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
미국에서 거의 50년을 전원 주택이라는 곳에서 땅만 밟고 살았던 우리 집 양반은 아파트에서 사는 것을 질색을 한다. 너무 무섭고 답답해서 못 살 것 같단다.
그 옛날 한국에서 살 때에도 우리 집 양반은 땅만 밟고 살았다. 1968년에 한국을 떠났으니까 그때까지의 한국은 정말 지지리도 못 사는 나라였다보니 고층 아파트라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떠났던 것이다.
우리 집 양반이 한국을 떠날 때까지 살던 곳이 동대문 바로 밖이었단다. 어릴 때는 효자동 근처 못사는 동네에서 살다가 그나마도 더 못 살게 돼서 동대문 밖으로 밀려났단다. 그리고는 1968년 한국을 떠날 때까지 동대문 밖을 벗어난 적이 없단다.
그래서 우리 집 양반은 1968년에 한국을 떠나 거의 50년이라는 세월을 외국에서 살다보니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던 한국은 그 당시의 못 살던 동대문 근처 기억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한국을 떠난지 20년만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이민자들한테는 꿈도 못꾸던 때였다.
꿈에 부풀어 방문했던 대한민국은 변해도 너무 변해있었단다. 너무도 변한 한국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내 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됐구나라는 감동이 밀려왔단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는 그 오랜 세월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젊었을 적의 기억을 하나도 떠올릴 수 없는 것에 또다른 쓸쓸함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단다.
이제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도 고층 아파트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오죽하면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 우리 큰 딸이 한국에 오면 늘 하는 소리가 있다. 아파트촌이 있는 곳을 지나가다보면 무슨 SF영화를 보는 것 같단다. 이제는 이곳 제주도도 시내에는 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서있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아직도 살기에는 조금 불편한 점이 많다는 생각에 전원주택보다는 아파트가 대세라는 소리를 듣고 한국에 나올 때 나는 수도권 근처의 작은 아파트를 하나 사자고 했는데 우리 집 양반이 자기는 죽어도 아파트에서는 못 산다고 해서 포기를 했었다.
마누라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데 우리 집 양반은 정말이지 죽어라고 내 말을 안 듣는다. 그러다가 크게 손해본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고래 심줄도 그런 고래 심줄은 없을 것이다.
할수없이 전원주택을 알아보기 시작하다가 너무도 비싼 한국의 집 가격에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다. 한국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싼 미국의 집을 팔고 오니까 여기서는 수도권은 커녕 수도권 가까운 곳에도 우리 맘에 드는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수도권에서는 전세조차도 못 간다는 사실에 갑자기 너무 초라하고 슬퍼지기까지 했다. 미국에서는 나름 성공했다고 자부하면서 살다가 돌아왔는데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돈의 가치가 너무도 떨어져서 초라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결국에는 수도권도 아닌 좀 멀리 떨어진 시골이나 가야 그나마 우리가 원하는 집을 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100% 만족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아직은 누구나 열심히만 일하면 그럭저럭 잘 살 수 있는 나라이다. 아주 부자를 제외하고는 일반 서민들이 사는 삶은 크게 치이가 없다. 빈부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를 못했다. 돈이 그다지 많지 않아도 사는 모습들은 다 거기서 거기였던 것이다.
누구라도 열심히 일만하면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좋은 집에서 풍족하게 살 수있는 그런 나라에서 오래 살다보니 막상 가진 것은 없어도 눈만 한없이 높아진 상태에서 돌아온 것이다.
이 높아진 상태를 유지하면서 한국에서 살려니까 그야말로 중상위권에는 들어야 하는데 가진 것은 중상위는 커녕 하위를 간신히 벗어나는 것 같다. 같은 돈이라도 미국에서의 돈 가치가 엄청 크다는 현실에 마주친 것이다. 미국에서는 100불이라는 돈 자체도 어마어마하다. 우리 돈으로 치면 대충 10만원이 조금 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10만원은 그야말로 학생들 용돈 정도인 것 같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내 말 듣고 아파트를 샀더라면 돈을 벌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전원 주택은 크게 투자 가치는 없는 것 같다. 그냥 살다가 밑지지만 않으면 된다고 한다.
미국에서 떠날 때 팔고 온 집은 갑자기 미국의 부동산이 오르는 바람에 거의 3배가 올랐단다. 이런 이야기는 안 전해줘도 되는데 친절하게 꼭 전해주는 사람이 있다. 그 반면에 한국에서는 전원주택을 고집하다보니 그냥 제자리이다.
그래도 미련은 안가지려고 한다. 돈이라는 것이 크게 벌 일이 생기면 또 반드시 다른 곳으로 새게 되는 일이 항상 생긴다는 것을 오래 살다보니 알게되더라. 그대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온 덕분에 돈 보다도 더 소중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재테크에 재주가 없다고 한탄하지 말자. 누구나 다 한가지씩은 갖고 있는 재주는 따로 있는 것 같다. 나의 재주는 오늘도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 공기좋은 곳에서 좋은 경치 구경하면서 마음편히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무조건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다.
그런데 정말로 행복하다.
요즘 들어서 우리 집 양반이 가끔 한 마디 한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냐고…
평생 지문이 닳도록 일만 하고 살다가 이제서야 간신히 마음의 평화를 찾았나보다.
괜히 죄없는 신랑한테 대뜸 용감하게 큰 소리 쳐본다.
“당근이지!”
너무도 평온하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