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 깨달은 점
인간은 동물이다. 그래서 동물에 대해서는 식물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물의 번식 목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저 본능이라고 한다.
식물의 번식 목적과 동물의 번식 목적은 다를 리가 없다. 다를 수가 없는 게 동물과 식물은 오래전에 갈라졌을 뿐 그 뿌리는 하나, 원생생물이기 때문이다. 번식의 목적이 진화하는 중간에 식물 따로, 동물 따로 구분될 리는 만무하다.
먼저 멸치와 같이 군집을 이뤄 생활하는 물고기를 살펴본다. 이런 작은 물고기들의 천적은 참치, 상어, 삼치 등과 같은 대형 육식 어류이다. 대형 육식 어류들은 멸치 떼 주위를 회유한다. 그리고 멸치 떼를 공격하기 좋게 몰고 간 후, 군집의 흐름이 꼬이거나 속도가 느려지는 빈틈이 생기면 바로 뛰어든다.
공격을 당하는 멸치 떼는 순발력으로 대형 어류의 공격을 회피한다. 그런데 더 오래 생존을 하려면 또 어떤 전략을 써야 할까? 참치에 대항할 특공대를 조직해서 맞짱을 뜰까? 더 빨리 헤엄치는 법을 배워서 잽싸게 도망갈까? 이는 불가능하다. 참치에 맞설 만한 근육과 이빨을 키우고, 더 빨리 헤엄치는 법을 배우는 데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그렇게 한들 참치라고 가만히 있지 않는다. 새로운 사냥 방법을 생각해 낸다. 즉 실패할 리스크가 높을 뿐 아니라,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멸치들이 추구하는 전략은 식물과 유사하다. 바로 집단 내 구성원을 많이 만들어 내는 전략이다. 자신과 유사한 개체가 자신의 주위에 많이 있으면 자신이 참치의 먹이가 될 확률이 줄어든다.
멸치들은 100마리로 이루어진 멸치 떼 속에 있는 것보다 10,000마리로 이루어진 멸치 떼 속에 있는 것이 100배 더 생존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다. (물론 이 전략이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부들은 큰 무리만 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개체를 최대한 더 많이 만들려고 노력한다. 포식자를 피해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소극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에.
단,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나의 군집에 너무 많은 개체가 몰려 있으면 먹이가 부족해진다. 포식자로부터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는 대신, 굶어 죽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군집을 이루는 개체 수에는 어느 정도 한계를 둘 수밖에 없다.
멸치도 너무 많은 후손을 낳으면 생존에 필요한 플랑크톤이 부족해진다. 결국 집단내 먹이 쟁탈전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내부 경쟁에 치중하다 보면 오히려 외부의 천적에 대한 대비에 소홀해진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생존에 불리해진다. 그래서 멸치뿐 아니라 모든 생물들은 자신이 처한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집단의 최적 개체 수를 계산한다. 그리고 그에 맞춰 출산율을 적절하게 조절한다.
이제 물 밖으로 나와 아프리카 초원에 있는 초식 동물을 살펴본다.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눈에 익숙한 누우 떼들, 이들이 번식하는 목적 또한 멸치 떼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도 집단을 이루면, 사자 같은 육식 동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자신이 먹잇감으로 선택될 확률을 낮출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누우 여러 마리가 힘을 합쳐 포식자를 몰아낼 수도 있다. 그래서 협업에 한몫할 만한 자손을 번식한다. 다만 식량, 물과 같은 생존 자원이 모자라서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개체수를 조절한다.
이상 기후로 기근이 닥치면 야생 동물들의 출산율은 급격히 낮아진다. 인간이 경제적 곤란이나 전쟁이 닥치면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출산율은 기근이 닥쳤을 때만 신경 쓰는 문제가 아니다. 야생 동물은 평상시에도 쉴 새 없이 주변의 환경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분석한다. 이를 통해 최적의 집단 내 개체수를 산출한다. 그리고 이 개체수를 맞추기 위해 출산의 횟수와 시기를 조절한다. 즉 후손이고 번식이고 간에 일단 자신이 생존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이제 초식 동물보다 한층 지능이 높아 보이는 육식 동물을 살펴본다. 하이에나처럼 집단생활을 하는 육식 동물의 번식 목적은 사냥과 방어를 함께 펼칠 동료를 구하는 것이다. 하이에나가 혼자서 사냥한다면 사냥감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혼자서는 대형 초식 동물의 사냥이 아무래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이 사냥할 동료가 필요하다. 협업을 해야 생존 자원을 충분히 획득할 수 있다.
또 자신보다 더 큰 육식 동물이 공격해 올 때 함께 방어 전략을 펼칠 동료도 필요하다. 물론 자신보다 더 젊고 강한 동료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바로 후손이 협업에 있어 최적의 동료인 것이다.
그런데 협업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의 행동을 예측하고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다 만난 생판 모르는 다른 동네 하이에나와는 서로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없다. 그들이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고,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다. 한마디로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육식 동물들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냥 동반자, 즉 후손을 필요로 한다.
하이에나 부부와 그의 자녀로 구성된 하이에나 무리와, 여러 무리에서 한두 마리씩 뽑아 만들어진 하이에나 무리가 서로 싸우거나 사냥 경쟁을 한다면 어느 무리가 이길까? 당연히 가족으로 구성된 하이에나가 이긴다. 일단 서로 간의 의사소통이 용이하다. 오랜 기간 함께 지냈기 때문에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리고 밀접한 협업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에 무리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 다른 가족이 곧 도와줄 것이라 믿고 가장 앞장서서 적진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여러 무리 출신으로 이루어진 집단에서는 아무도 먼저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몸을 다쳐도 다른 하이에나들이 자신을 돌봐 줄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집단생활을 하는 육식 동물도 자신과 유사한 형질을 가진 후손을 여럿 낳는다. 그리고 다 클 때까지 돌봐 주는 일종의 ‘투자’를 한다.
하지만 일생의 대부분을 혼자 생활하는 호랑이는 사냥 동반자가 굳이 필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후손을 낳을까? 이 또한 예외 없이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무리 지어 사냥을 하지 않기에 집단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성체가 된 호랑이는 산속에서 각자의 영역을 확실히 구분하여 살아간다. 즉 조금 간격을 벌리고 있을 뿐 역시 집단생활을 한다. 체조를 하기 위해 학생들 사이의 간격을 좀 더 벌린다고 그 학급이 해체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호랑이의 번식 목적도 집단생활을 하는 다른 동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의 영역 주변에 자신의 자녀 호랑이가 영역을 확보하고 있으면, 다른 육식 동물이 침범하려 해도 일단 자녀 호랑이가 지키는 영역을 지나야 한다. 당연히 자녀 호랑이도 자기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이방인과 싸운다. 설사 자녀 호랑이가 지더라도 이방인은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그러면 자신은 싸우지 않거나, 아니면 손쉽게 이겨 영역을 지킬 수 있다. 이렇게 호랑이는 후손을 번식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협업 체계를 구축한다. 이 협업 체계는 당연히 자신의 생존확률을 높여준다.
이 협업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호랑이는 많은 투자를 한다. 출산 후 새끼가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먹이를 공급한다. 그리고 외부의 다른 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한다. 새끼를 위해 먹이를 사냥할 때면 기존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사냥해야 한다. 따라서 때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하지만 새끼를 둔 호랑이는 일생에서 가장 젊고 활동력이 강할 나이이다. 조금만 더 열심히 사냥하면 새끼의 먹이를 챙겨주고도 자신의 몫 또한 챙길 수 있다. 모든 생물들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번식을 하는 이유다.
호랑이 새끼도 어렸을 때는 어미 호랑이와 협업을 하여 사냥을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성체가 되면 어미 호랑이와의 협업은 줄어들고 단독 사냥이 늘어난다. 둘이 같이 활동하면 제한된 영역에서 두 호랑이 몫만큼의 먹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가 되면 새끼 호랑이는 자신의 영역을 찾아 독립한다. 어미 호랑이는 두말없이 새끼를 떠나보낸다. 이 또한 어미와 새끼 모두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은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짓을 절대 하지 않는다.
자, 그럼 백수의 왕 인간은 과연 어떨까? (답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우리는 누구의 후손이거나 누구의 부모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