묵정밭이 있나니.


다만 한 가지 간절한 기도.

내 남은 삶,

더는 후회를 보태지 말고

더는 미움을 더하지 말기를.


어차피, 먼 훗날

내 무덤이 다 허물어지고

비석조차 쓰러져 먼지가 되면

이름 모를 산새 한 마리 머리 위로 울며 지나갈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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