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의 선거판에서 기초의원에 당선된 비결을 말해보자. 국회의원 정도면 인물과 능력, 재력과 출신, 사주와 운이 들어맞아야 당선이 가능할 법하다. 더 나아가 대통령은 ‘천운’이 맞아야 한다고도 하고... 정치인이 점 보러 많이 다닌다는 얘기가 그래서 있을 것이다. 한 역술인은 총선이나 지방선거 때 후보의 70~80%가 점 보러 온다고 말했다. 믿거나 말거나... 영화 ‘더 킹’에서도 슈트를 입은 채로 방방 뛰며 온 마음을 다해 ‘굿’에 임하는 정치검사들이 나온다.
신심을 다해 굿에 임하는 그들... 영화 '더 킹' 중에서...
어쨌든 그건 윗분들 얘기고, 나는 의원이라고 불리는 이들 중 가장 '만만한' 기초의원으로서 당선의 결정적 원인을 꼽자면 거대정당으로부터 ‘가-번’ 공천을 받은 덕분이라 답해야 하리라. 다른 이유들도 당연히 있겠지만 가장 핵심 원인은 그것이라는 생각이다.
공직 선거 대부분은 1등만 살아남는다. 1명만 당선되는 그런 걸 소선구제라 했다. 하지만 기초의원 선거는 선거구에 따라 2명에서 5명까지 당선시키는 중대선거구제이다. 그러니 기초의원 후보는 한 정당이 일반적으로 2명 이상 공천한다. 물론 아주 열세인 지역은 그렇지 않지만... 그러하니 거대정당으로부터 공천을 받되, 가-번을 받느냐, 나-번을 받느냐가 당락의 결정적 요소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도지사, 도교육감, 시장, 도의원, 시의원, 비례 시·도의원 등 무려 7명을 선택해야 했다. 후보별 선고공보물만 두툼한 책자 한 권은 족히 되는데 그중에 기초의원 후보까지 누구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투표권을 행사한 유권자가 다수라고 얘기하기 어려울 듯하다. 대부분은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정당이나 기호를 보고 투표했을 것이다.
이즈음 거대 양당은 정치신인에게 가산점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공천을 진행해, 신입이 주로 가-번을 부여받는 분위기다. 지난 제8회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기초의원 중 초선의 비율이 70%에 육박하는 사정이 여기에 있으리라. 우리 안성시도 8명의 시의원 중 7명이 초선이다. 3명을 뽑는 선거구가 한 곳 있어 그나마 나-번 받고 재선된 의원이 1명 있을 뿐이다. 이는 거꾸로 아무리 당선돼 4년 동안 잘했다 하더라도, 나번을 받고서는 재선이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기초의원은 일회용(?)'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거대정당 후보였고, 정치신인이어서 가-번을 받은 나는, 그래서 인지도고 능력이고 나발이고 떠나서 ‘당선’에 이를 수 있었다.
품질에 하자가 있는 라면?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인해, '기초의원'의 경우 특히 정당의 공천권이 대단한 권력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당마다 공천의 룰이 있고 절차가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유권자 참여가 없는 공천심사로 이뤄지는 그과정은 형식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즉 정당의 지역별 원내, 원외위원장의 입김이 공천에 큰 잣대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유권자의 선택 이전에 선행되는 앞선 선택이 있고, 기초의원의 경우 그것이 매우 결정적이라고나 할까...
비유해보자. 소비자(유권자)가 라면(기초의원)을 사러 마트에 간다. 수십 종류의 라면 중에서 본인의 취향에 따라 라면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마트 측에서 라면을 딱 4종류만 비치하고 있는 셈이다. 4종류만 비치했더라도 그것이 소비자 선호도가 가장 높은 진라면이나 신라면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 몇 안 되는 라면이 ‘듣보잡’ 라면이거나 품질에 결정적 하자가 있는 라면일 때 발생한다. 물론 마트는 자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좋은 라면을 제공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으리란 얘기를 하는 중이다.
좋은 라면은 어디론가 처박히고, 마트에 잘 보인 라면만이 진열대에 진열돼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상황. 마트에 잘 보이는 것만이 중요한 라면들의 행진. 뭐, 이런 풍경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나는 배지를 달 만큼 괜찮은 라면인가
이런 얘기를 왜 할까. 나는 괜찮은 라면인가 성찰해보기 위함인가? 물론 스스로 하고자 하는 그 반성은 앞으로 3년 6개월 동안 수없이 반복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배경에는 그런 이유도 있다. 어쨌든 핵심은 소비자에게 좋은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대의이다. 또 소비자들은 맛있고 건강한 라면을 먹을 자격이 있다. 지방자치의 발전은 그렇게 차근차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어긋나는 지점들이 있다.
안성시의회는 23년 안성시 본예산 심사에서 가용예산의 16%를 삭감하는 '큰 일'을 저질렀다. 예산이 삭감된 사업 개수만 700개가 넘는다. 시의회가 뭐하는 곳인지 별 관심이 없던 시민들이 본예산 심사 이후로 무시로 의회를 찾고 있다. 마트에서 어떤 라면을 진열하는지 별 관심이 없다가, 극단적인 관심이 생긴 상황이라 볼 수 있겠다.
나쁜 정치를 육성하는 가장 큰 먹이, 환경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관심'이란 생각이다. 시민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나쁜 버섯은 자라난다. 이야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