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그림이란 뭘까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 그걸 계속 품고 살게 되면 '좋은 그림이란 건 뭘까?', '나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라는 질문을 계속하게 된다. 내 화풍이 계속해서 변화해 가는 것은 아마도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내가 남긴 고군분투의 흔적인 것 같다.
본격적으로 추상화를 그린지 1년이 넘었다. 그 전까지는 나름대로 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들을 그렸는데, 물감으로의 매체 전환, 좀 더 넓은 것들에 대한 접근 등과 같은 여러 이유가 추상을 그리게 한 것 같다.
사실 그림을 그리던 초기의 나는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 추상화란 사기에 가까운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거나 그려놓고, 심지어는 그렸다기 보단 칠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이런 저런 의미를 붙이는 게 사기가 아니라면 뭘까.
그런데 추상화를 그리면서 추상화는 어떤 건지 공부하고, 진심을 담아 추상화를 그리다보니 나도 사기꾼이 돼있었다. 정확히는 그것들이 사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어쩌면 좀 더 그림의 본질에 다가가는 접근 방식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말도 누군가에겐 사기로 보일 수 있으나, 뭐 이젠 어쩔 수 없다. 나는 진심이니까.
기본적으로 나는 온 세상, 아니 전 우주가 빅뱅에서 출발했다는 걸 믿는 사람이다. 믿는다고 표현한 이유를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알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빅뱅을 믿고, 항성의 핵 융합 반응에 의해 우리가 만들어졌다는 걸 믿는다. 결국 우리는 한 곳에서 연결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온 우주의 모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에너지로 이루어져있다고 믿고 있다. F=mc2 같은 이야기도 있지만, 여튼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즉, 쉽게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온 우주가 가득 차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류가 알고 있는 사실보다 모르는 것이 이 우주에는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이성에도 의문을 품는다. 우리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만 할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른 생명체와 비교했을 때 인간의 가장 뛰어난 점은 이성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이성을 포함한 어떠한 의지, 그리고 그것 역시 에너지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쯤에선 이성과 직관의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이성적이라는 말의 반대편에 감성적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여긴다. 그 의견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렇게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나눌 순 없고, 여기에 더해 직관 혹은 직감이라 불리는 것도 끼워넣고 싶다. 나는 사람이 느끼는 무언가가 그 사람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직관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수많은 데이터가 순간적으로 처리되어 발휘되는 감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직관이 중요하다는 킬리언 머피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의 이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철옹성이 아니며 사실을 배고픔이나 피곤함 따위의 것 앞에서도 쉽게 굴복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은 대단한 것이다.)
추상적인 것을 사고하는 혹은 감각하는 행위는 아마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일 거다. 나는 그 지점이 인간의 특별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인간이 다른 생명체를 괴롭혀도 된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여튼 그 추상적 사고 능력은 말 그대로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표현한다 치더라도 그 단어 자체, 그리고 단어와 단어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추상적'인 '무언가'를 파악해야 비로소 그걸 이해했다 또는 느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나는 언어도 그 뒤의 추상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언어도 추상성이 명료성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림이란, 그리고 더 넓게 예술이란 글이나 말이 아닌 매체로 이루어진 언어다. 우리가 대화를 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상대방과 연결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표현과 상호 연결됨은 인간의 본능이다. 나는 더 나아가 그것이 우주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의 모든 것은 스스로 무언가를 하면서 그걸로 주변의 무언가와 상호 작용을 주고 받는다. 이 상호 작용은 곧 연결이다. 난 이것이 우주의 본질이자, 대화의 본질이며, 곧 예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 혹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 통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탐구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생각하고,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거의 매순간 생각해왔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나의 못난 점이 싫어서였지만 그걸 조금은 통제할 수 있게 된 후에는 나를 발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은 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고 하고, 니체의 초인은 '스스로를 끊임 없이 극복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자기 중심적이 사고를 할 수 밖에 없고, 주관적인 세상 속에서만 살 수 있다. 나는 지구라는 곳에 사는 인간들이 다 각자의 세상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나에 대해 탐구한다. 이것은 내가 나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라거나 나르시즘이라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다. 이건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본적 특성이며, 어쩔 수 없이 나만의 세상에 살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몸부림이다.
그리고 그러한 나에 대한 탐구가 그림을 통해 이루어지며, 나는 거기에서 재미를 느낀다. 그러니 그 재미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진다. 물론 타인은 내가 느낀 재미를 똑같이 느끼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혼자 재미있어 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만의 반응을 가지게 될 거다. 같이 재밌어 한다든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든지, 아니면 재밌진 않지만 신기해한다든지, 아예 아무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든지. 아마 보는 사람이 백 명이면 반응도 백 가지일 것이다.
어쨋든 그 순간 연결이 일어난다. 그 연결은 백 가지의 반응에 따라 강할 수도 있고, 약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연결의 정도도 백 가지의 수준으로 발생할 거다. 하지만 나로썬 연결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와, 좀 더 강한 연결로 분류되는 쪽을 보며 다시 한 번 재미를 느낄 것이다. 나라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자기 표현과 그로 인한 연결을 느끼며, 무언가 인간적이고 우주적인 본질에 닿았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연결을 만들고자 한다. 물론 그것은 자기표현이 전제되어야 한다. 연결은 무엇과 무엇, 혹은 누군가와 누군가 사이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연결들이 각 구성원들로 하여금 세상을 조금 더 만끽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