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예술은 사치품이다

현대인과 인간 사이

by 류민효

왜 예술은 배고프다거나, 예술을 즐기는 건 부유한 사람들의 특권이라는 등의 선입견이 있을까. 물론 배가 고픈 사람들이 전부 예술을 하거나 낭만에 빠져 사는 사람은 아니고, 부유한 사람들 모두가 예술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이와 관련된 짧은 생각을 글로 정리한 적이 있다.

'예술이라는 것은 생존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생존하기 위한 삶에서 예술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하지만 살아가는 데에 예술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술은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길러주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준다. 그렇기에 당장의 생존이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돈이 있거나 마음에 공간이 있는 사람들이 예술과 친하다. 그리고 시장 경제에서 그 형태는 대부분 부자 혹은 빈털터리로 나타나곤 한다. 한국 사회에서 당장의 생존이 중요한 중간 정도의 부를 지닌 사람들은 예술과 그리 가깝지 않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교만한 느낌이 있다. 중간 정도의 부를 지닌 사람들도 예술과 가까운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다.


내가 했던 생각을 좀 더 풀어보자면 이렇다. 예술이라는 것이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직장에 가거나 자신의 일을 하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그래야 그 결과로 돈이라는 것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돈이야 말로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열쇠다. 미술품을 쳐다보거나 교향곡을 들으러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돈이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만약 돈이 많아서 먹고 사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다면, 우리는 아마 그 다음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떤 걸 좋아하고, 나는 어떤 걸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떠오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를 조금 더 사랑해주고 싶어질 수도 있고,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바라보며 즐기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게 될 수도 있고, 강연을 들을 수도 있다.


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데에 예술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안다.


예술을 통해 자신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 지, 이를 토대로 나만의 취향에 대해 알아가고, 이 취향들로 점점 내 세상을 채워가고, 그 세상 속에 살면서 나라는 사람이 왜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그렇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아가고, 그 과정에서 나랑 더 친해지고, 그러다보면 나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예술이라고 대단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결이다. 표현하고 공감하는 것.


하지만 역시나 이런 인간적인 것이 먹고 사는 문제에 앞서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돈이 많아 먹고 사는 문제가 없거나, 아니면 먹고 사는 걸 차치하더라도 인간적이고 싶은 사람들이 예술을 사랑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대인으로서 가져야할 덕목 중 부족한 것이 많다.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부터 그런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주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잘 몰랐고, 어떤 소문이 도는지, 어떤 것들이 요즘 유행인지, 컴퓨터로 영화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번 시험의 작년 기출 족보는 누구한테서 구할 수 있는지, 월급이 얼마가 들어왔고, 성과금은 얼마가 들어오는지, 이번에 세금은 얼마를 뗐는지, 요즘 집값이 얼마나 하는지, 비행기값은 언제가 저렴하고, 여행을 갈 때는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집안일 꿀팁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지금 내가 놓인 상황에서 조금 더 이점을 볼 수 있는지 등. 그래서 이런 것들을 잘 알고 세상 만사에 너른 지식이 있는 사람을 보면 멋지게 느껴졌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내 생각을 다른 것들에 집중했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이 예민한 성격 때문에 스트레스를 덜 받을지, 어떤 마음을 먹어야 사람들에게 내 괴팍한 성격을 덜 느끼게 할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뭘지, 종교라는 건 어떤 역할을 하는지(나는 무교다),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지, 저 사람과 대화를 잘 하려면 나는 뭘 해야하는지, 돈은 어떤 마음으로 써야하는지, 그림만 보면 크게 다른 게 없는 것 같은데 왜 저 사람은 성공하고 이 사람은 죽어서야 유명해졌는지,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영화 속 저 남자는 왜 이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하지 않고 저렇게 행동했는지, 저 사람은 지금 어떤 마음일지, 저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뭘지, 이 사람은 왜 지금 여기서 이렇게 짜증을 내고 있을지, 나는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등. 나는 인간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것들을 조금 더 진전 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해야할 지가 궁금했다. 물론 꽤 거만하고 한때는 냉소적이기도 했었지만, 그것들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 덕에 꽤 많이 벗어났다.


일을 그만두고 그림쟁이로 살겠다는 결심, 그리고 그렇게 살고 있는 나를 보며 용기가 대단하다고 감탄해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현대사회 직장인으로서 실패한 사람'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이 말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거나 비관하는 말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말은 그저 나 자신에 대한 사실을 표현한 것뿐이다. 나는 A와 B 둘 모두 틀린 것이 아니고, 그것이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때, 내가 선호하는 방식(A)이 아닌 다른 방식(B)으로 하라고 하는 지시가 싫었다. 딱 봐도 고집이 세서 현대 사회 직장인으로는 합격점을 받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내가 하던 대로 하지는 않았고, 선배 혹은 선임이 시키는 대로 했다.


당연하게도,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인간미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교류해야하고, 협력해야하며, 조화를 이뤄야한다. 그렇게 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옆사람을 경계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신이 조금은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해야할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남들에게 뒤쳐지면 인생이 망할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는다. 혼자 살아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되고, 모르는 타인이란 그저 나의 세계를 어지럽히는 존재가 되어간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더 비싸고 넓은 집, 더 유명하고 비싼 차, 사람들이 부러워할 해외 여행지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에 대해 대화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인간미가 옅어진다는 느낌은 그저 그걸 드러낼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전처럼 서스럼 없이 서로의 경계를 드나드는 대신에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기로 했고, 각자의 생각을 떠드는 대신에 정적이라는 평온함을 공유하기로 했다. 이것은 굴곡을 겪기 보다는 평탄을 선택한 경향인 것 같다. 우리는 성공하는 기쁨을 누리기 보다는 실패하는 아픔을 피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것이 있고,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 있다. 현대인이라고 해서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을 등한시하면, 인간으로서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최근 '우주(Cosmos)'들을 그리고 있는데, 이 작업을 시작하며 캔버스에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 동안 떠오른 생각이 있다. '원시인과 대화하듯 그리자.' 원시인은 나랑 전혀 말이 통하지 않을 거다. 흔히 바디랭귀지라고 하는 몸짓도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 혹은 그녀와 내가 기술적인 방법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수는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상대에게도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할 수 있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 노인분들과 어린이들에게도 내 마음이 가 닿지 않을까. 시기를 떠나고, 문화를 떠나서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의사소통의 도구로 쓸 수 있다면, 내 그림은 더 멀리 그리고 더 깊이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크 로스코가 말했던 '인간 조건(Human condition)'도 이런 것이 아닐까.


나는 '시대를 초월하고, 우주적인 관점을 기반에 두고, 영적이며, 연결성을 지니고, 희망을 품은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가 닿을 수 있는 인간적인 것을 그리고 싶다. 그걸 제대로 이뤄내면 내 그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은 사치품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술은 즐기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권해보고 싶다. 그것이 꼭 그림을 구매하거나 클래식 연주를 보러 가는 행위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주변엔 예술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이 참 많다.


마무리는 마크 로스코의 아들인 크리스토퍼 로스코의 저서 '마크 로스코, 내면으로부터'에서 그가 한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체해야겠다.

'사회는 계속 변화하고 과학과 기술은 끊임없이 세상을 '현대화(modernize)'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의 핵심, 즉 태어나고, 살아가고, 사랑하고, 일하고,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겉모습은 달라지겠지만 이러한 궁극의 진리는 모든 경험의 근간을 이루며,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우리의 정신세계를 형성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그림이 나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