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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단 3곳만 남은 태피스트리 공장

스페인 마드리드의 로열 태피스트리 팩토리

방문한 곳 왕립 태피스트리 공장(스페인어: Real Fábrica de Tapices, 영어: Royal Tapestry Factory)

위치 마드리드 아토차 기차역과 레티로 공원 사이

운영시간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까지

혼잡도 소규모 가이드 투어로 5명에서 15명 사이

가격 일반 성인 6유로

※ 하루 4번 10시, 11시, 12시, 1시에 가이드 투어를 진행하므로 이때 맞춰서 방문해야 함. 투어는 스페인어 또는 영어로 진행되며 안내에 따르면 영어 가이드 투어는 오후 1시라고 함.



# 마드리드 아토차에 묵으면 좋은 점     


마드리드의 숙소는 아토차 기차역 근처였다.

아토차 기차역에 머물면 좋은 점이 많다. 레티로(Retiro) 지역에 인접하기 때문인데, 레티로에는 프라도 미술관, 레티로 공원, (무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소장한)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가 모두 가까워진다. 스페인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 걷기엔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하루 8시간 오피스 워커는 이때를 비타민 D를 마음껏 합성하는 기회로 삼는다.  

   

유럽은 일부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다.

작게는 야바위꾼, 소매치기, 도네이션을 빙자한 삥 뜯기..로 시작해서 인종차별, 테러의 위협 등 떠오르는 사건도 많다. 직접 당해본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나는 집단 린치 걱정 때문에 오랫동안 스페인에 가지 못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어학연수를 갔다가 돌아온 대만 친구가 ‘스페인은 위험하니 가지 말아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길을 걷다가 아무 이유 없이 집단 린치를 당할 뻔했다고.     


그런데 스페인은 가지 않을 수 없는 나라다.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구글맵에 하나씩 저장한 위시리스트는 스페인 영토에 점점이 찍혀갔다.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바야돌리드의 국립조각관,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바르셀로나의 고고학 박물관 등…. 명성이 대단해서 가고 싶은 곳도 있고, 단 하나의 작품을 보려고 가고 싶은 곳도 있다.      


이번에 큰 결심을 했다.

스페인으로 나 홀로 여행을 가자! 대신 낮에만 돌아다니자. 걸을 땐 아무도 붙잡지 못하게 빠르게 걷자. 핸드폰엔 고리를 달아서 소매치기를 방지하자 등등 미지의 위험에도 대비했다.    


레티로 공원 안의 왕립식물원 산책길이다.

 

마드리드에 도착하자 맥이 풀려버렸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는 마귀의 도시 같은 게 아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은 살짝 들떴고 (물론 관광객들이다) 공원에는 평화로운 음악이 흐르고 카페의 종업원은 친절하다. 다만 호텔 앞에는 매트리스를 깔고 누운 노숙자가 있다. 킹 사이즈 베드라서 놀라울 뿐이었다.



# 로열 태피스트리 팩토리로 가는 길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 찰스 1세의 태피스트리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건 하나의 미술품에 대한 감정의 요동이 아니라, 거대한 직물을 짜기 위해 동원된 수많은 노동력과 이탈리아에서 영국까지로 거쳐온 여정이 그려져서였다.   

  

태피스트리에 대한 약간의 관심이 생긴 찰나, 구글 맵에서 ‘로열 태피스트리 팩토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묵은 아토차의 숙소와 프라도 미술관의 중간에 위치했다. 아직도 태피스트리를 제조하는 공장이 있다는 건가? 그것도 ‘로열’이 붙었다면 스페인 왕실에서 관리하는 오래된 유산일까? 궁금해서 눌러보았더니 박물관은 아니지만, 전시가 마련되어 있고 관람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붙었다. 마침 잘 되었다. 태피스트리에 대해 더 알아볼 찬스다.     


지도상으로 가까워 보여도 걸어서 30분이나 걸렸다. 약간 오르막이라 조금 힘들었지만 건물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대문이 굳게 닫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용기 있게 인터폰을 눌러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올라! 전시 볼 수 있나요?”     


직원은 영어로 하는 가이드 투어는 오후 1시라고 알려주었다. 로열 태피스트리 팩토리 관람은 가이드 투어로만 가능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약 1시간 정도 남았다. 나는 레티로 공원 중심부에 있는 크리스털 궁전(Palacio de Cristal)을 보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항상 런던의 수정궁과 박람회에 대한 환상을 가졌는데, 스페인에 그걸 재현해 놓은 장소가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레티로 공원에는 런던 수정궁을 본뜬 건물이 있다. 정작 런던의 수정궁은 1936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니 수정궁을 보려면 마드리드를 와야 한다.
레티로 공원 입구에 있는 빵집. 

아뿔싸. 아쉽게도 크리스털 궁전은 리모델링으로 문을 닫았다. 아무런 계획 없이 막 다녔더니 가는 곳마다 턱 막히는 느낌이다. 공원 벤치에 잠시 앉아 질긴 빵을 뜯어먹다가 가이드 투어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 단 3곳만 남은 유럽식 태피스트리 공장  

   

시간에 딱 맞춰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독일에서 온 가족, 캐나다에서 온 노부부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입장하자마자 관람료를 징수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ICOM 카드를 내밀었지만 소용없다. 이곳은 박물관이 아니다. 입장은 6유로다. 카드도 받아준다.     


가이드의 이름은 레이첼, 홍보를 맡은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레이첼은 영어로 설명하는 일이 많지 않은지 능숙한 실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알아듣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게 더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로열 태피스트리 팩토리 견학은 가이드와 동반하여 약 45분간 진행된다.   


입구에서 로열 태피스트리 팩토리의 가이트 투어가 시작된다.

  

팩토리는 남향이고 창문이 커서 빛이 무척 잘 들어온다.

이곳이 설립되었던 18세기에는 조명이 발전하지 않아 색깔을 구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노동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햇빛은 직물과 최악의 궁합이다. 그래서 지금은 커튼으로 커다란 창문을 모두 가려놓았다.     


태피스트리는 전통적인 베틀을 이용해 손으로 직접 짠 직물 예술품을 말한다. 직조공은 앉아서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직으로 실을 걸고, 태피스트리는 한 칸씩 층층이 완성된다. 대부분 태피스트리 작품은 굉장히 커서 직조공 2~3명이 하나의 작품에 동시에 투입된다. 이 작업은 고되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예전에는 대부분 직조공이 남성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여성이 조금 더 많아 보였다.    

 

실제 직조공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


그림은 보통 화가 1명의 작품이지만, 태피스트리는 공동의 작업물이다. 그래서 태피스트리는 예술품으로 볼 수 있어도 누가 짜낸 것인지 이름이 남지 않는다. 오히려 태피스트리는 시리즈물의 경우 액자처럼 기둥을 만들어 표시하고, 하단에는 마크를 달아 양질의 제품이라는 걸 증명한다.     


복층 구조로 된 작업장의 위층은 창고로 사용하는데, 이미 염색된 양모를 27톤 보유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톨레도와 부르고스 등지에서 생산하는 양모를 구매하고 있으며, 공장에서 직접 염색을 하지 않고 염색된 실을 사용한다. 양모 작업물도 있지만, 역시 면직물(cotton) 제품이 상징적이다. 지금은 코튼보다 리넨(linen)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염색된 실뭉치를 공장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18세기까지 꾸준히 유럽인들에게 사랑받았던 태피스트리는 점차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할 예술품은 무궁무진해졌다. 왕실과 귀족들의 취향은 프랑스혁명, 나폴레옹 전쟁 등을 겪으며 그림, 도자기, 조각품 등으로 옮겨갔다.      


레이첼은 이제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태피스트리 공장은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3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익을 내기 위한 공장이 아니라 역사문화적인 현장으로서 보존하는 차원이 크다. 공장 건물 자체도 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다.      


파리의 고블랭 공장(Manufacture des Gobelins)이 대표적이다. 루이 14세 이후 프랑스 궁전에 태피스트리 작품을 납품하기 위해 만든 공장인데, 현재도 운영하고 있으며 똑같이 가이드 투어도 가능하다.    

 


# 로열 태피스트리 팩토리에선 사진을 촬영하면 안 된다.     


로열 태피스트리 팩토리는 1720년 펠리페 5세가 설립했다. 에스파냐 계승전쟁을 종결시킨 위트레흐트 평화조약으로 인해 벨기에의 땅과 태피스트리 제조소를 잃게 되어 마드리드에 공장을 새로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그는 왜 마드리드에 태피스트리 공장을 지었을까? 왕궁과 근처에 사는 고위층에게 사치품을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서다. 고급품이 아닌 일반적인 퀄리티의 태피스트리도 제작에 최소 6개월 이상 소요된다고 하니 비싸고 사치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가이드 레이첼은 투어 중의 사진 촬영을 제한했다.

투어 참여자가 ‘사진을 촬영해도 괜찮냐’고 물어보니 찍어도 괜찮을 때만 알려주겠다고 했다. (촬영한 사진은 모두 그때를 노리고 파바박 찍은 것이다.) 사진을 제한하는 이유 역시 태피스트리가 사치품이기 때문이다. 주문한 고객들은 자신의 작품이 유출되기 원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주문 상담도 할 수 있다. 최소 5천만 원 이상이다. 나만을 위한 태피스트리를 만들기 위해 상담을 받는 달콤한 꿈만 한번 꿔보았다.    

 

로열 태피스트리 팩토리는 홈페이지에서 VR 투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직접 방문해서 관람하는 것만큼의 생생함은 아니지만, 큰 장점이 하나 있다. 투어에서는 돌아보지 않는 응접실(sala)를 실컷 구경할 수 있다. 고야의 방, 라파엘 멩스의 방 등 유명한 화가의 이름이 붙었다.     


https://tourmake.it/en/tour/9b0b1b4992855c986c8e7d7dd810fbfe


[마드리드의 로열 태피스트리 팩토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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