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업글할매 Feb 09. 2024

제주도 하늬바람을 아시나요?

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

오랜만에 곽지 해수욕장을 찾았다. 그동안 손님 치르랴, 책 리뷰하랴, 너무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정작 중요한 운동이라는 것을 거의 안 하고 있었다.


어제부터 몸이 살살 신호를 보내왔다. 나 운동이 필요하다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싱하는 사람들로 무척이나 붐비던 곳이

언제 그랬나는 듯이 모처럼 한산한 분위기이다.


큰 맘먹고 운동하러 나왔더니 어느새 겨울을 보내려고 하고 있다.


매년 11월 말쯤, 겨울을 알리는 계절이 오면 이렇게 해수욕장의 모래사장들은 거의가 모래가 날아가지 않도록 비닐 천을 덮는다.


바람에 모래가 쓸려가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 모래 위에 미리 비닐을 덮고 그 위에다가 모래주머니들을 올려놓는 것이다. 이 모래주머니를 시작으로 바로 제주도의 그 매서운 하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는 신호란다. 매년 11월 말쯤 시작해서 그다음 해 3월까지 정신없이 불어대는 것이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세차면 이렇게 입구란 입구는 전부 다 모래주머니로 완전 무장을 하고 있다.


곽지 해수욕장에 있는 종합 상황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 많은 인파로 붐비던 해수욕장이 어쩜 이리도 한산한 모습으로 남아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 매서운 바람이 끝나는 3월 말쯤 되면 아마도 새로운 관광객들로 다시 붐비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까지 이 모래주머니들을 유지하지 않을까 싶다. 벌써 3개월이 다 돼 가는데도 아직까지도 모래주머니들이 제자리에 얌전히 누워있는 것을 보니까 단단히도 준비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늘 우리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모래를 지키기 위해서 고생했을까라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제주도는 돌, 바람, 여자가 많아서 삼다도라고 불리는데, 이때의 바람이 바로 하늬바람이라고 한다. 주로 북서풍을 의미한다. 이 유명한 하늬바람은, 제주도에 살면서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온전히 이해를 못 할 것 같다.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제주도에 처음 정착을 한 것이 바로 이 하늬바람이 가장 세차게 분다는 2월 초였다. 그저 제주도라는 곳이 마냥 좋기만 한 줄 알고 아무런 사전 지식 하나 없이, 참으로 용감하게 제주도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때부터 불어대던 바람이 우리 기억에는 거의 4월 초까지 불었던 것 같다.


얼마나 매섭던지 ~~

살다 살다 이런 매서운 바람은 처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탤런트 이하늬는 착하고 예쁜 데다가 애교까지 많은데, 같은 이름의 이 하늬바람은 어찌 그토록 매섭고 고약했을까.


도저히 눈을 뜰 수고 없고서 있기만 하는 데도 도저히 몸을 가눌 수조차 없었다.


갑자기 바뀐 새로운 환경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바람부터 맞은 것이다. 도저히 정이 붙을 것 같지를 않다면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자고 우리 집 양반은 난리도 아니었다.


좋아질 거라고  간신히 달래가면서 어느 정도 지나다 보니, 어느새 꽃 피고 새가 운다는 봄이 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모질게 불어대던 바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제주도의 황홀한 모습으로 다시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에메랄드빛을 자랑하는 바다가 푸르른 하늘아래 펼쳐져 있고,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며 그야말로 어디를 가나 지상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제주도의 바람과 하나가 되었다.


이제는 그냥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의 하나이다.



벌써 바람에 실려온 모래가 계단을 완전히 덮었다. 굉장히 미끄러울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여름에 반짝반짝 빛을 발하던 모래를 밟고 우습게 넘어져서 크게 다친 적이 있다. 그저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다니시라고 당부하고 싶다.


아무리 모래가 날아가지 않도록 천을 잘 씌우고 철저히 대비를 해도, 워낙 센 바람에 결국은 도로 위에까지 날아가서 도로가 온통 모래로 뒤덮일 때가 많다.


이제 곧 겨울도 끝이 나고 봄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무사하게 이 모래들을 무사히 잘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흔히들 여름의 바다를 많이들 좋아하지만, 난 이렇게 약간 쌀쌀한 듯한 제주도의 하늬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의 바다도 참 좋은 것 같다.


우선 뙤약볕이 없어서 좋고, 사람들로 북적거리 지를 않아서 참 좋다.


볼을 에이는 듯한 찬 바람을 맞고 있으면 오히려 정신이 바짝 나는 것 같은, 그런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서 더 좋은 것 같다.


이래저래 제주도는 걷기에 최적의 장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렇게 매서운 하늬바람이 불어대는 날에도 걷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