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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잘 되는 데에 사활을 걸었다.

애덤 그랜트의 'Give and Take'와 내 다짐 사이의 관련성

by 류민효

내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병원 문을 박차고 나왔을 때, 나에게 "니가 그림을 그린다고?" 라거나 "야 그렇게 꿈 쫓아서 어쩌려고"나 "진짜 철 없다"라거나 "어렵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했던 사람은 단언컨대 한 명도 없다. 나도 이 사실이 참 놀랍다. 우리의 위대한 가수 아이유도 친척들이 그 위대함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고, 스타가 된 사람들이 흔히들 하는 과거의 이야기에 주변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은 어쩌면 클리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을까.


물론 내가 듣지 못하는 곳에서 "민효는 참 어려" 라거나 "민효 보면 참 안타깝다"라는 둥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거야 나는 듣지 못하니까 알 수는 없지만.

하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니는 될 것 같다"나 "오 그림 느낌있다" 라거나 "진짜 대단하다, 멋있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다시 한번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다.


나는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내가 나를 믿기 시작한 지금까지 한 발짝씩 걸어왔다.


나는 우리 부모님께, 우리 형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더 많은 시간을 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내가 이렇게 꿈을 쫓고 있는 것이 조금은 허망할 때도 있었다. 당장에 돈을 벌고, 어쩌면 부자가 되는 길을 택해야 그런 것들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며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나의 상황이 씁쓸하기도 했다.


어느 날 여자친구의 친한 부부의 집에 초대되어 간 적이 있다. 거기서 정말 귀한 대접을 받았다. 편백나무 찜기에 쪄진 전복과 차돌박이와 오징어와 전복내장밥과 여러 병의 고급 위스키. 어마어마한 만찬이었다. 그날은 그 귀한 것들을 먹고 마시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대접을 해주는 건가,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이 은혜(라고 생각이 들었다)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이 사람들뿐만 아니라 평소 내 친구들, 나의 가족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갚고 싶은데,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이 값진 대접을 베풀고 싶은데,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러다 답을 찾았다.

나는 내가 잘 되는 데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내가 잘 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랑스러워 할 거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 것들이 더 많아진다. 그게 돈으로써 가능한 맛있는 만찬일 수도 있고, 나의 좋은 에너지일 수도 있지만 어쨋든 내가 잘 되어야 한다.


애덤 그랜트의 'Give and Take'에 보면, 받기 보다 주기를 더 많이 하는 기버(Giver)의 경우 성과의 피라미드 가장 아래와 가장 위에 분포한다고 한다. 두 집단은 모두 기버로서의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얻는다. 그리고 남에게 퍼주느라 자신의 성과를 챙기지 못한 기버가 피라미드의 위쪽으로 올라가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성과를 챙기는 것'이었다. 즉, '나의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라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더 돕기 위해서' 자신의 성과를 챙긴다면 더 큰 동기를 가지고 성과를 내면서도 타인들에게 더 많이 베풀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은 건 몇 개월이 지났고, 그때 읽어서 알고 있는 개념이었지만 역시나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그저 이론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 되는 데에 사활을 걸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먹자 떠오른 생각은 '더 이상 릴스 만들기를 미룰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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