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2026
*스포일러 포함.
영화가 시작되고 조 과장(조인성)이 주먹을 휘두르면, 일단 영화관을 잘못 찾아오진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류승완과 조인성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장면이 가장 먼저 펼쳐진다. 카메라의 동선과 소품의 활용까지, 장르적 문법 안에 독창성을 발휘하는 한바탕 액션. 영화는 긴장감을 그대로 유지하며 약물에 중독된 김수린(주보비)을 치료하는 장면으로 쉴 틈 없이 이어진다. 응급한 상황, 환자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끝내 실패하며 조 과장의 뒷모습과 함께 마무리하는 이 오프닝의 탁월한 리듬은 더할 나위 없이 오락적이다.
<휴민트>의 오프닝이 이토록 에너지 넘치는 것은, 물론 관객을 첫 눈에 사로잡으려는 상업 영화의 목적도 있겠으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결국 이 이야기의 정수는 오프닝 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박건(박정민)과 채선화(신세경)이 극의 많은 비중을 차지한 데 비해 정작 주인공 조 과장의 서사는 적은 편인데, 그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 결국 이 오프닝이다.
조 과장은 사람을 정보로 다루는 국정원 요원임과 동시에, 따뜻한 휴머니즘을 가진 한 인간이다. 그의 이중적인 태도는 내적 갈등을 낳기 마련인데, 오프닝의 액션은 이 갈등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임무에 충실할 것인가, 사람을 구할 것인가. 이렇게 이 영화는 일단 갈등을 전제하고, 그 위에 액션을 전개한다. 전제 위에서 활동하는 액션과 그렇지 않은 액션은 개연성과 몰입감에 확실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조 과장의 캐릭터성이 급격히 힘을 잃는 것은 사실이다. 조 과장은 영화 내내 변화하지도 갈등하지도 않는다. 끝날 때쯤 되면 차가움은 찾아볼 수 없는, 다소 미적지근한 인물로 마무리된다. 4명의 인물을 엮어내는 과정에서 저마다 입체적인 인물을 형성하기는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혹은 오프닝과 엔딩을 먼저 정해놓고 그 사이를 억지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것은 아닐까.
<휴민트>는 분명 비주얼적인 장점이 있고, 관객을 몰입시키는 능력이 출중하다. 각각 다른 위치에 서 있는 4명의 인물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결말로 치닫는 플롯은 아주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훌륭한 솜씨가 느껴진다. 하지만 (박건이 채선화가 부른 노래를 핸드폰으로 듣는 장면처럼) 중간에 삽입된 몇몇 장면은 무언가 표현하겠다는 의지보다 맥락상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넣었다는 인상을 준다. 엔딩 또한 독창성이 적은 데 비해 리듬이 늘어지는 감이 있다.
류승완 감독이 재밌고 오락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적잖은 실망을 안겼던 <베테랑 2>에서 보였던 문제, 즉 소재를 다루는 어정쩡한 방식이나 정해진 엔딩으로 향할 때의 기시감 같은 단점 또한 <휴민트>에 여실히 드러난다.
3.0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