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프랑스 열차파업에 기차여행 떠나기

프랑스 보르도의 박물관에 가다

Votre train à destination de Bordeaux Saint-Jean est supprimé

  

무슨 말이지?


보르도로 떠나기 이틀 전 밤, 이메일이 도착했다. 프랑스국유철도 SNCF에서 온 메일이었다. 나는 프랑스어 까막눈이다. 보통은 또 광고메일이겠거니 하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하지만 뭔가 불길한 예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람에게는 참 신기한 감각이 존재하는 것 같다. 무슨 뜻인지 몰라도 느낌이 온다.  

    

예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친구가 아랍어는 발음과 어감에서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긍정어인지 부정어인지 알 수 있다고.


“내가 지금부터 아랍어 단어를 하나씩 말할 테니까 이게 good 인지 bad 인지 맞춰 봐.”


난 단어를 듣고 열심히 굿? 배드?를 외쳤지만 테스트 결과는 엉망진창이었다. 그 친구의 실망스러워하는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리 있는 실험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SNCF에서 온 메일에 한해서는 느낌이 왔으니까. 그 메일은 ‘보르도 생장’역으로 가는 열차가 취소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철도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주의! 열차가 취소되었습니다’ 경고문이 페이지를 온통 장식하고 있었다. SNCF 파업의 영향으로 열차가 줄줄이 운행 취소된 것이다. 하루에 10편 정도 있던 열차들 중에 정상운행되는 것은 한두 가지뿐이었다. 그리고 정상운행되는 편은 물론 매진이다.


계속해서 새로고침을 누르며 한 좌석이라도 뜨기를 기대했다. 주말 KTX도 새로고침을 하다 보면 신기하게 한 자리씩 뿅 뜨는 것처럼 SNCF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잔여 좌석을 재빨리 누르고 결제 페이지로 넘어가다 보면 튕겨 나오기 일쑤였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보르도에 갈 수 없게 되니 더욱 안달이 났다. 열차가 안 될 것 같으니 항공과 버스를 알아봤지만 매진이거나 지나치게 비싸거나 노선을 제공하지 않았다. 와인 한 잔만 마셔도 취해서 비틀대는 나는 왜 이렇게 보르도에 가고 싶을까. 이렇게 된 김에 그냥 파리에 계속 있을까. 별생각이 다 들었지만 파리는 하루씩 더 머무를수록 통장이 빠르게 비어 간다. 그래, 비용 때문에라도 슬슬 보르도로 가야 한다.    

 

그렇게 자정에 가까워지자 한 좌석 뜬 110유로짜리 열차를 구매하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가는 거리겠지만 표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결국 파업시기의 프랑스 국유철도는 비싼 값에 원하지도 않는 시간대로 이용 가능한 티켓으로 나와의 사적인 타결을 마무리하였다.     


파리에서 보르도까지는 푸아티에, 그다음 앙굴렘역을 거친다. 732년 프랑크왕국과 이슬람이 유명한 ‘투르-푸아티에 전투’를 치를 때 에스파냐의 총독 압두르 라하만(Abd al-Rahman)이 보르도를 먼저 점령하고 투르로 올라간 것을 생각하면 거꾸로 거슬러 가는 셈이다.      


약 3시간 만에 보르도로 이동했다. 보르도에서는 그동안 위시리스트에 저장해놓은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자동차로 갔다면 6시간 거리라 열차의 빠른 속도에 감사할 따름이다. 동시에 (당연하게도) 3시간 내내 누가 내 짐가방을 훔쳐 갈까 노심초사, 좌불안석이기도 했다. 정말 프랑스의 열차는 혼을 쏙 빼놓는다.


파리 몽파르나스역, 사람들이 열차파업으로 인해 허전해진 전광판을 바라본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1) 보르도의 와인박물관

https://brunch.co.kr/@fbe78980853842a/16

2) 보르도의 미술관

https://brunch.co.kr/@fbe78980853842a/18


작가의 이전글 하와이 섬과 트루먼쇼 증후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