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황윤희 Jan 16. 2023

시의원 배지 뒤, 가공할 업무량

[의원 중 가장 만만한 기초의원 이야기] - 셋

책이나 문자와 거리가 먼 사람이 하자면, 그냥 고행...      


안성시의회는 의원이 8명이어서 상임위를 나누지 못한다. 의원수가 1명만 더 있어도 자치행정, 산업건설 같이 분야를 나눠서 행정감사나 예산결산심사를 할 텐데 불가능하다. 덕분에 가공할 업무량을 자랑한다. 예·결산이나 추경심사, 행정사무감사, 조례심사 등을 할 때면 의원 누구나 안성시의 전체, 즉 3개의 담당관, 26개 과, 2개의 직속기관, 1개의 사업소의 사업을 모조리 다 보아야 한다.      


보통 예산자료가 집행부에서 시의회로 넘어오는 것은 일주일에서 열흘 전이다. 23년도 안성시 본예산 자료는 설명서만 백과사전 두께의 책자 5권에 달했다. 양심에 찔리기 싫으면 열흘에서 일주일 사이 그 많은 분량의 자료를 다 보아야 한다.            


의원 한 사람이 열흘이나 일주일에 그 많은 자료를 보는 것이 가능할까? 보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심도 있게 분석할 수 있을까? 안성시의 경우, 본예산만 1조에 이르고, 사업 개수는 천 개가 넘을 것인데, 이 사업에 이 예산이 적절한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그건 가능한 영역인가?      


결론은 심도 있는 예산심사를 기대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 의원 한 사람의 자의적 판단에 기대는 심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나는 행정사무감사, 본예산 심사 등을 앞두고 질식할 것만 같았다. 책임감도 책임감이지만, 제대로 심사를 하고 있는 것인지 내 행위에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단지 합리적인 예산인가만 판단할 일도 아니었다. 정무적인 판단도 있어야 했다. 이 사업이 과연 어떤 계층에게 도움이 되는가, 하는... 그러니 불우했다. 햇빛을 보지 못한 식물처럼 사무실에서 서류더미와 함께 시들어갔다.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책임감과 의무감, 자기합리화 사이에서 종횡무진 방황이나 해야 하는 운명.     

 

국회의원은 그럼 일이 더 많겠거니 추측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내 결론이다. 물론 의원별로 성향차가 있지만 국회의원의 공부는 상당부분 보좌진들이 대신 해준다. 고학력 엘리트 보좌진들이 야근까지 해가며 상임위 질의서 만들어내면 그걸 소화해 카메라 앞에서 질문하는 일이 국회의원의 일이다. 그러니 상임위 관련 업무량은 보좌진 한 명 없이 홀로 고독하게 뛰어야 하는 기초의원보다 많다 할 수 없다. 책임의 무게와 범위가 다를 뿐이다. 그리고 월급도 매우 다르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예산안 설명서

시의원 따위 나도 한번 해볼까, 생각하는 분들 많을 것이다. 맞다. 자신의 직업군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고, 지역 내에서 봉사도 꽤 했고, 공동체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일이다. 다만 시의원이 돼서 성취감을 느끼자면 가공할 업무량을 각오해야 한다고 ‘귀띔’을 드리고 싶은 것이다. 단적으로 한 달 두세 권의 책도 안 읽는 사람, 문자와 거리가 먼 사람은 심각하게 재고해보는 게 좋다. 공부 안 하고 상임위에 들어오면 하루종일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자리만 보전하고 있거나, 잘 알지도 못하고 입을 열었다가는 수천 명 공무원들에게 공개적으로 망신당하기 딱 좋으니 말이다.      


기초의회의 회의 모습은 속기록과 영상으로 완벽히 보존된다. 실시간 영상으로 송출되기도 한다. 그러니 얼렁뚱땅 자료도 보지 않고 대충 뭉갤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게 좋다. 기초의원 4년 하고 나면 자신의 성향, 지능지수, 지식수준에 대해 사람들은 다 알게 된다고 여기면 될 것이다. 그런 걸 감수하고라도 의원 배지 한 번 달아보겠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시의원과 김밥집 사장, 그 어느 사이     


나는 김밥을 잘 싼다. 내가 싼 김밥을 먹어본 이들은 다 맛있다고 한다. 숨은 비결이 있는데 그건 여기서 말해드리지 못한다. 다만 죽기 전에 김밥 장사를 한 번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다. 한 손에 들어오는 그 소박한 음식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생각이다. 놀러갈 때 싸는 것이 김밥이었지만, 이즈음의 김밥은 일하느라 느긋하게 밥 먹을 시간이 없는 사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이들의 손쉬운 한 끼에 가깝다. 내게 김밥에 대한 각별한 소고가 있다. 그러하니 말도 안 되게 무성의하게 김밥 만드는 가게를 보면 분노가 솟구친다.     

  

하루하루 성실히 노동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이들, 가난해서 약한 이들의 음식, 김밥

 

관찰해보면 김밥집 일은 노동강도가 매우 높다. 그 많은 재료를 일일이 준비하고, 한 장의 김 안에 싸서 넣는 일 쉬운 게 아니다. 김밥집에는 그래서 ‘김밥 아줌마 구함’이라는 구인광고가 흔하다. 그렇게 노동강도가 센 김밥집이라도 기초의회 의원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은 이즈음이다. 몸이 힘들어도 일의 잘하고 못함이 명백하지 않은가. 김밥재료 싱싱하고 맛 있으면 될 일이다. 의회에서 홀로 자괴감과 싸우는 것에 비해 바쁘게 일하는 사람의 한 끼를 책임지는 것이 훨씬 보람돼 보이니까...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게 일생의 내 결론 중 하나다. 꼬락서니가 당분간은 시의원과 김밥집 사장, 그 어느 사이에서 우물쭈물할 태세다.

작가의 이전글 “기초의원은 일회용?”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