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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고작 37만 명, 아이슬란드어도 사라질까?

아이슬란드의 야외 박물관(2)

아이슬란드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박물관은 바로 ‘Árbæjarsafn’이었다. 레이캬비크 중심지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Árbær’ 지역에 위치한 야외 박물관이다. 아이슬란드의 야외 박물관이라니, 꼭 가봐야 하지 않을까. 야외 박물관은 북유럽에서 제일 먼저, 가장 두드러지게 발달했다. 그래서 스웨덴, 노르웨이 등을 여행한다면 필수 코스인데, 북유럽의 섬나라에서 만든 야외 박물관도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박물관 이름은 한국어로 표기도 함께 달아야 하겠지만, 일단 어떻게 쓰는 게 맞춤법 표기에 맞거나 원어에 가까운지 확신이 없어 이번 단락에서는 잠시 보류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어로 된 간판, 안내문, 표지판 등을 보면 일단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사실 잘 모르는 언어는 잘 들리지도 않는다. 인터넷으로 찾아봤을 때 ‘Árbær’는 ‘아욱흐빠야르’ 또는 ‘아우르빠야’로 들리는데 맞게 잘 들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열심히 검색한 결과 한 아이슬란드 가이드북에서 ‘아우르바이르 야외 박물관’이라고 표기한 것을 보고 일단 반영하려고 한다.

     

아이슬란드어가 얼마나 낯설고 읽기 어려운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시기도 있었다. 바로 2010년 아이슬란드 화산이 폭발해 대부분의 유럽 상공이 화산재로 뒤덮여 항공편이 마비되었던 때다. 당시 나는 대학교를 다니며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 중요한 뉴스였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인해 레이캬비크 대학교는 교환 가능한 학교 목록에서 잠시 삭제되었다.


폭발한 화산은 ‘Eyjafjallajökull’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CNN을 비롯한 주요 언론사들은 화산의 이름을 발음하기 어렵다고 대놓고 뉴스에 보도했다. 아마도 인명사고나 피해가 적었기 때문에 ‘이번에 폭발한 아이슬란드 화산의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가 보도내용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이 화산은 ‘Eye-a-fyat-la-jo-kutl’ 즉 ‘아이야퍄들라이요쿨’이라고 읽으면 가장 원어 발음에 비슷하다고 한다.

     

아이슬란드어는 ‘요쿨살론(Jökulsárlón)’, ‘굴포스(Gullfoss)’, ‘그료타가우(Grjótagjá)’ 등 특유의 파열음이 주는 탁하고 거친 분위기가 있다. 트롤과 요정과 용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거대한 바위와 이끼, 요새를 닮은 용암대지, 파도가 부딪치는 검은 해변에 어울리는 언어다. 이렇게 매력적인 아이슬란드어를 원어에 가깝게 읽어보려고 애쓴 것은 여행하면서 경험한 낯선 외국인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다. 보통 영문으로 표기된 한국인의 이름은 각 나라가 가진 알파벳 읽는 법에 따라 달라지거나 엉뚱하게 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서는 다정하게도 읽는 법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신의 이름을 어떻게 읽는 게 맞는지 알려줄래요? 미안해요, 하지만 제대로 발음하고 싶거든요."


그리고 내 이름이 몇 번의 연습 끝에 제대로 불리는 순간, 그냥 동아시아 어떤 나라에서 온 귀찮은 관광객이 아니라 존중받는 개인이 되었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아이슬란드에 있는 동안 이 나라의 언어에 대해 애정을 갖고 한 단어라도 더 배워보려고(발음을 읽어보려고) 했다.


     


여행할 때 나는 그 나라의 서점에 가서 꼭 책 한 권은 사려고 한다. 아이슬란드어를 제대로 배울 수는 없지만 책을 소장하면서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서다. 에이먼슨(Eymundsson) 서점은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서점 체인으로 여러 지점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친절한 직원에게 만화책 코너가 어딘지 물어보았다. 전혀 모르는 언어로 된 책을 살 때는 문자만 잔뜩 적힌 책보다는 그림과 적절히 섞인 어린이용 도서나 만화책을 선호한다. 그런데 꽤 넓은 서점에서 점원은 만화책 코너가 없다고 했다. 대신 어딘가 소설 사이에 껴 있는 만화책 몇 권을 찾아 나에게 추천해 주었다.


아이슬란드 유머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만화책이고, 굉장히 유명한 책이라고도 덧붙였다. 나는 사전 찾아가면서 읽어보겠다고 하고 케밥 한 개 정도의 책값을 지불했다. (아이슬란드 유명작가 후글레이쿠르 다그손(Hugleikur Dagsson)의 만화책인데 블랙 코미디 장르로 그림체는 단순하지만 수위가 센 편이다.)



서점에서 구매한 후글레이쿠르 다그손 작가의 책 표지와 이미지 한 컷이다. 오른쪽 만화 속 대사는 "이제 어때? 딱히 유쾌한 기분은 아니지?"


사전 없인 읽지도 못할 책을 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이슬란드 사람이 만화책을 읽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요즘 일본에서 서점과 극장가에서 모두 히트한 ‘주술회전’이나 ‘귀멸의 칼날’을 읽고 싶어 진다면 아이슬란드어 번역판은 있는 걸까? 


아이슬란드는 인구는 고작 37만 명이다. 이 작은 나라에 번역가는 얼마나 될까? 한국어-아이슬란드어 번역가는 과연 있을까? 아이슬란드는 교육 수준이 높아 대부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렇다면 이 37만 명은 영어권 독자로 간주되어 아이슬란드어 번역판을 따로 만들 것 같지 않다.


저명한 루마니아의 소설가 에밀 시오랑(Emil Cioran)은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를 루마니아어로 번역하다가 자신의 모국어로는 읽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활동하던 1930년대 당시 루마니아의 인구는 1천만 명을 넘는다. 이에 비교하면 아이슬란드는 루마니아의 한 작은 도시 정도에 불과하는, 터무니 없이 작은 동네일 뿐이다.

     

새삼 모국어인 한국어로 그나마 세계 각국의 다양한 책을 번역서로 읽을 수 있는 점에 감사하게 되었다. 동시에 아이슬란드어가 사라져 버릴까 걱정되기도 했다. 큰 나라에 편입된 작은 민족들이 으레 자신의 민족언어를 잃어버렸던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슬란드어 역시 ‘박물관 언어’로 과거를 추억하는 언어로 남을까, 아니면 오랫동안 생명력을 지속할까? 한 마을, 민족, 또는 국가 등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나 동질감이 강할수록 언어는 질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야외 박물관(open air museum)은 그 나라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노스탤지어를 엿보기에 좋은 공간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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