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책방 이야기
2024년 12월 10일 자정에, 우리의 한강 작가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소설가 ‘엘렌 맛손’이 노벨문학상 시상 연설을 맡았다.
한강 작가의 글은 두 가지 색이 만난다는 말로, 연설이 시작됐다.
바로 흰색과 붉은 색인데, 흰색은 한강 작가의 수많은 작품중에서 ‘눈’이라는 형태로 등장을 하며, 화자와 세상사이에서 보호막이 되어준단다.
하지만 흰색은 슬픔과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붉은 색은 생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보통 피나 칼의 배인 상처를 뜻하기도 한다.
한강 작가의 문체는 매혹적일만큼 부드러운 한편, 평온할 수 없는 잔혹함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엘렌 맛손 작가님은 설명하신다.
학살로 인한 시체에서 피가 진해지면서 호소하는 것이다.
글이 답할 수도 또는 무시할 수도 없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죽은자, 납치된 자, 사라진 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햐 하는가,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가 ~~
흰색과 붉은 색은 역사적 경험을 상징하고, 한강 작가는 소설을 통해 이 경험 안으로 들어간다고, 엘렌 맛손 작가님은그동안 우리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부분까지도 정확히 끄집어 내신다.
이런 것이 진정한 문학의 힘인 것 같다.
엘렌 맛손 작가님의 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눈‘은, 산자와 죽은 자, 그리고 아직 어느 쪽에 속하는지 결정하지 못한 채 그 사이를 떠도는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눈보라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서 화자는, 기억에 조각을 맞추면서, 시간의 층을 거슬러 올라가고, 죽은 자의 그림자와 교류하며, 죽은 자가 말하는 사실을 추적한다.
아무리 견딜 수 없을지라도, 진실과 사실의 추구는 중요하다.
기억이 절묘하게 환기되는 한 장면에서, 친구는 선반에서 신문 조각을 꺼내, 역사의 마지막 조각을 맞춘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진 병원 침대에 갇혀 있지만…
꿈은 현실로, 과거는 현재로 이어진다.
경계를 허무는 이러한 전화는, 한강 작가의 글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고, 양방향을 향해 있는 감각을 동원해, 신호를 수집하고 해석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목격한 것에 의해 무너지는데, 결국 그 대가는 마음의 평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힘을 내서 계속 전진한다.
망각은 결코 목표가 될 수 없다.
‘누가 나를 죽였을까?’라고 살해당한 소년의 영혼이 묻는다. 그리고 이 순간, 생전에 소년을 정의했던 얼굴이 소멸되며 사라진다.
생존가가 묻는 질문은 따로 있다.
‘나에게 고통만 준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문으로 인해 피 흘리는 대상으로 전락한 몸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육체가 포기해도 영혼은 계속 말을 한다.
영혼이 지쳐도 육체는 계속 걷는다.
내면 깊은 곳에는, 완고한 저항, 말보다 강한 고요한 주장, 기억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목표는 망각이 아니고, 망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강 작가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상처를 입고, 연약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나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만큼의 힘을 내, 한 걸음 더 나아가거나, 다른 질문을 하거나, 다른 자료를 요청하거나, 다른 생존자를 인터뷰한다.
빛이 희미해지면서, 벽에는 죽은 자의 그림자가 계속 어른거린다,
지나가거나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웨덴 한림원을 대표해서 한강 작가님의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고 연설을 마치면서, 이제 앞으로 나오시면, 스웨덴 국왕께서 증서를 수여하겠다는 안내 말씀 또한 함께 했다.
스웨덴 국왕으로 부터 증서를 수여받고 있는 한강 작가님의 웃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고된 여정을 보내오셨는지, 엘렌 맛손 작가님의 한강 작가님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 연설을 통해서, 더 절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수여식이 끝나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마음 속으로 얼마나 우셨을 까를 생각하니, 괜스레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무나 받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나랑 생각이 다르다고, 나랑 사상이 다르다고 함부로 말 할 수 있는 자리는 결코 아닌 것이다.
이 방송을 보는 내내, 얼마나 가슴이 벅차고 경건해 지는지, 나또한 놀라울 따름이었다.
솔직히 칠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노벨상 시상식이라는 것을 생방송으로 보는 것 또한 처음이다.
주로 신문이나 뉴스에서 올해의 노벨상은 어느 나라의 누가 받았다는 것 정도만, 그저 스쳐지나가는 상식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크게 관심 갖지를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것이다.
한강 작가님만의 개인적인 영광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영광인 것이다.
나 역시 한강 작가님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은 사람중의 하나이다.
미국에 살고 있을 때, ‘채식주의자’가 한국인 최초로 ‘멘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너무 벅차서, 어렵게 책을 구해서 읽고는, 나랑 우리 집 양반 둘이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던 기억이 난다.
우리 세대한테는 공감하기 어려운 많은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강 작가님의 책을 가까이 할 기회가 없어서 거의 잊고 지내다가, 드디어 2024년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노벨문학상’이라는 엄청난 소식을 접한 것이다.
비록 이해하기 힘들고, 나하고는 맞지 않는 책인 것 같아도, 무조건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에, 그 구하기 어려운 시기에 무려 10권이나 주문을 했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이 두 책은 그야말로 숨을 죽이고 정신없이 읽었다.
그 작품 세계로 나도 모르게 깊이 빨려들어가는, 그런 신비한 경험도 했다.
아마도 “5.18”이나 “4.3” 사건에 대해서 이미 어느정도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소설의 배경이 더욱 이해가 되고,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느정도 인지할 수가 있었던 덕분이 아닐까 싶다.
‘책리뷰’를 즐겨하고 있는 나이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으신 한강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서는 감히 리뷰를 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혼자서 조용히 마음속으로 간직만 했다.
그러다가 오늘, 엘렌 맛손 작가님의 설명을 통해서 이제서야 제대로 이 두 작품에 대해 온전히 이해를 할 수가 있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한 해설에, 왜 한강 작가님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이 되셨는지, 그 이유를 어럼풋이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한테는 이 두 작품외의 다른 소설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집 양반 역시, 과거와 현재를 수없이 넘나드는 전개에, 이해를 못하겠다고 읽다가 중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읽어야만 하는 것이다.
읽을 시간이 없거나, 힘들면, 책장에 꽂아놓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노벨문학상’
그것도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문학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다.
2024년 12월 10일을 기해, 한국 문학의 역사가 새롭게 쓰였다.
드디어 대한민국이 해냈고, 이제서야 한국 문학이 세계로 부터 정식으로 인정을 받는 날이 온 것이다.
서로 다른 의견이라고 비난의 글들을 써대는 모습을, 더 이상 가슴이 아파서 볼 수가 없다.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감정이, 그리고 우리의 언어가 세계를 울린 것이다.
이제는 그냥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면 되는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작은 독서모임에서, 한강 작가님의 수상작을 함께 읽고 나누는 열풍이 불어대기 시작했다.
전혀 책을 읽지 않았던 사람들도, 기꺼이 서점에 가서 활짝 웃으면서 책 한 권을 집어들게 만드는 그런 기적또한 일어난 것이다.
서점이 붐비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책을 읽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는, 그런 희망찬 대한민국의 미래를,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이 안겨다 주신 것이다.
아마도 수상의 여운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높아졌고, 그로인해 수많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이 되어, 또 다시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으로 인해 더 더욱 힘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아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이제는 더 이상 슬퍼하지도 않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한강 작가님의 인생에는, 그저 활짝 핀 꽃처럼, 화사하고 아름다운 일들로먼 가득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참으로 오랜 세월, 너무도 애쓰셨다.
이젠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웃으면서 작품 세계를 이어가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