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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Jul 12. 2024

허송세월 (김훈 )

업글할매의 책방 이야기

《 허송세월 》의 저자이신 김훈 작가님은 한국 문단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로 평가를 받으시는, 존경받는 작가님이시다.


김훈 작가님의 글은, 마치 시처럼 아름다워서,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마법의 힘을 갖고 계신다.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무게감과 아름다움이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이번 신간인 《 허송세월 》은 제목에서부터 큰 울림을 준다. “허송세월”이라는 단어 자체는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지만, 김훈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허송세월”이라는 것은 결코 무의미하지가 않다는 것을 이 책에서 보여주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놓치기 쉬운 것들, 무심코 지나치는 시간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 허송세월 》, 이 책에 담아놓으셨다.


 《 허송세월 》, 이 책의 표지 또한 책을 손에 쥐는 순간부터 남다른 감동이 밀려온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떠올리게 한다. 표지 속에 담긴 지극히 절제된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로운 구도는 마치 한지에 먹을 녹여 그린 수묵화처럼, 차분하면서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깊은 감동을 안겨다 준다.


책 표지만 바라보고 있어도, 마치 산속의 고요한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김훈 작가님의 글이 그러하듯이, 표지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김훈 작가님은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서, 기자로 오랜 기간 일하시다가 소설가로 데뷔하셨다.


대표작으로는 “칼의 노래, 남한산성“같은 대작이 있다.


2007년도에 출간된 남한산성을 너무나도 감동스럽게 읽었던 기억은 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 내용이 자세히 생각이 안 난다.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화제를 모으면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었다.


그때부터 김훈 작가님의 열렬한 팬이 됐었던 것 같다.


《 허송세월 》, 이번 신간을 계기로 작가님의 책들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목차
앞에 : 늙기의 즐거움
1부 : 새를 기다리며
2부 : 글과 밥
3부 : 푸르른 날들


DALLE-E에서 만든 이미지

김훈 작가님이 말씀하시기를, 대체로 동양 산수화 속의 사람은 세상을 향해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논두렁길, 밭두렁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 너머로 넓은 강산이 펼쳐져 있단다.


이 말이 주는 무게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작가님은 서울 도심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인왕산, 북한산, 북악산, 도봉산, 관악산, 낙산에서 놀았다고 하신다.


조선 후기 화가인 정선의 그 유명한 “인왕제색도”에 나온 그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중학교 3학년 때, 암벽등반의 기초를 배운 진정한 산악인이었다.


젊었을 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볼 때는 작가님은 세상 속으로 내려가고 싶었고, 산 밑에서 산봉우리를 올려다볼 때는 다시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으셨단다.


지금은 이쪽저쪽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둘레길만 조금 걷다가 그냥 마을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오신다는 말씀이 왜 이리도 가슴이 먹먹해지는지 모르겠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라산을 지척에 두고도, 무릎이 탈이 나서 가까운 둘레길만 찾아다니는 내 모습이 떠올려져서일까, 작가님의 쓸쓸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다.


DALLE-E에서 만든 이미지

50년 넘게 술을 마셔오신 김훈 작가님께서 술에 대한 일장 연설을 하시는데, 난 이상하게도 이 부분에 너무도 마음이 끌렸다.


아마도 술과 함께 해온 그 오랜 세월 동안,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허름한 식당에서 저녁에 한잔하는 사내들의 술맛을 작가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와인은 별로 안 좋아하신다는 작가님 말씀에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왔던 김훈 작가님하고 너무도 딱 들어맞아서 기분이 좋았다.


와인에는 현실과 부딪히는 술맛의 저항감이 없다는 기가 막힌 표현을 해 주신다. 와인은 현실을 서서히 지우면서 다가오는 것이란다.


그래서 와인의 맛은 로맨틱하고, 그 취기의 목적은 목가적이라고 설명을 하시면서, 연애하는 젊은이들이 주로 와인을 마시는데, 와인에 취하면 첫사랑을 고백하게 되기가 십상이라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쩜 이리도 말씀을 재미있게 하시는지, 작가님의 근엄한 모습이 떠올려지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따뜻한 감정이 함께 한다.


막걸리는 생활의 술이라고 설명을 하신다. 막걸리는 술과 밥의 중간쯤 되는 자리란다. 막걸리는 밥을 술처럼 먹게 하고 술을 밥처럼 먹게 한단다.


소주에 대해서 설명을 하실 때는 완전히 다른 맥락이 된다.

“소주!, 아아! 소주.”로 시작하신다.


이 한 마디로 작가님의 소주에 대한 생각을 한눈에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근대사에서 소주가 정신의 역사와 대중 정서에 미친 영향을 사회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신다.


소주는 대중의 술이며 현실의 술로서 한 시대의 정서를 감당해 온 것이다. 소주는 아귀다툼하고 희로애락하고 생로병사 하는 아수라의 술이라는 말씀이 너무도 멋있다.


회사 동료들과 다투고 나서 화해하자고 마시는 술은 대개가 소주였는데, 화해의 술자리에서 또 싸웠고, 헤어져서 각자 마셨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갑자기 그 옛날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는 아마도 지금까지도 이어져오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화해하기에 가장 좋은 것도 술 한잔 함께 하는 것이고, 또 기껏 풀어놓은 실타래를 엉망으로 만드는 것도 그 한 잔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꼬이고 꼬이더라도, 이렇게 술 한잔하자고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는 것이 조금은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사케는 겨울의 술이고 나이 든 사람의 술이라고 하신다.


이 짧은 설명에 사케의 진정한 맛이 다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김훈 작가님이 즐겨 마시는 술은 위스키란다. 위스키의 취기는 논리적이고 명석하다고 설명하신다.


위스키를 넘기면, 호수에 돌을 던지듯이 그 전류의 잔잔한 여파들이 몸속으로 퍼져든단다. 위스키는 공동체의 술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술에 가깝다 보니, 그래서 위스키를 좋아하면 혼술을 하게 되는 것이란다.


어쩜 이리도 술 한 잔을 마셔도 철학적으로 마실 수가 있는지, 생각이 짧은 나는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이제는 술을 못 마신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너무도 쓸쓸하게 들린다.


술은 한 방울도가 아니라, 반 방울도 안된다고 겁을 주는 의사한테, 내가 치료를 받는 목적은 술을 마실 수 있는 정상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작가님의 심정이 그대로 이해가 된다.


가끔씩 술 마시던 날들의 어수선한 열정과 들뜸이 그립다고 하신다.

아마도 많이 쓸쓸하실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쾌차하셔서 작가님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DALLE-E에서 만든 이미지

요즈음 김훈 작가님께서는 오후가 되면 두어 시간쯤 햇볕을 쪼이면서 늘그막의 세월을 보내고 계신단다.


지나간 시간의 햇볕은 돌이킬 수 없고, 내일의 햇볕은 당길 수 없으니, 지금의 햇볕을 쪼일 수밖에 없는데, 햇볕에는 지나감도 없고, 다가옴도 없어서 햇볕은 늘 지금 작가님이 계시는 그 자리에 찾아온단다.


나이가 드실수록 더 시인에 가까워지시는 것 같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작가님의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지금의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고 하시는데, 결코 허송세월이 아닌 것이다.


나는 늘 뼈 빠지게 일했다는 표현을 자주 달고 살았다. 하지만 김훈 작가님께서는 “혀가 빠지게 일했다"라고 하신다.


나는 그동안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뼈 빠지게 몸이 고되고 힘들 정도로 일을 했었다. 혀가 빠지게 일했다는 작가님의 말씀은, 단순히 몸이 힘든 것을 넘어서서, 정신적으로도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는지를 알게 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혀가 빠지도록 일하시면서, 얼마나 지치고 힘드셨을까, 새삼스럽게 작가님의 노고가 그려진다.


DALLE-E에서 만든 이미지

김훈 작가님은 “대중식사”라는 이 네 글자를 아주 귀하게 여기신단다.


작가님의 소년 시절이었던 1960년대에는 허름한 식당에는, 늘 “대중식사”라는 정겨운 간판이 쓰여있었다고 그때 그 시절을 되돌아보신다.


“대중식사”의 “대중”은 대중가요, 대중목욕탕, 대중교통의 “대중”보다는 더 깊은 울림이 있는데, 밥을 먹는 행위가 그 밖의 온갖 인간 잡사보다도 더 근원적이고 보편적이기 때문이라고 작가님은 설명해 주신다.


그만큼 밥이라는 것은 우리 일상을 논하는 데 있어서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 옛날, 그리운 그 시절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대중목욕탕, 대중문학, 대중가요라는 말은 이제는 거의 사라져 버렸고, 사람을 화물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버스나 지하철에는 아직도 “대중교통”이라는 말이 남아있다는 작가님의 예리한 관찰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진다.


“대중식사“라는 말은 그냥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그냥 밥 먹는 것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김훈 작가님의 글을 읽고 나니, 이 ”대중식사“가 주는 의미가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 것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대중식사“라는 것은, 여럿이서 함께 어울려서 밥을 먹는 따뜻함과, 사람들 사이의 정을 느끼게 한다. 그야말로 정겨운 모습이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곳이다.


함께 모여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 속에서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하는 곳, 바로 이런 곳이 “대중식사”의 맛인 것이다.  


DALLE-E에서 만든 이미지

김훈 작가님 역시, 먹을 것이 없어서 어렵던 시절에는 어머님이 가끔씩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어서 식구들을 먹이셨단다. 반죽을 오래 치대야 맛있다고 하면서, 얼마나 오래 치대셨는지 끓는 물속에 들어간 수제비에는 늘 어머니의 손바닥 굴곡이 남아있었단다.


비가 오거나 춥고 바람 부는 날에는 영락없이 어머니는 수제비를 만드셨는데, 그때를 회상하시는 작가님의 표현이 너무도 아름답다.


음산한 날씨는 가난을 더욱 발가벗기는 것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 쓸쓸한 기운으로부터 식구들을 보호하려고 수제비를 만드신 것 같다고 하신다.


왜 이리 가슴이 시리고,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참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많이들 힘들어하던 그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 지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몰려온다.


우리 집 양반 역시 1941년생이다 보니, 해방을 맞이하고, 전쟁 또한 겪으면서 엄청난 고생을 했던 사람이다. 그때 너무나도 지겹게 먹었던 수제비랑 칼국수, 그리고 꽁보리밥이 싫어서 아직도 이런 종류의 음식들을 멀리한다.


전부 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음식들이지만, 그때 고생했던 남편의 힘든 마음에 어느 정도 공감이라도 하자라는 생각에 이 맛있는 것들을 거의 포기하고 산다.


DALLE-E에서 만든 이미지

강화도에 있는 교동도는 행정구역으로는 강화군에 속하지만, 국토가 분단되기 이전에는 이곳에 살던 교동도 사람들은 주로 황해도에 있는 연백 지방을 드나들면서 교역도 하고 노동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교동도의 현실을 전쟁과 분단이라는 슬픈 역사가 크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전쟁통에 많은 피난민들이 황해도 연백 지방에서 이곳 교동도로 내려온 것이다. 모든 피난민들의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하나로 되도록이면 내가 살던 고향과 가까운 곳에 정착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초기에 시장을 일군 1세대들이 바로 연백 사람들이었고, 결국 돌아가지 못한 그분들의 후손들이 가게를 이어가고 있단다.


김훈 작가님은 “대룡 시장”에 오실 때마다 전쟁의 폐허에서 삶의 터전을 상설한 사람들이, 낯선 땅에서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을 건설해 내는 생명력을 느끼신다고 한다.


실향민들의 생활력 강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대룡시장 상인들은 제비를 특별히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장 입구 네거리에는 제비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조형물로 만들어서 세워 놓았단다.


시장의 담벽에도 제비가 그려져있는 벽화가 있고, “제비카페, 제비국밥, 교동제비집”처럼 제비를 내세운 가게들이 많단다.


대룡시장을 일구어낸 피난민 1세대들은, 멀리서 찾아오는 제비들에게 실향민의 향수를 달래면서, 그렇게 제비를 반갑게 맞이하고 잘 대접한 것이다.


우리 집 양반 역시 함경북도 함흥이 고향이다. 실향민의 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어쩌다 한 번씩 이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만사 제쳐놓고 티브이 앞으로 향한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광경에 늘 마음이 아프다.


통일은 언제나 되려나~~

우리 살아생전에 우리 남편, 고향 땅 한 번 밟아볼 수 있으려나~~




김훈 작가님의 글은 늘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신다.

그만큼 감동 또한 크게 다가온다.


이번 기회에 김훈 작가님의 신간인 “허송세월”을 꼭 읽어보시기를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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