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도 있다. 너무 순수해서 한 번 더러워진 손을 계속 더럽히는 사람. 본인을 더 더럽혀서 순수한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멀어짐으로써 사랑하는 것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사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순수한 표정으로 돌아갈 줄은 모르는 사람.
착한 사람의 것일 수 밖에 없는 뭉툭한 손의 영호는 꽃을 사랑하고 순임을 사랑한다. 그러나 민주화와 탄압의 시대에 아픈 역사는 개인을 피해자 혹은 가해자로 만든다. 영호는 말 그대로 양 쪽 모두였다. 영호는 군인 신분으로 역사에 뛰어들지만 아군의 총탄에 맞고, 시민에게 총탄을 맞추기도 한다. 피 흐르는 영호의 다리와 멎어버린 시민의 심장. 영호의 손은 본인의 피와 시민의 피로 더러워진다.
뭉툭한 손이 더러워진 이후의 수순은 외길이다. 그 손은 한 번 씻는다고 깨끗해지지 않는다. 자신의 손을 더 더럽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멀어지기로 한다. 경찰이 되어 학생들을 더욱 탄압하고 고문하고, 이미 타락한 본인을 찾아온 순임에게 다방 아가씨의 엉덩이를 만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꽃을 사랑할 수 없는 몸이기에 순임이 꽃을 찍으라고 선물하는 카메라를 거절한다. 뭉툭한 손은 그렇게 달아난다.
더욱 더 멀리 달아나던 영호는 돈, 가족, 친구 모든 걸 잃고 자살까지 생각하는 막다른 길에 몰렸다. 그때 순임이 영호를 부른다. 더 이상은 도망갈 곳이 없는 영호는 이제 순임에게서 더 달아나지 못한다. 영호는 순임의 남편이 이끄는대로 순임에게 돌아간다. 이미 혼수상태가 된 순임에게 순수한 시절, 순임이 선물해준 박하사탕을 모으던 시절을 고백한다. 그리고 카메라와 필름 하나를 건네받는다. 아마 필름 속에는 꽃들이 있을 것이다. 순임은 영호의 머릿속에 콩깍지로 가득 덮힌, 신비함으로 만들어진 첫사랑이 아니다. 순임은 영호가 타락한 시절에도 그 안의 본성을 바라보고 믿어준다. 영호의 손을 떠나있던 순수함을 계속 붙잡아 필름 속에 모으고, 결국 영호의 손 안에 돌려준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의 구성처럼 장면과 장면을 이어주는 기차도 거꾸로 달리고 있다. 거꾸로 달려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도착하듯이, 마흔 살의 영호는 순수했던 시절 순임과의 추억이 있는 장소에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계속 도망치고 멀어지던 영호의 손 안에는 꽃이 든 필름이 있고 그는 돌아왔다.
역사와 운명, 시간에 의해서 더러워지는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고 뒤로 돌아가는 것은 퇴행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