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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애니메이션 중 한 작품만 꼽는다면?

일본 아이치현의 지브리 파크


방문한 곳 지브리 파크(Ghibli Park, ジブリパーク)

위치 일본 아이치현 나가쿠테시 2005년 아이치 엑스포 기념공원 내

운영시간 :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예약 : 사전 예약 必, 공식홈페이지 공지사항 참고(ghibli-park.jp/en/)

가격 : 각 테마에 따라 1,000엔에서 3,000엔까지 다양함

※ 현재 지브리의 대창고, 돈도코의 숲, 청춘의 언덕 3군데만 개장했으며, 모노노케의 마을(2023년 11월)과 마녀의 계곡(2024년 3월)이 추가로 개장할 예정.



#가장 사랑하는 지브리 작품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 가장 사랑하는 작품을 하나만 꼽는다면?     


지브리에서 만든 장편 애니메이션 25개 작품 중에서 20개를 봤다.

(지난 7월 14일 개봉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와 TV 방영용으로 제작한 ‘바다가 들린다(海がきこえる)’를 포함하면 25개가 맞을 것이다)   

  

그중에 어떤 작품이 가장 좋았는지 스스로 묻고 답을 찾는 건 즐거운 일이다.

작품 하나하나 곱씹어보며 작화, 스토리, 캐릭터, 메시지 등이 어땠는지,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는지 답을 찾아보는 건 너무나 고민스러우면서 재미있다.


주변의 지브리 애호가들에게 물어봤더니 대답도 제각각이라 더욱 재밌다.

이제까지 들은 답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코쿠리코 언덕에서, 마녀배달부 키키, 이웃집 토토로 등. 그러면 나는 고민을 시작한다. 흠, 나도 다 좋아하는 작품인데, 무슨 작품을 최애 작품으로 꼽아 볼까….     


좋아하는 작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유도 다르다.     

<모노노케 히메>는 아시타카가 꺅 소리 나오게 멋있어서.

<마루 밑 아리에티>는 인형놀이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서.

<벼랑 위의 포뇨>는 배경음악이 귀여워서.

<추억의 마니>는 엔딩에서 펑펑 울게 만들어서.

<천공의 성 라퓨타>는 오프닝이 충격적이어서.

<아야와 마녀>는 아야가 불쌍한데 꿋꿋해서.

<바람이 분다>는 호아킨 소로야의 그림 속 이야기 같아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귀신들 목욕시키는 장면이 개운해서.     


그래도 하나만 꼽자면 <귀를 기울이면(耳をすませば, 1995년)>이다.

가장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직 이성에 눈뜨지 못한 주인공 시즈쿠는 학교공부는 등한시하는 독서광이다. 별명이 책벌레고 교과서 밑에 소설책을 숨겨놓는다고 혼나던 내 중학생 시절을 보는 것 같다. 

시즈쿠는 철없고 순진하지만 고집 세고 때로는 허황되고 좌절하는 청소년기의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시즈쿠가 첫사랑을 만나는 방법이 책벌레다워서 설렌다. 책 속에 꽂던 도서카드에 익숙하게 반복되는 한 남학생의 이름을 발견하고 ‘누굴까?’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시즈쿠와 세이지 두 중학생이 결혼하자고 약속하는 엔딩까지 콧웃음 치게 순수해서 완벽하다.     


나는 도서카드를 써본 적은 없지만, 

도서관에서 도서카드가 꽂힌 오래된 책은 많이 보았다.

내가 고른 책을 30년 전 아는 사람이 봤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물론 또래 이성친구 같은 게 아니라 학과장 교수님이었다)

그런 때 묻지 않은 설렘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라서 좋다.     



#지브리파크가 외국인에게도 문을 열었다     


때는 2023년 1월 10일 화요일 오후 2시.

중요한 날이라 쉬려 했지만 다른 직원의 더 급한 사정 때문에 휴가계를 내지 못하고,

심지어 안내데스크 직원이 부재한 상황이라 학예실 대신 안내데스크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날이었다.

(작은 박물관의 업무는 종종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정문을 노려보면서 ‘제발 관람객이 들어오지 않았으면’하고 평소와 정반대의 소원을 간절히 빌고,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지브리 파크에서 처음으로 해외 고객 대상으로 온라인 티켓 예매를 시작하는 시각이기 때문이었다. 

    

지브리 파크(ジブリパーク)는 2022년 11월 1일, 일본 나고야 근처에 있는 아이치엑스포기념파크에 문을 열었다. 오픈하자마자 많은 사람이 지브리 파크를 방문했고, 유튜브와 블로그에 후기가 넘쳐났다. 다른 이들이 남긴 후기를 보면서 나는 지브리 작품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너무나 방문을 고대했지만, 쉽지 않았다. 지브리 파크는 일본인 관람객에게 우선 오픈했고, 인터내셔널 관람객은 ‘잠시 대기하시오’ 상태였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1월 10일, 드디어 3월과 4월 두 달간의 날짜 지정 예약을 오픈한 것이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꼭 성공하리라 다짐하며 홈페이지를 열었다.

평소에 아무도 찾지도 않는 박물관이니 문제없이 접속할 수 있겠지, 생각은 오산이었다.

꼭 이럴 때면 신기하게도 관람객이 귀신같이 찾아온다.

문이 스르륵 열리고 나는 환한 미소를 장착한 채 인사말을 건넸다.

‘지브리 파크는 물 건너갔구나….’     


2시 10분이 되어서 홈페이지에 접속을 해봤다. 오픈 시각은 놓쳤다.

내 앞의 대기자는 4천 명에 예상 대기시간은 1시간 30분이 넘었다. 이 정도면 피켓팅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지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몰려든 거겠지? 알 수 없다.

티켓 구매까지 무사히 접속이 될까? 보통 이런 상황에는 기다리다가 튕겨 나오기도 일쑤다.

그런데 정직하게 1시간 30분이 지나고, 나는 예약 페이지에 접속이 되었고,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다음에 다시 접속했을 땐 모든 티켓이 매진되었다.     



# 지브리 파크에서 얻은 것     


과연 사진 촬영에 최적화된 테마파크다.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객들은 줄을 서고, 뒷줄에 선 사람에게는 사진 촬영을 부탁한다. 이 과정 때문에 관람 시간이 길어져서 사진 한 장 남기려는 사람들에게는 인내심이 필수다.


나는 사진을 찍는 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유형이 아니지만, 영화 속 장면과 등장인물들을 실물 크기로 만날 수 있어 설렜다. 특히 <코쿠리코 언덕>에서 카르티에 라탱의 철학연구소와 문예편집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회의하는 장면, <바다가 들린다>의 마지막 장면이 되는 키치죠지 역 등은 인기도 별로 없어서 얼마간 장면 속에 머무르며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중앙전시실' 빨간색 건물 안에 다양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장면들이 있다. 오른쪽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철학연구회만 건물 밖에 있다.


단편 애니메이션의 감동

고로의 산책(コロの大さんぽ)은 15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도쿄의 주택가에서 집을 뛰쳐나가 길을 잃은 강아지 고로가 처음에는 신나게 산책을 하다가 점점 위험에 빠지고 관객을 걱정시키고 안절부절못하게 만들다가 결국 원래 집으로 무사히 돌아간다는 내용. 


도쿄 미타카에 있는 지브리 미술관에서 상영하던 애니메이션인데, 지브리 파크에서도 정해진 기간에 특별 상영한다. 지브리가 이런 단편 애니메이션도 참 잘하는구나, 고로는 참 귀엽구나 느끼게 되는 작품이다.  


영상전시실 오리온좌에서 현재 상영하는 단편 애니메이션의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지브리 기념품

지브리 샵에서는 생각보다 종류가 많지 않은 물건을 비싸게 판다. 스스와타리(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까만 먼지) 별사탕은 1,080엔, 고로 마그넷은 660엔, 하드 커버로 된 이웃집 토토로 노트는 2,750엔, 마녀배달부 키키에 나오는 머그컵(검은 고양이 지지 모양, 실제 애니메이션에서도 키키가 사용한다) 1,760엔 등이다. 


원래도 도토리 숲과 대원씨아아이 공식몰에서 종종 아이쇼핑을 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는 잔뜩 사 와야겠다고 마음먹은 터였다. 그러다 보니 지브리 파크 중 ‘지브리의 대창고’ 입장료가 2,610엔인 데 비하면 기념품 비용은 과다하게 나왔다.      


지브리파크 쇼핑을 원 없이 하고 떼샷을 찍어보았다. 흐뭇하다.


덕분에 아이치엑스포기념공원을 알게 되었다.

처음 ‘지브리 파크’를 기획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땐 아예 공원을 만드는 줄 알았는데, 아이치 엑스포기념공원 부지의 일부에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아이치 국제박람회는 2005년 개최된 바 있다. 21세기 이후 박람회는 오락성이 강한 테마파크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런 측면에서 지브리와의 결합은 아이치엑스포기념공원으로의 확실한 유인책이 된다.


아이치 국제박람회 부지에서 지브리 작품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것은 박람회의 이념을 계승한다는 측면에서도 잘 맞아떨어진다. ‘자연의 지혜(自然の叡智;자연의 예지)’를 주제로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해 나가는가를 주제로 한 환경 엑스포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등에서 보이듯 지브리의 오랜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지브리의 대창고 건물의 내부도 천장만 보면 1851년 런던 수정궁 박람회를 떠오르게 한다. 유리천장을 격자로 가로지르는 철골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데,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어도 군중 속에서 아늑하고 그리운 느낌을 준다. 전시를 다 관람하고 나면 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눕거나 도시락을 까기를 추천한다. 지브리 파크는 아이치엑스포기념공원까지 포함한 패키지다.      


아이치엑스포기념공원은 관람 후 꼭 돌아봐야 한다. 공원 곳곳에 숨겨놓은 '지브리의 잃어버린 물건'도 찾는 재미가 있다.


[일본 아이치현의 지브리 파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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