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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관장님의 그림이 걸려있다

프랑스 보르도의 미술관

방문한 곳 보르도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de Bordeaux)

위치 프랑스 아키텐 레지옹 지롱드 데파르망 보르도 시청 옆

운영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혼잡도 적당한 관람객, 쾌적함

가격 성인 8유로, 학생 2유로

※ 건물이 총 3개 동으로 구성되어 북관, 남관, 그리고 갤러리가 따로 떨어져 있음




# 미술관 관장님이 된 화가들    

 

관장님은 직함만으로도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다.

박물관의 최고 책임자, 결재권자이면서 박물관의 정체성, 방향 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력이 대단하고, 동종업계에서 존경받고, 박물관의 얼굴이 되는 그런 분을 떠올리게 된다.    

 

이제껏 만난 관장님들은 좀 유별났다.

세미나에서 만나서 반갑다고 뒤에서 무릎치기를 거는 장난스러운 분도 있었고, 박물관에서 한 번도 일한 경험 없이 관장으로 임명되어 뭐든 직원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는 불가사의한 분도 있었다. 관장님은 소속 박물관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겠지만, 예술기관이자 행정 조직이기에 꼭 학자이거나 전문분야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곳에서 관장을 역임한 예술가들이 있다.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역시 파블로 피카소일 것이다.

스페인 내전 시기였던 1936년, 피카소는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의 관장직을 수락했다.

자유로운 예술가의 영혼이 어떻게 딱딱한 조직과 시스템 속에 몸담을 수가 있을지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저 명목상의 관장이었다는 말도 있다. 그럼에도 피카소는 분명 관장으로서 급여도 받은 사실이 있고, 전형적이지 않은 형태로 미술관의 운영에 개입했으리라 짐작된다. 

피카소는 어린 시절,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하면서 벨라스케스와 엘 그레코의 그림을 보고 영향을 받았으니 미술관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프라도 미술관에 가면 높은 확률로 명화를 모사하는 화가들을 만날 수 있다.


이번에 방문한 보르도의 미술관도 초대 관장님이 보르도 출신의 화가였다.

보르도 미술관은 1801년 설립되어 2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소장품 규모도 대단해서 프랑스 남부에서는 손에 꼽는 미술관 중 하나다. 15세기부터 현대에 걸친 다양한 회화와 조각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대부분 들어봤음직한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외젠 들라크루아, 피에르 보나르, 오딜롱 르동, 앙리 마티스 등…. 이름만으로도 굉장한 화가들이 셀 수 없을 정도다.)     


보르도의 구시가지에서 시청 옆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여행을 하며 들르기도 마치 좋은 동선에 있다. 나도 프랑스의 대표 고딕 건축물인 보르도 대성당(성 안드레 성당, Cathédrale Saint-André de Bordeaux)을 먼저 둘러본 후, 나오는 길에 자연스럽게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 전공도 아니고 미술관에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지만, 미술관은 박물관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 말로 설명하지 않고, 기술을 동원하지 않고도 편안한 감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성 안드레 성당(왼쪽) 그리고 보르도 미술관의 남관(오른쪽)


한참 미술관을 돌아보는데, 벽면의 한 거대한 그림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무려 207 ×340cm 크기다.)

그림의 제목은 간단하게 <보르도의 항구>라고도 말하고, 

원제목으로는 <샤트홍과 바꺌렁이라 이름 붙은 보르도 항구의 일부 모습(Vue d'une partie du port et des quais de Bordeaux dits des Chartrons et de Bacalan)>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느낌대로 번역해 보았다.)     

피에르 라쿠르, <보르도의 항구> (1804-1806년)


이 그림이 더욱 힘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곳이 보르도 미술관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르도 미술관에서 만난 보르도의 화가가 그린 보르도의 모습이지 않은가.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이 초승달의 모양을 닮아 ‘달의 항구(Port de la Lune)’라 낭만적인 별명을 가진 곳, 와인의 유명산지, 세관으로 이름을 날렸던 항구도시인 보르도를 사랑하고, 이곳에 잠시 머물기로 한 여행자에게 의미 있는 그림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바로 보르도 미술관의 초대 관장님인 피에르 라쿠르(Pierre Lacour, 1745∼1814)였다.     


‘달의 항구’는 17세기 이후 보르도 출신이거나 이곳을 방문한 화가들에게 주요한 주제가 되었다. 클로드 조셉 베르네(Claude Joseph Vernet, 1714∼1789)가 그린 그림과 동일한 관점으로 그려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다른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피에르 라쿠르는 클로드 조셉 베르네의 작품(위)과 같은 공간을 비슷한 구도에서 그렸다.


피에르 라쿠르의 그림은 무엇보다 인물의 모습과 행동이 잘 드러난다.

왼쪽 하단에는 상류층으로 보이는 옷차림새의 남녀가 있다. 검정 모자를 쓴 신사는 라쿠르 본인이고, 그 옆의 흰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딸 마들렌,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보르도 미술관에서 일하게 된 아들 피에르도 보인다. 

    

피에르 라쿠르, <보르도의 항구> 중 왼쪽 부분을 자세히 보았다.


오른쪽은 더욱 넓은 공간을 물과 배를 그리는 데 할애했다. 작은 배가 끊임없이 오가는 분주한 항구의 모습과 배에서 와인과 석재를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술관의 설명에 따르면, 조세핀 황후가 보르도를 방문했을 때 피에르 라쿠르의 그림을 보고황제가 항구에 도착하는 생 미셸 쪽의 반대편 모습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피에르 라쿠르, <보르도의 항구> 중 오른쪽 부분이다. 화가의 가족과 항구 노동자들의 모습이 대비되는 구조다.


보르도의 문화예술을 위해 작가로서, 행정가로서 다방면으로 분주했을 그의 모습이 어쩐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 보르도를 사랑한 19세기 화가들


보르도 미술관의 초대 관장이었던 피에르 라쿠르를 제외하고도, 미술관에는 보르도 출신 화가들의 작품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은 알프레드 스미스(Alfred Smith, 1854∼1936)의 <보르도의 부두(Les Quais de Bordeaux)>일 것이다.     

보르도 출신이라면서 왜 성씨가 스미스 씨인 걸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웨일스 출신의 영국인이고 어머니는 보르도 출신의 프랑스인이라는 명쾌한 해답. 보르도의 모습을 담은 그의 그림은 당시 전시회에서도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안개가 자욱이 깔린 부두 사이로 보이는 마스트, 불을 밝히는 가스램프등, 그리고 2층으로 된 트램이 지나가는 풍경.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가 1892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도시적이고, 얼마나 현대적인가..


알프레드 스미스, <보르도의 부두> (1892년)


또 눈여겨보아야 할 화가가 있다.


마리 로잘리 보뇌르(Marie-Rosalie Bonheur, 1822∼1899) 역시 보르도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이다. 

보르도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생시몽주의 교육관에 따른 가르침을 받았고, 화가가 되도록 훈련받았다. 그의 아버지 레이먼드 보뇌르도 화가였으며, 형제자매들의 작품들도 이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어 놀라울 따름이다.     


<꺄마흐그에서 밀 밟기(La Foulaison du blé en Camargue)> 작품이 야성적이고 힘이 넘쳐 화가가 여성이라는 걸 알았을 때 깜짝 놀라게 되는 반전이 있다. 프랑스 남부지역 꺄마흐그에서는 농부들이 밀을 밟고 제분하는 데 말을 활용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겨져 아쉬움이 있다. 1864년부터 1899년까지 무려 30년에 걸쳐 그렸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보뇌르는 19세기 신여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여성 예술가로서 최초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영국에서 더 큰 인기를 얻어 그녀의 작품에 감탄한 빅토리아 여왕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커밍아웃한' 성소수자이기도 해서 그녀의 사생활이 19세기 보르도 지역사회에서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마리 로잘리 보뇌르의 모습(왼쪽)과 그녀의 작품 <꺄마흐그에서 밀 밟기>(오른쪽)


보르도는 20세기 이후에도 알베르 마르케(Albert Marquet), 앙드레 로테(André Lhote), 조르주 도리냐크(Georges Dorignac) 등 걸출한 예술가들이 태어나고 활동한 무대가 되었다.

이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가들이 그린 보르도의 그림이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보르도를 위한 미술관이 있을까.



[보르도의 미술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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