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애가 아들 준을 데리고 사별한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온다. 피아니스트로서의 꿈, 남편, 바람을 피웠다고 알려진 그를 그리워할 권리, 가족의 지지. 모든 걸 잃은 신애는 아무 연고 없는 밀양에서 새 출발을 원한다. 밀양과 처음 만나는 날, 신애가 종찬에게 '밀양은 어떤 곳이에요?' 묻는다. 하지만 밀양의 한자 뜻을 아는 신애는 토박이 종찬보다 그곳의 의미를 더 잘 알고 있다. 밀양으로 도피해온 신애에게, 그곳은 밀양(密陽) 한자 풀이 그대로 비밀의 햇볕이다. 모두가 햇볕 하나 안드는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 남아있는, 남아있어야만 하는 비밀의 햇볕.
밀양이 희망이라는 숨겨진 깜짝선물을 줄까? 그곳의 날들은 흐리기도 하고 맑기도 하다. 바람 부는 날도 있다. 같은 맑은 날조차 신애에게 희망이 되기도, 절망이 되기도 한다. 신애의 물질적 정신적 상황에 따라 피아노 가게에 딸린 신애의 집은 아늑한 1층집이 되기도, 아찔한 50층이 되기도, 암울한 지하층이 되기도 한다.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삶은 신애를 내팽개치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한다. 밀양이라는 고층 빌딩에서 추락하는 신애,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신애. 다시 추락하는 신애.
- [지상 15 층] : 우여곡절 끝에 밀양에 적응하는 신애의 표정은 밝다. 가족들도 인정해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대단하다고 여기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가까워지고, 원하는 땅을 사고 준이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푼다.
- [지하 50 층] : 바로 그 때 아들 준이 박도섭에게 납치 살해당한다. 밀양에 햇볕을 찾으러 온 신애는 '햇볕을 만지며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수 밖에..
- [지상 30 층] : 교회에서 위안을 얻은 신애는 조심스레 계단을 오른다. 교회 내에서 인정 받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는다. 아직은 또래 아이들을 보며 준을 그리워하고 혼자 식사를 할 때 구토감을 느끼지만 그녀는 자주 웃는다. '저는 완전히 다시 태어났어요, 햇볕에도 주님의 뜻이 있더라고요'라고 말하는 신애의 눈빛에서 뭔가 읽어진다. 도덕적 우월감 같은 것. 신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아들 준을 살해한 박도섭을 용서하러 교도소에 면회를 가기로 한다.
- [지하 100층] : 용서의 말을 전하는 신애에게, 박도섭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미 용서했다고 말한다. 그날 혼절한 이후 교회에 나가지 않게된 신애는 하늘을 보며 대화하는 일이 많아진다.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그런 놈을 용서한' 하나님을 원망한다. 장로를 성적으로 유혹하여 타락한 모습을 하늘에 보여주려하지만 장로는 '하나님이 보고있는 것 같다'며 결정적인 순간 바지를 추켜올린다. 종찬에게도 같은 일을 실패한 후 본인을 위한 기도회가 열리는 아파트 창문에 돌을 던진다. 집으로 돌아와 하늘을 노려보며 원망의 눈빛을 보내는 신애는 사과를 깎던 칼로 부지불식간에 자해를 한다. 응급실에 가 입원해야할 정도의 심한 출혈.
- ??? 층 :
퇴원 후에도 종찬은 신애의 옆을 지킨다. 신애의 퇴원 날 옷과 꽃을 준비한 종찬은 신애의 바람대로 미용실로 그녀를 데려간다. 미용실에서 박도섭의 딸이 신애의 머리를 잘라주러 나오고, 딸의 사죄의 눈물도 따라 나온다. 박도섭은 용서받았지만 그의 혈육은 아직 죄를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신애는 반쯤 짤린 머리를 한 채 미용실을 박차고 나온다. "왜 하필 저를 여기 데려 왔어요?" 종찬에게 소리지르며 하늘을 노려본다. 집에서 홀로 머리를 자르는 신애, 종찬은 어느새 찾아와 거울을 들어준다.
몇 층인지 모를 이 공간에, 나아가 모든 공간에 걸쳐 남아있는 사실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그 사실을 비춘다. 머리카락은 자라고 우리는 머리를 자른다는 것, 햇볕은 든다는 것, 인간은 어찌됐든 오르고 내릴 수 있다는 것. 신애를 죽일 듯이 고층 빌딩 밖으로 밀어던진 물질적 사건, 정신적 깨달음과 배신감 이후에도 우리 삶은 계속된다. 생명을 가진 인간의 몸에서 제 멋대로 돋아나는 머리카락은 자라나고, 인간은 서로의 눈을 의식하며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는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햇볕의 의미가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햇볕이 주는 희망을 상실할 때에도 햇볕은 들고 생명을 키운다. 그 의미의 층계를 오르내릴 수 있다는 것은, (주로 누군가의 손에 붙잡혀 특정 층계로 끌려가기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층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