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
트로트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우리 집 양반이 그 중에서도 특히 애착을 갖고 듣는 노래가 “단장의 미아리 고개” 이다.
우리 집 양반이 기억하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이러하다. 그 옛날 전쟁통에 몸이 불편한채로 인민군한테 끌려가는 남편을, 미아리 고개에서 창자가 찢어지는 듯한 마음으로 보내놓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한 많은 미아리 고개를 바라보며 언제나 돌아오려나하면서, 애끓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그야말로 한 많은 미아리 고개였던 것이다.
그런 미아리 고개가 한국에 돌아오니 “신사랑 고개”라는 아주 엉뚱한 노래로 바뀐 것을 듣고는 만감이 교차하는 가보다.
1941년생인 우리 집 양반은 , 어릴 적에 해방을 맞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온 가족이 남한으로 피난을 왔단다. 그리고 또 얼마지나지 않아 6.25전쟁이 터지면서 또 대전까지 피난길에 올랐던 사람이다.
그야말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던 전쟁을 어릴 때부터 몸으로 겪은 사람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이런 전쟁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피난길에 고생했던 사연들에 더 더욱 관심이 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 양반은 조정래 작가님의 책을 가장 아끼고 사랑한다. 우리가 미국에서 살 때는 한국 책을 구한다는 것이 무쳑 어려웠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던 시절이 아니어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한테 돈을 보내서 책을 구해달라고 했었다.
조정래 작가님의 책은 대부분이 전집으로 되어있어서 무겁다보니 비용 또한 만만치가 않았지만 고단한 이민 생활을 달래주는 처방약이라고 생각하니까 얼마든지 책에 투자를 하게 되더라.
이렇게해서 구해진 책이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정글만리” 등 엄청나다. 너무도 소중해서 미국에서 이사를 다닐 때는 꼭 챙기고 다녔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떠나올 때도 이 책들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곁에 두고 있다.
조정래 작가님에 대한 사랑이 유별난 우리 집 양반한테 언제 작가님의 친필 사인이라도 받아다주고 싶다. 언제 제주도에서도 북토크 일정이 잡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이렇듯이 6.25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평생을 가도 안 잊혀지는 사람한테 뜬금없는 “신사랑 미아리 고개”라는 것이 참으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나보다.
그냥 트로트라고만 생각하고 들을 때는 재미있다가도 “그 고개가 어떤 고개였는데…” 라면서 듣다보면 조금 속상한가보다.
우리 남편한테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더 가슴에 와닿는 것은, 피난중에 직접 그 미아리 고개를 넘었던 기억이 남아서 이다.
아버지는 이불보따리랑 냄비같은 살림살이를 실은 리어카를 끄시고 , 어머니는 뒤에서 밀으셨단다. 그 당시 열 살 밖에 안됐던 우리 남편은 자기보다 어린 남동생을 하나는 등에다 업고, 다른 여동생은 행여 잃어버릴까봐 고사리같은 손을 꼭 잡고서는 한많은 미아리 고개를 넘었단다.
그렇게 미아리 고개를 넘어왔는데, 등에 업혔던 남동생은 그 뙤약볕에 업혀다니다가 결국은 더위먹어서 죽었단다.
우리 집 양반한테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바로 이런 곳이었다.
팔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 때의 한 맺힌 시간들을 잊지 못하고 사는 사람한테 과연 어떤 말이 진정한 위로를 줄 수 있겠는가.
그저 묵묵히 같이 아파하는 수밖에.
두 종류의 미아리 고개라는 가사를 찾아보았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넘던 이별고개
화약연기 앞을가려 눈못뜨고 헤메일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손꽁꽁 묶인채로
뒤돌아보고 또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이고개여 한많은 미아리고개
“신사랑고개”
아주 오래전에 미아리고개
울며불며 매달리던 눈물고개
오늘날에 현재 미아리고개
갈테면 가라지 냅두는 고개
내가 뭐 잡을 줄 아니
물론 세상은 변했다. 그 옛날의 한 많은 미아리 고개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는 얼마되지도 않을 것이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도 즐겁게 부르고, “신사랑 고개”또한 신나게 부르자.
하지만 가끔 한 번 씩은 그때의 아픔과 희생들을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 까 생각해본다. 평생 가슴 아픈 사연을 깊숙히 간직하고 살아온 그런 분들하고 잠시라도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역사의 산증인으로 살아오신 그 시대의 어르신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