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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핀드로 Aug 29. 2022

의식의 기원

어차피 아무도 정답을 모른다


의식, 영혼, 정신, 자유의지....

과연 이런 것들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신이 인간에게만 부여해준 선물인가? 정녕 고귀하고 신성한 것인가?

빅뱅 이후 생성된 우주의 파편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저 고깃덩어리에 깃든 전기적 신호일 뿐인가?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도 의식이 있는가? 그럼 식물은 어떤가?


어차피 아무도 정답을 알 수 없다. 적어도 앞으로 몇 세기 동안은 그럴 것이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주장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좀 틀려도 괜찮다.

그 옛날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주장, 상당 부분도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헛소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원시인을 떠올려 본다(원시 생물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원시인은 생존을 위해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획득해야 한다.

에너지를 얻지 못하면 신체를 이루고 있는 세포와 원자들은 산산이 흩어져 버린다.

그건 자신의 죽음이다.


원시인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먹잇감을 사냥 혹은 채집해야 한다.

원시인의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먹잇감이 있다.

나무에 열려있는 과일과 저 들판 너머에 있는 토실토실한 돼지.  

비실비실한 노루와 사납게 덤벼드는 곰.

원시인은 이런 여러 먹잇감들 중에서 최적의 타겟을 선택해야 한다.

이때 원시인은 어떤 먹잇감을 선택할까? 아무거나 랜덤으로 선택할까?


그러면 안 된다.

자칫 먹잇감을 얻는데 연이어 몇 번 실패하면 굶어 죽게 된다.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신중하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정신일도 하사불성, 집중해서 사냥하면 되는 것일까?

공즉시색 색즉시공, 마음을 비우고 사냥하면 되는 것일까?


눈앞에 두 개의 먹잇감이 있다.

뒷동산의 과일과 저 들판 너머의 돼지.

뒷동산의 과일은 수십 개를 손쉽게 딸 수 있다.

그런데 영양가가 그리 높지 않다.

한 바구니를 따 먹어도 몇시간 지나면 배고프다.

반면 돼지는 잡기 어렵다.

하지만 영양가가 풍부하다.

한 마리만 잡아도 3~4일은 너끈이 먹을 수 있다.


원시인은 둘 중 어떤 먹잇감을 잡으러 나설까?

확실하게 획득할 수 있는 먹잇감만 노릴까?

가장 영양가가 많은 먹잇감만 노릴까?

랜덤으로 아무 먹잇감이나 노릴까?

중요한 생존 문제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과일만 따 먹은 원시인.

그는 얼마 안지나 삐쩍 말라죽었을 것이다.

반면 가장 영양가가 많은 먹잇감만 노린 원시인.

그도 연속으로 사냥에 허탕을 치다가 굶어 죽었을 것이다.

아무 먹잇감이나 노리는 원시인은?

가장 먼저 굶어 죽어서 다른 원시인들의 먹잇감이 되었으리라....


37억 년 전 생명 초창기의 생물들은 고민이 적었을 것이다.

성공확률이 가장 높은 먹잇감 혹은 성공 시 수확이 가장 큰 먹잇감,

이 둘 중 한 가지만 집중해서 사냥해도 꽤 잘 살아남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생명체가 많아진 후에는 상황이 좀 달라졌을 것이다.

사냥 성공확률이 가장 높은 먹잇감만 쫓던 생물과

사냥 성공 시의 수확이 가장 큰 먹잇감만 찾던 생물들은 다 굶어 죽었다. 

그런 생물은 단세포 생물 단계쯤에서 멸종해서 이제 그 화석조차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떤 생명체가 살아남았을까?

그때그때 기댓값이 가장 큰 먹잇감을 골라 사냥한 생물만이

성공적으로 생명을 유지하여 자손을 번식할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기댓값이 큰 먹잇감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생물은 중학교 수학 시간에나 배우는 기댓값 계산법을 알고 있었을까?


기댓값 = 성공 확률 x 성공 시 예상수익


먹잇감 선택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런 기댓값 계산은 초기의 생명체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

생존을 위해서는 근력을 키우고, 이동속도를 향상하고, 면역력을 높이고, 보호색을 갖는 것보다

적절한 먹잇감을 선별해내는 신경계의 계산 능력이 더 중요했을테니까...


물론 원시 생명체가 처음부터 이런 계산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사냥감 선택을 했을 경우, '생존의 유지'라는 강력한 보상(Reward)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학습을 통해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최적인지,

어떻게 행동을 하면 최대의 보상을 얻을 수 있을지 '강화학습 Reinforcement learning'을 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의 '딥러닝', '강화학습'과 동일하다.)


인간 뿐 아니라 여러 생물들도 오랜 시간 치열한 생존 경쟁을 거치면서 

이런 기대값 계산을 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


한 원시인이 배가 고파서 어떤 먹잇감을 노릴지 계산을 한다.

뒷동산에서 하루 종일 100개의 열매를 딸 경우 얻을 수 있는 기대 에너지를 산출한다.

그리고 들판을 떠돌며 돼지를 사냥할 때의 기대 에너지도 산출한다.

아래와 같이 두 개의 값을 구한 후 더 큰 쪽을 선택한다.

(실제로 두뇌 속에서 이뤄지는 계산은 실패할 경우도 감안해야 하므로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열매를 딸 때의 기댓값 13,400kcal

= 뒷동산의 열매 100개를 딸 확률 99% x 열매 100개의 에너지 13,500kcal


돼지를 사냥할 때의 기댓값 16,000kcal

= 돼지 사냥에 성공할 확률 5% x 돼지 1마리의 에너지 320,000kcal


계산 결과, 돼지를 사냥할 때의 기댓값이 더 크다.

이 원시인은 돼지 사냥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다른 원시인에게는 기댓값 계산에 들어가는 확률과 예상수익 값이 다르다.

각자 처한 환경과 갖고 있는 정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체마다 약간씩 다른 기댓값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같은 민족, 부족, 국가, 집단, 가족이라면 갖고 있는 정보가 비슷하다.

그래서 선택도 같을 확률이 높다. (민족성, 국민성, 혈연, 학연, 지연 등이 존재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기에

누구는 열매를 따러 가고 싶어 하고, 누구는 돼지를 사냥하고 싶어한다.


***


그런데 기댓값 계산만 잘한다고 생존할 수 있을까?

아니다. 심각한 변수가 하나 있다.


내 옆의 경쟁자도 나와 엇비슷한 계산 능력과 엇비슷한 정보를 갖고 있다.

그래서 내가 돼지를 사냥하겠다고 결정할 때,

내 주변의 경쟁자도 역시 돼지를 사냥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

그러면 돼지를 눈앞에 두고 경쟁자와 마주치게 된다.

이럴 경우 돼지 사냥의 기댓값은 애초 예상했던 값의 1/2로 확 줄어든다.

이는 마치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우회로를 찾아갔는데,

다른 차들도 역시 몰려드는 바람에 오히려 더 정체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쟁자의 선택을 고려하여 나의 선택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

즉 '죄수의 딜레마'로 유명한 '게임이론' Game theory속 상황이 실제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댓값 계산 결과를 그대로 따라도 될지 말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청각의 5감을 이용해 주변 상황을 쉼 없이 파악한다.


뭐...우리가 확률과 예상수익에 넣는 값은

조상이 물려준 유전정보에

살아가면서 학습한 최신 정보가 업데이트되어 있기에

신경계가 계산한 결과를 그대로 따라도 십중팔구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신경계의 일부를 할애해서 기댓값 계산을 보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내 옆에 같은 먹잇감을 노리는 경쟁자가 있는데

나보다 강력하다면 성공확률에 넣는 값을 확 줄여야 한다.


이럴 때는 그 먹잇감을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먹잇감을 찾아야 한다.

내 옆에 연약한 경쟁자가 있다면 기댓값에 별로 변화가 없다.

그럼 그를 무시하고 먹잇감을 그냥 쟁취하면 된다.

뭐, 때로는 약한 경쟁자를 확 해치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도 있다.

나와 같은 먹잇감을 노릴 것 같은 경쟁자에게 새로운 정보를 주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뒷동산에 열매가 지천이라고 하던가,

돼지가 다 도망가버렸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렇게 하면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기에 기댓값도 높아진다.

거짓말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특히 발달한 이유다.


좀 더 복잡한 방법도 있다.

적당한 파트너를 찾아 같이 사냥을 하자고 회유한다.

이렇게 하면  예상 수익이 조금 줄더라도 성공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으므로

기댓값 역시 증가하게 된다.

혹여 사냥은 잘하지만 분배에 욕심 없는 파트너를 찾게 되면

예상 수익도 높이고 성공확률도 높일 수 있다.

(우리가 돈 많고 잘 베푸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다.)

혹은 열매를 딸 때 분업하여 생산성을 높이자고 꼬시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성공확률은 그대로지만 예상수익이 증가하여 기댓값 역시 증가하게 된다.


무의식에 의해 수행된 기댓값 계산 결과에 대해

그것이 현재의 주변 환경 속에서도 유효한지 검증하는 신경계의 시스템,

그 기댓값을 증가시키기 위해 주변 환경(환경에는 인간도 포함된다)을 조작하는 신경계의 시스템.

이것이 바로 의식이고, 의식이 수행하는 주된 일일 것이다.


최근 개발된 변증법적 인공지능 GAN에는

정보를 만들어내는 생성 모델과 학습 및 판단을 하는 분류 모델이

함께 경쟁적으로 학습을 한다.


이는 우리의 신경계가 '기댓값 계산을 하는 무의식'과

'기댓값 계산이 현재의 환경에 적합한지 검증하는 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어차피 인공지능도 인간이 만든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카피해서 '창조(?)'를 한다)


우리는 신체를 이루고 있는 세포 각각에게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이 존재하는 공통된 이유다.

그리고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자고, 말하고, 움직이고, 느끼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싸우고, 사랑하고, 거짓말하는 이유다.


***


우리의 경쟁자도 우리와 비슷한 수준과 기능의 의식을 갖고 있다.

(다 비슷비슷한 놈들이니....모든 인간이 평등한 이유다.)

비슷한 놈들끼리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의 의식도 점점 정교해지고 복잡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나의 의식이란 놈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사실 우리의 의식은 의식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생존에 오히려 유리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면, 내 경쟁자 또한 내가 미래에 취할 행동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 당한다. 그러니 나조차 모르는 게 안전하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하지만 생물 역사상 아무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별 것도 아닌 거....알만도 한데 모르는 것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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