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소원

양평을 그리며

by 박철

아버지의 소원



아버지는 스물넷 어린 나이에 양평 산골에서 땅을 팔아, 여덟 살 어린 아내와 돌 지난 젖먹이 딸을 업고 서울로 상경했다.

너무나 부지런하게 땅을 팠지만 도무지 가난을 벗을 수 없음을 알았기에 작은 논하나 판돈 전대 하나를 허리에 차고 양평을 떠났다.


서울살이는 녹록지 않았다.

배움도 짧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서 늘 달동네 윌셋방을 전전했고 오른발 두 번째 발가락이 하나 잘려나가고 리어카에 허리가 부러질뻔한 사고들을 겪으면서 노동판을 돌았고 청소부 박 씨로 평생을 사셨다.


근면하고 부지런한 것을 신앙처럼 아셨기에 지독히도 추운 겨울이나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도 새벽 4시면 집을 나섰다.

담배며 술은 돈이 아까워 진즉에 멀리하고 제사 때 음복조차 하지 않으셨다.


자식에게 늘 가르쳤다.

남의 것은 사소한 것도 손대지 말아라.

나태하고 게으르지 말아라.

어른을 공경해라.

남과 다투지 마라.

남에게 베풀며 살아라.

거짓말하지 마라.

낭비하지 말고 근검하게 살아라.

남 앞에 잘난 척하지 마라.

부모를 공경해라.

나중에 교회를 다니다 보니 목사님의 설교가 이와 같았다.

교회 근처에도 가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말씀은.


그러나 아쉽고 더러는 모질었다.

지나치게 검소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극도의 절약을 강요하셨다.

가족들은 늘 이런 아버지가 야속했다.

두 딸들에게는 특히 엄격하셔서 따듯한 아버지가 아니었고 때로는 모질기까지 했다.

부부간에 소통과 배려가 부족하여 어머니의 마음에 상처와 증오를 만들고 말았다.


어릴 적 양평 살 때 증조할아버지께서 산삼을 한뿌리 캐다가 먹여주셨다는 아버지는 평생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고 노인이 된 뒤에도 그 흔한 당뇨, 고혈압, 관절염 없이 청춘처럼 사셨다.

70대 후반까지도 양평에 가시면 키 큰 잣나무에 거침없이 오르시던 아버지.

나는 그런 아버지가 100세도 넘게 사실 줄 알았다.


그러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병원 침대에 누워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늘 저만치 먼저 가셔서 나를 기다리시던 아버지는 짧은 거리도 숨을 몰아쉬시며 느리게 걸어오셨다.

내가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내 걸음을 따라오지 못하셨다.

병원에서 검사결과를 듣고 뒤돌아 나가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아버님은 밖에서 잠시 기다리시고 아드님은 잠깐 남아 주세요"

"정상 수치가 4예요, 그런데 아버님은 2400이에요. 암환자가 1000 정도 수치니까 아버님은..."

의사는 조직 검사를 좀 더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며 무척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다.


입맛이 없고 기운이 없다며 동네 병원에 가셨다가 우연히 건강검진을 받다가 몸의 이상을 발견했다.

조직 검사를 위해 부랴부랴 대학병원에 입원 수속을 하러 왔다.

입원 수속을 하는데 간호사가 병실을 6인실로 배정한다기에 나는 1인실이나 2인실로 바꿔줄 수 없냐고 했다.

혹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아버지의 병실만큼은 호사를 누리시기를 나는 바랐다.

그런데 병실은 없었다.

6인실 병상.

전신 마취를 하고 조직 검사를 받기 위해 금식을 하고 침대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아버지, 1인실이나 2인실이 비면 바꿔달라고 했어요."

"쓸데없는 낭비 하지 마라."


침대에 누워 까무룩 잠드신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나는 좀 하나님께 투정을 부렸다.

하나님, 평생 술이며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어요.

음식을 탐하지도 않아서 과식이나 육류 즐기지도 않았고요.

남을 괴롭히거나 도둑질도 한번 한적 없고요, 가난한 살림에도 남 돕는 일에 서슴없이 살았어요.

그런데 왜 우리 아버지에게 병이 왔나요?

우리 아버지에게 너무하신 것 아니에요?

교회는 다니지 않았지만 착하게 사셨으니 이제라도 기회는 한번 주시면 안 되나요?

천국은 땅이 무척 넓을 것 같은데 우리 아버지 한 명 정도는 더 넣어주실 수 없나요?

하나님, 생각해 보세요.

아들은 천국 가고 아버지는 지옥 가면 자식으로서 도리가 아니잖아요.

저 혼자 천국에 간들 무슨 기쁨이 있을까요.


잠깐잠깐 정신을 차리시면 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옅은 미소를 띤 채 천정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양평 선산 계곡 가에 작은 집을 하니 짓고 버섯과 두릅을 따다가 무쳐 먹으면 좋지.

집 울타리에는 복숭아나무, 살구나무를 심고

날이 풀리면 계곡에 나가 낚시를 하고 살면 암도 다 나아.


그랬다.

아버지는 가난한 고향이 싫어 고향을 떠났지만 늘 고향을 그리워했다.

나이가 들수록 그 그리움은 더욱 깊어만 갔다.

고향을 떠나 먹고살기 위해 뼈가 으스러지게 일해야 했던 아버지는 꿈엔들 양평을 있었겠나.

그저 낡은 몸뚱이 하나 남은 비루한 노인이 내 눈앞에 잠들어있다.


나는 기도한다.

꿈에서라도 복숭아나무 살구나무에서 열매를 따고 매운탕을 끓여 배불리 드시기를.

만약 정말 만약에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한 번만 더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양평에 모시고 가서 내 손으로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잡숫게 하리라.


세상에 기적이란 건 없겠지.

혹시 아주 드물게는 있을지라도 그것이 하필 내 아버지에게 오실 일도 없겠지.

기적이란 걸 내 아버지에게 주시기를 기도한다면 난 너무 이기적인 놈이겠지.


내 아버지,

불쌍해서 억울해서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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