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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윤희 Sep 19. 2023

도로 뚫기, SOC예산... 과한 것들

[일개 시의원이 떠듭니다] - 셋

4회 추경 중이다. 추경 예산안 설명서는 여전히 2권이지만 훨씬 얇아졌다. 예산안 보는 눈도 길러져 보는 속도가 좀 빨라졌으며, 수십, 수백억 단위 숫자 읽기도 수월해졌다. 훅, 훑어보면 머릿속에 사업이 그려진다. 숙련공이 돼가는 중이다.      


안성시 예산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회복지예산이다. 33,5% 정도 되는 듯하다. 다음으로는 행정과가 쓰는 예산으로 공무원 인건비에 해당한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도로건설, 교량, 하천관리 등에 쓰이는 SOC예산인 듯하다. 오늘 도로예산 관련해 질문을 했더니, 역시나 안성시는 동종지자체보다 많은 예산을 도로에 투입하고 있었다. 안성시는 서울시 면적의 92%나 된다. 그러니 도로예산 비중이 높은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또 고려해야 할 점은 인구는 서울시의 2% 수준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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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간담회 가면 과반 이상이 도로와 관련된 민원이다. 길 뚫어달라는 것이다. 내 땅은커녕, 내 집도 한 칸 없는 나로서는 길에 대한 집착이 없다. 그저 걷기 좋은 길, 인도가 있는 길, 가로수가 풍성한 길, 경치가 좋은 길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집과 땅이 있는 사람은 개인의 재산가치 증식을 위해서는 길이 필수인 모양이다. 노골적으로 내 집 앞 길을 넓혀달라거나 새로운 길을 뚫어달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거리낌이나 내적갈등이 없어보인다.      


도로가 너무 잘 돼 있어서 북한이 남침하면 부산까지 단박에 내려올 거라는 우스개가 있었다. 오늘날의 전쟁에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겠지만 실상 대한민국의 길은 이즈음 너무 과하게 건설되는 듯하다. 안성도 마찬가지다. 길이는 1킬로미터 남짓이지만, 원래의 길에서 130미터쯤 떨어진 곳에 새로운 도로가 뚫리기도 다. 이 기이한 도로는 사람들 입에 구설로 올랐다. 이 길을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을 향해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다 자기 땅값 올리려고 그러는 거여. 도로랑 닿은 땅이냐, 아니냐에 따라 땅값이 천지차이라고...”      


국회에서 근무할 때,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국회 의원회관의 복도 바닥과 화장실이 얼마나 깨끗한지 가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물기 하나, 먼지 하나 없이 말끔하다. 한 나라의 국회니 당연히 깨끗하고 시설이 좋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집 방바닥보다 깨끗한 시설들을 보며 너무 과하지 않은가 했던 것이다. 이 땅의 국민 중 많은 사람들은 국회의 복도나 화장실보다도 못한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햇빛이 들지 않는 방, 폭우가 내리면 잠기는 방, 비인간적으로 좁은 방, 생활소음이 전혀 차단되지 않는 방, 그런 방들... 심지어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도 우리는 그런 반짝거리는 공간을 내어주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예전에 인도 배낭여행을 갔었다. 인도는 모든 것이 충격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결코 잊히지 않는 풍경이 하나 있다. 좌우 너비가 내 키 정도 되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계단의 방향이 반대로 바뀌는 공간에 누군가 있었다. 바닥에 뭔가를 깔고 한쪽으로 천을 늘어뜨린 그 공간에 사리를 입은 여성이 아이 둘을 데리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가재도구들이 쟁여져 있었다. 맙소사, 그곳에서 여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밥을 해먹고 잠을 자고... 그 두 평 남짓한 계단 사이의 공간에서... 아니 공간이라 할 수 없는 세상의 어느 틈에서 그녀는 겨우 살고 있었다.      


도로는 이제 좀 줄여도 좋을 듯하다. 이중 삼중의 도로 건설을 위한 그 어마어마한 예산을 사회 양극화를 줄이는데, 복지에 더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부의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고, 청년층은 자꾸만 방으로 잦아들고, 노인은 많아져 미래세대의 부양부담은 더욱 극대화한다. 아이를 낳지 않아 어린이집이 우후죽순으로 문을 닫고 있고, 당장 내년 세수가 확 줄어들 예정이어서 우리는 모두 올해보다 침울해질 것 같다.      


이제 도로를 뚫어도 달릴 사람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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