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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진 원본 그리고 복원된 그림 사이에 서서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책으로만 접하던 명화를, 미술관에 가서 원본을 접하게 되면 놀라울 때가 있다.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생각보다 작아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생각보다 커서, 성베드로성당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떡하니 등장해서. 작은 책 종이 안에 갇힌 그림과 예술품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튀어나오면, 당혹스럽기도 하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도 든다. 미술관을 찾는 즐거움은 이런 데서 오는 게 아닐까?  

   

미술관은 이처럼 종종 관람객에게 반전을 선사한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를 영견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헤로니모스 문으로 들어가는 0층 전시실에서 내가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 고야도 아니고, 브뢰헬이나 보쉬도 아닌 프라 안젤리코여야 했다. 그의 작품을 만나러 한국에서부터 이토록 먼 길을 왔다. 나는 미로 같은 홀과 작은 전시실 사이를 지나 빠르게 56B 전시실에 도착했다. 순간, 너무 놀라서 헉, 하는 숨을 내뱉었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1426년작, 프라도 미술관 소장


“간결하고 삼가듯 조촐한 아름다움”이 묻어날 것으로 예상했던 프라 안젤리코의 번쩍거리는 화려함이란! 절대적인 존재의 두 손이 뻗어 나오는 태양의 금빛은 그대로 마리아의 상체에 쏟아지고, 그녀에게 수태고지를 보여주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날개는 고려시대 나전칠기처럼 촘촘하고 수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왼쪽에는 아담과 이브가 얼굴을 붉히며 낙원에서 막 추방당하고 있다. 인간의 원죄와 구원의 손길이 동시에 등장하는 모습이다.     


나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서경식 선생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1991년)’를 읽고, 늘 마음 한편에 품었던 프라 안젤리코였다.      


볼품없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뜰에는 초록색 풀이 나 있으나 꽃들은 작고 가련하다. … 성모의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화 혹은 올리브 가지를 손에 들게 되어 있는 가브리엘도 여기서는, 그 등에 붙은 날개만이 찬란한 색채를 하고 있을 뿐…. (중략) 마르띠니에게서 볼 수 있는 비잔틴 느낌의 화려한 장식도 일체 멀리하고 있었다. - 서경식, ‘나의 서양미술 순례’ 중 일부     


작품의 오른쪽에는 최근 예술단체로부터 후원을 받아 복원을 했다는 작은 패널이 붙어 있었다. 2018년 ‘프라도 미술관의 미국 친구들(American Friends of the Prado Museum)’과 ‘피렌체의 친구들(Friends of Florence)’ 예술단체는 15만 유로를 기부하였고,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의 복원작업이 이루어졌다. 가장 마지막으로 복원했던 건 1943년의 일이니, 꽤 오랜 세월 동안 자연에 의한 퇴색과 균열이 일어났다. 두 개의 나무 패널을 지지하던 것이 분리되며 가브리엘 천사를 관통하는 균열이 일어났고, 공기 중의 먼지와 오염 등으로 인해 생생한 색감과 빛을 잃었던 터였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복원된 <수태고지>는 멀리서 한눈에 보아도 신상의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를 복원하는 모습, 프라도 미술관 유튜브 영상(Restauración de la capa pictórica: La Anunciación) 참조


맛집의 원조 논쟁이나 프로그램 진품명품에서 진품과 가품을 구별하는 게 중요하듯 사람들은 ‘오리지널리티’에 관심이 많다. 처음에 갖고 있던 것, 원래의 모습, 오리지널이라는 단어가 주는 진정성은 늘 추구해 온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되려 시간이 지나고 빛이 바래면서 어떠한 정동(情動)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탈색되고 나무껍질이 벗겨진 고찰(古刹)을 보며 감탄하다가 새롭게 단청을 싹 해버리면 마음이 식어 버린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마음의 휴식을 취하려는 현대인에게 휘황찬란한 색조의 단청은 어딘가 어색하게 보인다. 프라 안젤리코의 복원된 그림을 보면서 한국 사찰의 오방색 단청이 생각난 것은 그러한 이유였다.     


물론 미술품 복원은 중요한 일이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오래 지킬 수 있는 기술적인 방법이고, 전문가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다. 복원 과정에서 실수가 생겨 다시는 미술품의 원래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상상하기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복원을 망친 예술작품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스페인에 있다. 작은 시골 마을 보르하의 산투아리오 미제리코르디아 성당에는 작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마르티네즈라는 화가가 그린 <에케 호모>로, 고난의 길을 걷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약 백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이 점점 바래고 뜯겨나가자 아마추어 화가였던 할머니 히메네스는 단 하루 만에 그림을 복원했다. 사람들은 복구된 그림을 보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본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엉뚱한 그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원숭이를 닮았다고 해서 ‘원숭이 예수’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 그림의 숨겨진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처음 ‘원숭이 예수’를 본다면 웃음이 나올 것이다. 이상하게 우스꽝스러워 보는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처음엔 미술품을 복원시킨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작품으로 탈바꿈한 이 할머니 예술가를 고발하고 죄를 청해야 한다는 일부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원숭이 예수’ 그림을 좋아했다. 이 그림으로 인해 작은 시골 마을까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졌고, 거꾸로 훨씬 대단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마르티네즈가 그린 원본(왼쪽)과 히메네스가 복원을 시도한 작품(오른쪽)



<수태고지> 속 마리아는 밝은 금발에 소녀같이 앳된 얼굴과 포동포동한 볼살을 갖고 있다. 

그녀가 앉아있는 건물의 천장과 아치는 코발트블루 배경에 도트로 장식해 고급스럽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반면, 서경식 선생이 산마르코 수도원의 복도에서 마주한 프라 안젤리코의 또 다른 <수태고지>는 비 온 후 흐린 하늘과 차가운 공기가 느껴질 정도로 전체적으로 차분하다. 그리고 마리아는 단정하다 못해 딱딱하게 굳었으며 얼굴은 30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어딘가 핼쑥하다. 두 그림을 직접 비교한다면 더욱 그렇다.     


15세기 초, 프라 안젤리코는 <수태고지>를 여러 점 그렸다.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를 예고하는 이 장면은 프라 안젤리코가 즐겨 그렸던 주제였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소장한 <수태고지>는 그중에서도 초기 작품으로, 원래는 피렌체 근처 피에졸레(Fiesole)의 산 도메니코 수도원에 그려진 제단화였다. 이 그림은 여러 수집가를 거쳐 1861년 프라도 미술관에 오게 되었다. 프라 안젤리코는 다음으로 코르토나(Cortona)에 있는 산 도메니코 수도원 제단의 <수태고지>를 그렸다. 산 마르코 수도원의 것은 시기상으로 가장 마지막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담과 이브가 추방되는 장면을 삭제한 것과 한층 무거워진 인물과 주위의 풍광은 어떠한 이유에서였을까?     


피에졸레의 산 도메니코 수도원은 프라 안젤리코가 수도사로서 몸담았던 곳이기도 하다. ‘천사 같은 수도사’라는 뜻의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라는 이름이 붙기 전, 귀도 디 피에로라는 수도사는 엄격한 계율을 지키고 스스로 매질하면서 속죄하는 형제단에 속했고, 수도원에 들어가면서 이름을 지오반니로 바꾸었다. 수도사 화가로서 그는 기도하는 자세로 제단화 작업에 임했고, 그의 그림은 그 어떤 성화보다 우아하고 섬세해서 숭고함을 자아낸다.      


서경식 선생은 보티첼리의 <수태고지>와 프라 안젤리코를 비교했고, 그의 책을 읽은 나는 자연스럽게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작품과 산 마르코 수도원의 것을 견주게 되었다. 그러니 느끼는 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금색으로 덮여 화려하게 살아난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생각과는 달랐지만,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당혹스러움으로 기억에 남았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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