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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이 얼마인지 꼭 확인하세요

아이슬란드의 야외 박물관(1)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이슬란드는 아주 비싼 나라다. 그야말로 관광업계의 명품.


그리고 한국인 관광객은 여행경비를 절약하기 위한 팁을 아주 많이 갖고 있다. 컵라면, 햇반, 통조림 반찬 등을 바리바리 싸가는 건 기본인데, 특히 컵라면은 컵, 라면, 수프를 해체해서 컵은 컵끼리 겹쳐 쌓아 올리고 라면과 수프도 한데 따로 모아야 효율적이다. 노천탕도 어느 산골짜기에 숨어있는 무료 노천탕을 기어코 찾아간다. 어쩔 수 없다. 관광객에게 가장 유명한 ‘블루라군(blue lagoon)’ 노천탕 입장료는 2명이 방문했을 때 무려 15만 원을 내야 하고, 평범한 식당에서 외식을 하고 싶다면 약 10만 원 정도다.

     

이렇게 값비싼 나라의 문턱을 넘어설 때 그 어떤 나라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따뜻한 환영을 경험할 수 있다.


"감솨합니다!"


호텔이나 식당처럼 서비스 직종이 아니라 입국 심사하는 직원이 이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한국어로 인사를 해준다고? 그러곤 공항 직원은 내 여권에 아주 경쾌한 리듬으로 스탬프를 쾅! 하고 찍었다. 나도 자동반사로 ‘앗,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로 화답했다.


처음 듣는 국경에서의 한국어 인사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여기까지 잘 찾아왔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인사는 마치 ‘외딴 섬나라까지 일부러 찾아온 당신의 수고로움’에 경의를 표하며 비싼 값을 지불할 여행자의 앞날을 기대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아이슬란드에서의 첫 지출은 택시였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저녁 8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아이슬란드 케플라비크 공항에 밤 11시 55분에 떨어졌다. 너무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첫날 숙소는 이름에 ‘에어포트’가 붙은 호텔로 미리 정해놓은 상황이었다. 심야라 과연 택시가 있을까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공항 앞에는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가 끝도 없이 줄지어 있었다.


만국 공통의 암묵적 규칙에 따라 가장 앞에 서 있는 택시로 가서 탑승했다. 택시기사는 바이킹의 후예가 아니라 소말리아에서 온 이민자로 ‘아쉬트릭’이라고 통성명을 했는데, 짧은 이동시간에 자신의 아이슬란드 생활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은 싹싹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약 1.3km 이동거리에 택시비는 23,275 ISK(한화로 약 21,700원)이 나왔다. 과연 다음 달 카드값은 확인하고 싶지 않을 만큼 비싸다.

     


아이슬란드는 박물관 입장료 역시 비싼 편이다.

대충 훑어보니 국립을 포함한 대부분의 박물관이 입장료를 받고 금액은 약 2~3만 원 정도였다. 박물관에 들이는 돈을 아끼고 싶지는 않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서너 군데 들르고 싶었는데 그럼 한 사람당 입장료만 8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한정된 예산에서 어떤 박물관을 골라야 하나 고민이 깊어지던 중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시내에 있는 국립, 시립 박물관 관람이 포함된 ‘레이캬비크 시티 카드(Reykjavík City Card)’를 알게 되었다. 나는 6만 원짜리 48시간 카드를 구매했다. 48시간 이내에 세 군데 이상을 방문해서 뽕을 뽑겠다는 계산이었다.

          

한국에서는 ‘박물관=공짜’라는 인식이 강하다.

일부 특별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립박물관이 관람료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문화 향유의 기회를 더 널리 제공하기 위해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은 무료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잠시 유료화로 전환된 적이 있긴 하지만, 박물관은 여전히 더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고 지역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무료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돈을 지불하고 입장하는 박물관은 어색하기도 하고 더 비싸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에 더해 유료 박물관에 대한 생경함은 박물관에 대한 첫 기억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보통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박물관을 처음 방문하게 되는데, 자발적인 방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박물관은 인솔자의 손에 끌려가는 곳, 공부하고 학습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박물관은 피곤하고, 어렵고, 여전히 낯설다. 돈 주고서까지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그러나 공짜로, 거저 주어지기 때문에 관람태도가 무성의해진다던가, 재정이 악화되어 학예사가 양질의 전시를 기획할 수 없다던가, 무료 여부와 상관없이 관람객은 여전히 늘지 않는다는 점 등이 유료로 전환하자는 주장에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이 때문에 박물관의 유료화는 계속해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으며, 그럴 때마다 주머니사정이 가벼운 나와 같은 박물관 애호가들에게는 위협이 되곤 한다.     


한국인 관광객에게 박물관 입장료 2만 원은 깜짝 놀랄 가격이지만, 사실 레이캬비크 시내에서 2만 원은 길거리음식인 케밥을 하나 사 먹는 정도다. 출출한 오후에 간식으로 케밥을 하나씩 사 먹으려고 주문했는데, 한 개당 2만 원이라 두 명이서는 4만 원을 지출해야 한다는 걸 알고 1개만 주문해서 반씩 나눠먹었다. 모든 가격이 놀라움을 선사하기 때문에 아이슬란드에 있는 동안 머릿속에 숫자와 셈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케밥 한 개 가격과 맞바꾼 박물관의 티켓이 가져다 줄 경험에 기대감이 부풀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커버이미지 사진 출처: Nanna Gunnarsdóttir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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