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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로열패밀리가 나의 하루에 미친 영향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1)

유럽은 2011년에 처음 가게 되었으니 벌써 12년 전이다. 

배낭여행 대신 교환학생으로 잠시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수업은 최소한만 수강하고 주말이나 공휴일을 이용해서 여기저기 잘 돌아다녔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대된 나라는 바로 영국이었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었고, 셰익스피어에 아주 푹 빠져있었다.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수업은 모조리 듣고, 시간이 날 땐 도서관에 가서 ‘리처드 3세’와 같은 역사극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영국에서 갈 곳도 대충 정해져 있었다. 런던 글로브 극장도 가고, 스트랫포드어펀에이븐(Stratford-upon-Avon)에선 셰익스피어 생가와 묘지에 가야 했다. 흡사 참배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교환학생을 오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벌어둔 돈은 4개월 만에 거의 바닥을 보였다. 당시 영국여행을 앞두고 썼던 일기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브르노에서 5천 코루나를 인출했으니까 통장에 남은 돈이 얼마 없겠구나. 영국에서 최대한 아끼고, 아끼고, 아껴서 지내면 된다.    


인출한 돈으로는 기숙사비를 내고, 운동화 한 켤레를 샀다고도 함께 적어 놓았다. 그렇게 2011년의 영국여행에서 나는 ‘만원의 행복’처럼 주머니에 만원 정도만 넣고 하루종일 돌아다녔다. 식사나 교통은 어떻게든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었는데,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입장료였다. 그래서 스코틀랜드까지 저가항공을 타고 날아갔지만, 에딘버러 캐슬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캐슬 정문의 매표소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돌아왔던 기억은 당시엔 씁쓸했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딱한 시절이 있었다는 재미있는 추억거리다.

      

에딘버러는 5월 말인데도 쌀쌀했다. 

미처 두꺼운 옷도 준비하지 못해서 덜덜 떨며 로열마일(Royal Miles)을 하염없이 걸어 내려갔다. 주머니 사정이라도 넉넉했더라면 어딘가 카페라도 들어갔을 텐데, 어림없었다. 그럴 때 나에게는 언제나 박물관이 답이 되어 주었다. EU 회원국의 학생증은 유럽국가에 있는 대부분의 박물관에 무료이거나 매우 저렴했다. 영국은 1997년 노동당 정부에 의해 국립박물관 무료 입장이 선언되고, 2001년부터 시행되었다.  게다가 박물관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빨리 나가라고 눈치 주는 사장님도 없다.

      

그렇게 로열마일을 걷고, 또 걷다 보면 그 끝에 한 왕립 미술관에 다다르게 된다. 이 미술관은 홀리루드 궁전(Holyrood Palace)의 일부이기도 했다. 나는 미술관의 소장품은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저 들어가서 얼른 몸을 좀 녹이고 어딘가 앉을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정문에서 제지당한 것은 의외의 전개였다. 안내원은 앞을 막아서며 미술관이 갑자기 문을 닫게 되었고, 며칠간 공작 부부가 궁전에 머무르기 때문이라고도 알려주었다.

     

그때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미술관이 그런 이유로 문을 닫을 수 있구나,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왕족과 나의 삶을 대비해 보기도 했다. 외국에서 온 가난한 학생이 잠시 몸 좀 녹이려고 박물관에 들어가려 했던 게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입장을 거절당하고 나는 다시 에딘버러의 냉랭한 길거리로 나가 하염없이 걸었다.

      

박물관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운영되는 기관은 맞지만, 왕립 박물관의 경우 왕족에게 며칠간 문 닫게 할 ‘특권’이 있다. 

결국 왕실 소유의 진귀한 문화유산을 대중에게 공개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왕립 박물관은 그 설립 취지부터 사실 일반적인 박물관과 다를 수 있다. 그때부터 나는 영국왕실과 관련된 뉴스가 나올 때마다 에딘버러의 한 미술관을 떠올리게 되었다.

      



12년이 지난 지금, 나는 오랜만에 다시 영국을 찾았다. 

빠듯한 일정에서 사우스 켄싱턴에 있는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 Albert Museum)을 가장 먼저 방문했다. 학생 시절에는 잘 몰라 미처 방문하지 못한 터였다. 박물관 공부를 시작하면서 꼭 가보고 싶은 박물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여전히 무료라서 감사한 것은 덤이었다.


라파엘로의 방 전시실 공간(왼쪽)과 '기적의 물고기잡이' 태피스트리(오른쪽)

     

그리고 마치 고딕성당의 내부처럼 긴 네이브 끝에 반원 모양의 애프스가 있는 라파엘로의 방(Raphael’s Court)에서 거대한 태피스트리 ‘기적의 물고기잡이(The Miraculous Draught of Fishes)’를 보고 감탄하다가 어떻게 이런 걸작이 이 박물관에 걸려있는지 그 여정을 알게 되었다. 


영국의 왕 찰스 1세는 1623년 이탈리아 제노아에서 라파엘로의 카툰(cartoon)을 구입해 태피스트리를 제작했다. 이후 작품들은 왕실에 계속 전해지다가 빅토리아 여왕이 1851년 사우스켄싱턴 만국박람회 때 카툰을 지금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 기탁했다. 그렇게 지금 라파엘로의 방에는 일곱 점의 카툰과 한 점의 태피스트리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비록 찰스 1세는 의회파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유산이 ‘로열 콜렉션’으로서 왕실에 대대로 전해내려와 아주 양호한 상태로 보존처리되어 전 세계의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의 왕족과 귀족 등 엘리트 계급의 수집가들은 자신의 소장품을 기꺼이 박물관에 대여하여 공공의 재산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유재산의 원칙도 지켜낸다. 이것이 영국의 왕실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강력한 문화적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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