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엄
방문한 곳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Guggenheim Bilbao)
위치 스페인 비스카야주 빌바오 시내 중심지 라 살베 다리 옆
운영시간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혼잡도 관람객은 매우 많지만, 입구에서 줄 서는 정도는 아님
가격 성인 18유로, 학생 9유로
※ 라 살베 다리를 건너서 반대편 카페에서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구겐하임 쪽은 워낙 붐비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빌바오에서 왔대. 스페인에 빌바오라는 도시, 들어봤어?”
어느 날 배 만드는 일을 하는 친구가 물었다.
한국으로 출장 온 스페인 동료가 빌바오 출신이라서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그럼.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는 곳이잖아.”
나는 빌바오를 아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어떻게 빌바오를 알지? 난 처음 들어봤는데. 역시 똑똑해.”
거꾸로 난 아직도 빌바오에 중공업 회사가 있는지 몰랐는데….
친구의 칭찬에 속으로 재미있으면서도 멋쩍어졌다. 사실,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 중 빌바오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엄은 이른바 ‘빌바오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박물관의 설립이 지역개발과 부흥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기 때문이다.
구겐하임 때문에 빌바오를 가보는 게 평생의 소원이라는 사람도 만난 일이 있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는 강사님이었다. 뉴욕과 파리의 유수 박물관은 모두 가봤지만, 아직 빌바오 구겐하임과는 아직 인연이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빌바오는 스페인 안에서도 접근성이 뛰어나지도 않고, 구겐하임을 제외하면 다른 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뚜벅이가 빌바오에 가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다행히 내가 머물던 프랑스 보르도에서는 빌바오까지 직통 버스, 플릭스(Flix)가 있다.
하지만 새벽에 떠난 5시간의 버스 여행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다.
버스는 만석이라 답답한 공기에 이산화탄소와 담배 냄새가 섞여 있었고, 시트와 바닥은 떨어진 쓰레기와 음식물로 가득 찼으며, 앞 좌석에 달린 메시 주머니에는 이전 승객이 먹다 남긴 커피에 과자 봉투를 꽂아 넣은 상태였다. 휴게 시간이나 버스를 청소하는 시간이 따로 없이 승객이 내린 후 바로 다음 승객을 태우는 시스템이기 때문이었다.
버스는 프랑스 바욘과 스페인 산세바스티안 등을 경유하며 달렸는데, 각 정류장마다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바욘에 있는 보나 미술관(Musée Bonnat)만 문을 열었다면 정말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당장에 모면하고 싶은 자리였다.
여차저차 빌바오에 도착해서 상쾌한 바깥바람을 쐬니 한 시름을 놓게 되었다.
끔찍한 버스는 빌바오에서 마드리드로 향할 때 다시 4시간을 타야 한다….
그 걱정은 잠시 뒤로 하고, 나는 빌바오 시내에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도심은 작은 규모라 버스 터미널에서 걸어서 15분 정도면 거뜬하다.
파리, 바르셀로나, 베네치아 같은 도시와 달리 한국인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빌바오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구겐하임 미술관 때문일 것이다. 그다음에는 스페인 축구를 보는 사람이거나 중공업 분야 종사자 순서다. 미술이나 건축에 관심이 없다면 빌바오는 전혀 들어보지 못할 수도 있다.
길을 걸으며 도로를 장식한 구겐하임 미술관의 광고판을 만났다. 빌바오는 역시 구겐하임의 도시구나, 생각하며 호텔에 도착했다.
배 만드는 일을 하는 친구는 최근 빌바오로 출장이 잡혔다. 해외 출장이 잦은 일을 하더라도 처음 가는 도시는 살짝 들뜨기 마련이다. 빌바오를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도 주변에서 여러 가지 팁을 준 모양이었다.
매년 빌바오에 가는 직장 상사들은 관례처럼 구겐하임을 방문한다고 했다. 그래서 ‘너도 구겐하임에 갈 예정이냐’고 물어봤더니, 친구는 안 갈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아니, 어떻게 빌바오에서 구겐하임을 안 갈 수가?’
깜짝 놀라서 왜 그렇냐고 물어봤더니 아예 안 가는 건 아니고, 미술관 앞에서 사진만 찍으면 그걸로 됐다는 뜻이었다. 직장에서 ‘추천하지는 않는다’, ‘꼭 내부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흠, 빌바오 구겐하임은 건축물 자체가 유명하지, 전시로는 큰 인상을 주지 못한 것인가?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일반 관람객의 소감은 솔직하고 과감하다. 그리고 큐레이터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빌바오 구겐하임은 바스크 자치공동체와 비스카야(Vizcaya) 주의 적극적인 투자와 협력으로 탄생했다. 중공업의 몰락으로 어려움을 겪던 바스크 지방은 도심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구겐하임 재단을 통해 뮤지엄을 유치하고 싶어 했다.
결국 1997년, 구겐하임 미술관은 빌바오에서 개관했다.
철골을 쓰지 않은 거대하고 기묘한 곡선을 가진 티타늄판 구조물은 프랭크 O. 게리의 건축으로 엄청난 유명세를 얻었다. 그는 최초의 해체주의 건축가라는 타이틀을 가졌고 1989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저명한 건축가였다.
개관 첫해에 이미 관람객 수 1억 3천6백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보여주었고, 스페인에서는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 다음으로 가는 랜드마크이자 인기 있는 뮤지엄이 되었다. 도심 리모델링과 부흥의 상징, 신화가 되어 앞으로 새롭게 개관할 박물관들은 빌바오의 사례를 반드시 참고하게 된다.
프랭크 게리의 건축은 20세기 초반까지 박물관 건축은 기능주의적으로 설립하던 경향과 달리, 중반 이후로 현대적인 시도를 한 박물관 건축사의 흐름과 관련이 깊다. 고전적인 전시실보다 공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새롭고 혁신적인 건축이 시선을 끌었다.
(이런 구조물은 전시기획자에게 자율성이자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건축학적으로는 매우 의미가 있지만, 전시공간으로서 잘 쓰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 박물관이 어떤 ‘전시’를 하고 있는지보다 어떤 ‘건축가’에게 지어졌는지 관심의 대상이 된다. 관람객들은 건축물을 전시의 일부, 또는 전시물 자체로 인식하고 관람의 주요 대상에 포함시킨다.
유명 건축가가 설립한 뮤지엄의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안도 다다오의 지중미술관, 리처드 마이어의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장 누벨의 케 브랑리 박물관, 제임스 스털링의 테이트 브리튼, 자하 하디드의 로마 국립 21세기 미술관 등…. 건축물만으로 가봐야 하는 곳이 되었다.
프랑스의 작가 모리스 블랑쇼는 그의 저서 <우정>에서 “박물관은 신화가 아니라 신화가 있는 곳이다”라고 적었다. 예술작품, 유물, 상징들은 현실에서 동떨어진 신화의 파편들이지만, 박물관 속에 배치되면서 집합체가 되고 일련의 스토리가 부여되며 역사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구겐하임은 전시나 내용물이 아닌, 장소만으로 신화 자체가 되었다. 관람객들은 전시를 면밀하게 보지 않아도, 야외전시장에서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거미)이나 제프 쿤스의 꽃 강아지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 또는 근처 카페에서 건물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시간만으로도 빌바오 구겐하임을 충분히 즐겼다고 느낄 수 있다.
구겐하임의 큐레이터에게는 과제로 남겨질 수 있는 문제겠지만, 아무렴 어떠랴. 여전히 빌바오 구겐하임으로 향하는 관람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잔뜩 기대하게 해놓고 실제로 보면 실망할) 쿠사마 야요이의 간단한 설치예술작품을 보기 위해 한시간 넘게 줄을 선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