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선호와 시험관.
원래 난 아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인생에 나의 2세는 없을 것이라는 주의였다. 내 유전자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런 유전자를 남기는 게 싫었다. 후자의 이유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졌지만, 전자의 성향은 지금도 그대로 인것 같긴하다. 아기는 사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감정을 실체화 해주는 혹은 인생의 큰 이벤트와 경험이라는 생각. 이런 아기 선호의 문제는 결혼 직후 이혼을 하네마네하는 큰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했었다. 남편에게 결혼은 아기와 연결 되어있는 이벤트로 아기가 없을거면 결혼을 왜하냐 주의였고, 나에게 결혼은 경제생활 공동체를 정의하는 것이였기에. 그 싸움의 끝은 '서로 강요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생각하자' 정도로 마무리됐던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결혼생활 1년정도 됐을 때 즈음, 나의 인생의 이벤트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 즈음,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고 요이땅! 임신도전을 시작했다. 낭만적으로 유럽여행에서 아기가 생기는 상상을 했지만 한방에 되는 것이 아니였다. 그렇게 약 1년동안 자연임신을 시도했지만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사실 이때까지만해도 나는 여전히 아기에 대한 선호가 크게 없어서 '자연스럽게 생기면 좋겠다, 아님 말고' 정도의 수준이였다. 자연임신의 가능성이 낮아지는 나이였지만 주변에 자연임신 성공이 꽤 있었고 시험관은 절대적으로 여자의 고생이 크다보니 아기를 그렇게 원하지 않은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도 있어서 시험관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상사 스트레스가 크레센도처럼 커져가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에 나의 임신에 대한 욕구가 비례하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상사 말고 회사에 대한 불만은 크게 없었기에, 합법적으로 도피를 하고 싶어졌다. 이때까지만해도 아기보다는 '임신' 그 자체가 하고싶었던 욕구가 컸던 거 같다. 그래서 난임병원을 갔다. 당장 시험관을 시작하려는 건 아니였지만 현재의 문제점(상사 스트레스)을 해소하기 위한 행위로 뭐라도 첫 시작을 해야 그 다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난임병원 첫 방문 느낀점. '와 시험관 하는 사람 진짜 많다'. 막연하게 시험관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이 있었는데 (각자의 사정은 모르지만) 동병상련 느낌이 들면서 반정도는 해소됐던 거 같기도하다. 방문 당일에 근처 산부인과에서 유방검사 후 검사지 제출하고, 생리 시작하고 일주일 뒤에 나팔관 조영술을 찍으러 오라고 했다. 임신의 영역은 진짜 정답이 없고 절대적인 케바케, 사바사의 영역이라고 느끼는데 나팔관 조영술 후기 역시 아프다는 사람, 무난했다는 사람, 부작용까지 와서 힘들었다는 사람 등 다양했고 나는 '아픈 사람' 당첨이였다. 참을만했는데 마지막에 배를 큰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느낌에 아! 하는 외마디와 함께 눈물이 핑 돌았다.
다음 방문때 결과를 들었다. 남편과 나 모두 이상이 없다고 했고 이제 생리 2-3일째 방문을 해서 시험관 시술 절차를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시험관을 하고싶다고 해서 바로 시작할 수 있는게 아니였고 생리주기에 따라 모든 스케쥴이 진행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하지만, 시험관에 문외한이면서 MBTI J인 내가 처음 했던 걱정. '생리가 언제 터질 줄 알고 어떻게 미리 휴가 어떻게 쓰지?' (나의 상사는 휴가 자체와 그 휴가를 여러번 알림하지 않는 것에 대해 예민하다.)
시간이 지나고 그 다음 달 생리 주기가 되었는데,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구조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확인을 받은 안심도 있었고, 당시 내가 상사 스트레스로 자율신경계가 무너져서 이런 저런 약들을 많이 먹고 있기도 했고, 남편의 잦은 출장 등 소사들이 있어서 이번달은 아닌거 같다라는 핑계로 스킵했다. 그 다음달도 정신없이 살다보니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렇게 그 다음 달 생리 주기가 다가오던 날, 트리거가 당겨졌다. 감정적인 피드백과 짜증만 가득한 디렉션에 때마침 터진 생리. 바로 전화를 걸었다. "O월 O일 예약하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