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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가지 않는 특별한 전시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2)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을 가기 위해 튜브(런던 지하철)를 타고 사우스켄싱턴 역에 내렸다. 

런던의 지하철은 에스컬레이터 속도가 빨라 정신없고 조명이 약간 어두워 음습했다. 그런데 역사에서 박물관까지 이어진 지하통로를 걷는 길이 순간 경쾌해지기 시작했다. 벽마다 기획전시 ‘한류(Hanllyu! The Korean Wave)’ 포스터가 붙어있어서였다. ‘한류’ 전시 포스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기획전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제네시스의 후원을 받아 마련되었다. 학예사들의 이름도 모두 한국인이거나 한국계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전시는 한국인의 시선에서 한국의 대중문화가 어떻게 세계에 통용되는 대중문화가 되었는지 이야기한다는 것인데, 그 어려운 이야기를 과연 어떻게 풀어냈을까?  

    

전시내용을 보기 이전부터 이 전시의 주요 관람대상은 결코 내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기관이라면 공신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지 몰라도 해외 박물관에서 그 기관을 맞닥뜨린다면 슬금슬금 한 발짝씩 물러나게 된다. 그것은 내가 ‘한류’라는 현상을 내부자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글과 영상은 수도 없이 노출되어 온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세계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반영하거나 과한 포장을 입히면서 국가를 브랜드로서 홍보하려는 건 아닐지 먼저 의구심이 든다.   

  

아마 그런 이유로 ‘한류’ 기획전에 한국인이 없었던 듯하다. (전시실 한구석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HOT의 ‘캔디’를 한국어로 따라 부를 수 있었던 건 나밖에 없었다) 몇 가지를 제외하곤 한국인이라면 너무 잘 알고 있는 영화, 드라마, 음악, 화장품 등이 쭉 나열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세계에서 잘 팔리는 ‘made in Korea’ 종합선물세트 같다. 거기에 무료 관람인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에서 유료 전시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가격은 20 파운드(약 3만 원)라서 결코 저렴한 편이 아니다. 

  

기획전의 첫 번째 섹션인 ‘잔해에서 스마트폰까지(From Rubble to Smartphones)’는 식민지 시절과 전쟁을 겪어 아무것도 없었던 한국이 어떤 산업을 발전시켜 경제적으로 일어서고 나아가 문화강국으로 거듭나는지 보여준다. 비록 간략한 전시로 끝나긴 하지만 아마 이 부분을 가장 강조해서 설명하고 싶었던 부분이 아닐까 한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꽃 피운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전개는 모든 관람객이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최근 애플TV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파친코(Pachinko)’ 속 선자(윤여정 분)의 대사가 생각났다. "잘 사는 것보다우떻게 잘 살게 됐는가 그게 더 중한 기라."  


상설전시 '한국관(Korean Gallery)'(왼쪽)과 '한류' 기획전의 일부(오른쪽)


이 부분은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상설전시를 먼저 관람한 한국인에게는 조금 더 울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상설전시의 ‘한국관(Korean Gallery)’과 극명한 콘트라스트가 되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은 한국의 고미술과 공예품을 약 1,300점 정도 소장하고 있지만 전시공간의 크기와 내용은 기대 이하일 수밖에 없다. 연대별로 풀어낸 ‘일본관(Japan Gallery)’의 관람을 마치고 복도로 나오면 아직 가져가지 않은 택배상자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한류’ 기획전은 상설전시에서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인상이다.     


그다음 섹션부터는 본격적으로 우리가 알 만한 유명한 한류 콘텐츠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각 콘텐츠마다 조선시대의 유물과 나란히 전시하여 한국의 찬란한 문화가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몇 가지는 설득력이 있어도, 일부는 드라마나 영화가 옛날 조선시대의 유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리둥절해진다. 마치 ‘미싱링크(missing link)’처럼 단절되어 보이는 두 가지 콘텐츠는 관람객의 상상력에 맡기는 듯하다.   


‘한류’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한류’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왜 한국인이 이런 창조성과 문화적 상상력을 가졌는지 설명하기 위해 역사를 되짚는다. 예를 들면, 케이팝과 종묘제례악의 역사적 관련성을 설명하기 위해 어거스트디(AugustD, 방탄소년단의 슈가)의 ‘대취타’를 끌어다 근거로 삼는 식이다. 그래서 그 어딘가 빈약한 설명은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1950년대 김시스터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쩌면 ‘한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너무 먼 과거로 투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한 나라, 한 민족이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쉽게 연결 지어 버리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류’ 기획전은 특별하다.

관람객에게 분명히 특별하고 즐거운 기억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전시실로 입장하면서 으슥한 골목길의 잘 나가는 클럽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커튼 뒤에서는 화려한 원색 조명과 함께 익숙한 EDM이 울려 퍼진다. 바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홀린 듯이 말춤을 추기 시작한다. 전시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심박 수가 올라가며 약간 흥분하고 즐거운 상태가 된다. 


이 전시의 꽃은 단연 케이팝 참여형 전시물이다. 싸이와 방탄소년단 슈가의 ‘댓댓(That that)’의 춤을 따라 해 보는 공간인데, 재미있는 점은 내가 춘 춤이 다른 관람객들이 춘 춤과 함께 디지털 패널에 오래도록 남아 군무를 이룬다는 것이다. 관람객들은 오래도록 그 공간을 떠나지 못했다. ‘한류’ 기획전은 전통이 있고 오래된 박물관을 콘서트장처럼 흥겨운 장소로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한류’ 콘텐츠 자체가 가진 힘이다. 


'한류' 기획전의 꽃은 관람객 참여형의 두 전시였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왼쪽)과 댓댓(오른쪽) 전시실이다.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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