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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섬과 트루먼쇼 증후군

하와이 오아후섬 비숍박물관(2)

방문한 곳 비숍박물관(Bishop Museum)

전시내용 폴리네시아 문화, 유물, 하와이의 자연, 화산활동 등

위치 하와이 오아후섬 호놀룰루 공항 근처 

운영시간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혼잡도 단체 관람객의 동선을 제외하고 대체적으로 혼잡하지 않음

가격 성인 28.95달러

※ 하와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박물관답게 여러 채의 건물이 캠퍼스를 구성하며, 그 중 가장 큰 홀은 태평양 홀(Pacific Hall)로, 하와이의 민속문화 상설전시를 관람할 수 있음




지난 글에서 하와이는 도무지 박물관에 갈 수 없는 여행지라고 했지만 사실 한 군데 다녀오긴 했다. (^..^) 

아직 하와이에 덜 스며들었을 때, 항공기가 오아후섬에 막 착륙해서 수하물을 찾고 나왔을 때, 그리고 빅아일랜드로 가는 국내선 항공편이 2시간 정도 남아 잠깐의 여유시간이 있을 그때를 참지 못하고 박물관을 향했다.

     

구글맵을 검색해 보니 하와이 국제공항(Daniel K. Inouye International Airport)에서 차 타고 불과 10분 떨어진 곳에 하와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박물관이 있단다. 찾아낸 박물관을 보여주니 동행인은 '네가 그럼 그렇지' 라는 얼굴이다. 그곳은 여행사 패키지투어에 참여한다면 빠지지 않는 코스인 ‘비숍박물관(Bishop museum)’. 그렇게 하와이 특유의 들떠있지만 묘하게 나른한 분위기가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지기 전에 계획하지 않았던 박물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비숍박물관의 이름은 설립자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래서 주교라는 의미의 비숍이 아니니 가톨릭과는 별 상관이 없다. 설립자인 찰스 리드 비숍(Charles Reed Bishop, 1822∼1915)은 변호사이자 사업가였다. 그리고 하와이 왕국을 통치했던 카메하메하 왕조의 마지막 공주인 파우아히(Bernice Pauahi Bishop)와 왕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사람이기도 하다. 1889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비숍박물관은 먼저 사망한 파우아히 공주를 추모하고 그녀가 계승한 왕가의 보물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와이 비숍박물관의 외관(왼쪽), 하와이안홀(중앙), 입구의 기념품샵(오른쪽)


지금의 박물관은 종합 박물관의 형태로 왕가의 보물뿐만 아니라 하와이섬의 다양한 민속자료와 자연사 표본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중앙 홀에는 거대한 향유고래와 거북이 등의 골격이 장식되어 있다. 폴리네시아 문화사와 자연사 연구에 강점을 보이는 이 박물관은 오랜 역사와 지원사업을 통해 관련 분야의 연구자들을 키워왔다. 그 결과, 지난 약 125년간 만 종 이상의 새로운 식물과 동물을 발견했고 이름을 붙이는 성과도 있었다. 그야말로 대단한 박물관이다.     


이곳에서 나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까? 예전부터 뒤통수를 당겼던 케케묵은 호기심은 바로 폴리네시아 원주민의 정체에 대한 것이었다.      


난 예전부터 폴리네시아 문화는 어설픈 사기극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1998년 개봉한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쇼’를 보면 주인공인 트루먼을 제외하고 모든 등장인물과 세계가 프로덕션의 연출이고 꾸며낸 것이다.

 

폴리네시아 문화도 자세히 보면 누군가 만들어낸 것 같다. 언어도 알파벳 단 열두 개 정도로 대충 해결하고, 하와이섬의 원주민은 생김새도, 옷 입는 모습도, 삶에 대한 태도도, 노래도 모두 뉴질랜드에 여행 가서 만났던 마오리 원주민과 비슷하다.


이건 잘 짜인 연극도 아니고 상상력이 다 떨어진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지어낸 이야기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섬들의 문화가 이렇게 유사하다는 게 말이 되는가?      


박물관에서는 이에 대해 폴리네시아인의 발달된 항해술로 이루어진 문화권이라 풀어낸다. 예전에는 하와이섬에 불시착한 원주민들이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는 식의 설명이었지만, 최근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당시 사람들이 이주와 정착에 있어 분명히 목적성이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엄청난 거리의 섬을 오갈 정도로 항해술이 꽃피우던 항해 르네상스 시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폴리네시아 문명의 항해술에 대한 전시. Hawaiʻiloa는 하와이의 신화적인 항해가이자 어부를 의미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잊힌 하와이섬은 1778년 영국의 항해가 제임스 쿡에게 ‘발견’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북서항로를 찾다가 카우아이섬을 먼저 발견했고 항구에 샌드위치 백작의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한동안 하와이는 ‘샌드위치섬’이라 불렸다. 


잉골푸르 아르나르손이 발견하기 전까지 말 그대로 정말 아무도 살지 않던 아이슬란드 같은 섬도 아니고 많은 원주민들이 살았던 하와이섬을 처음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지만 서양 세계에 의해 하와이 제도가 발견된 이 사건은 그만큼 하와이가 고립된 생태계와 문화 속에 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 묻지 않고, 자기들만의 세상을 영위하는 파라다이스 그 자체였다.     


제임스 쿡이 하와이섬에 도착했을 때, 섬에 사는 사람들은 원시의 형태에 가까웠다. 그들은 폴리네시아 제도의 이스터섬 석상과 같은 것을 조각할 세련된 기술도 없고 수천 킬로미터를 항해할 지식도 없었다. 그래서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성장이 정지된 문명’의 예시로 폴리네시아 문명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들의 탁월한 항해술과 조각기술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알고 보니 이러한 궁금증은 인류에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숙제다. 폴리네시아인들은 기억을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스스로 멀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폴리네시아 문화에는 ‘타푸(tapu)’라는 말이 있다. 금기시되는 행위를 말한다. 이것은 하와이에서 ‘카푸(kapu)’라고 하는 개념과 같다. 카푸로 인해 하와이 원주민들은 조상과 땅을 신성하게 여기고 함부로 들어가서도 안 된다. 그리고 금기는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거리를 두게 만드는 장치다.     


1866년에 새크라멘토 유니언 신문사의 제안으로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4개월간 하와이섬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는 모래사장에 죽은 자의 뼈다귀가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 하와이 원주민들이 문명과 동떨어진 원시인이라 그들의 조상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생각했다. 팔과 다리, 정강이뼈가 모래 속에서 뒹굴었고, 그 와중에 해골은 없었다. 해골은 해골 헌터들이 가져가 팔았을 거란 설명이다.    


  

마크 트웨인과 하와이 일러스트 (출처: Shapell Foundation)


(그는 하와이에 머무르면서 일주일에 편지 한 통씩 편집국으로 발송하는 대가로 20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이올라니 궁전, 다이아몬드 헤드, 코나 커피농장에 심지어 오아후의 감옥까지 찾아갔으니 참 부지런히 다녔다. 진정한 답사가의 자세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사실 그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의 문화를 가졌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뼈들은 모래 속에 매장되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비바람에 표면으로 드러낸 것일 테다. 그리고 마크 트웨인이 방문한 와이알라에(Waiʻalae) 지역은 예전에 카메하메하의 치열한 전쟁터였고, 적군의 시신에서 나온 뼈는 그가 말한 존중이 없이 낚싯바늘을 만드는 데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고, 대부분의 하와이 원주민들은 그들의 조상에 대한 지극한 숭배사상을 가졌다. 그리고 너무나 신성시했던 나머지 조상의 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는 카푸도 있었다. 그러한 금기조항들로 인해 세대 간 단절이 거듭되고, 결국 예전의 빛나던 전성기 시절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만 실체를 드러나게 된 건 아닐까. 태평양 한가운데 하와이의 비숍박물관에서 지금은 사라져 버린 폴리네시아의 문명과 항해술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하와이 오아후섬 비숍박물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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