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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6하원칙! 이런 노인은 되지 말자!

업글할매의 행복한 노후

by 업글할매


꼰대의 6하원칙

Who: 내가 누군지 알아
What: 뭘 안다고
Where: 어딜 감히
When: 왕년에
How: 어떻게
Why: 내가 그걸 왜

(노인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살다 살다 이제는 “꼰대의 6하원칙”이라는 기상 천외 한 말까지 들어본다.


지금 칠십 대인 난, 이상하리만치 이 ‘꼰대’라는 말을 싫어한다.


오죽하면 ‘버킷 리스트 1번’으로 ‘꼰대가 되지 말자!’를 정해 놓았을까!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권위를 가지려고 한다. 하지만 그 권위가 강요로 이어진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꼰대’라는 낙인이 찍히고 만다.


나이가 들수록, 노인이 되어갈수록, 나는 이런 노인이 되고 싶지 않다.


‘꼰대’도 그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렇다면 ‘꼰대 노인’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늘 고심하고 있던 차에, “꼰대의 6하원칙”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발견한 것이다.


“노인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에 이 근사한 “꼰대의 6하원칙”이라는 글이 실려있다.


미리캔버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육하원칙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로 시작을 하는데, 꼰대들의 서열에서만큼은 이야기가 조금 다른 것 같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꼰대의 시작은, 뭐니 뭐니 해도 “내가 누군지 알아~, Who”인 것이다.


왜들 그렇게 “내가 누군지 알아~”를 부르짖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정작 자신이 누구인 줄 모르는 치매환자로 오해를 받아서 병원으로 실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면 좋겠다.


“내가 누군지 알아~”는 꼰대 세계의 제왕이다.


이 말이 등장하는 순간,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듣는 사람은 숨을 죽이면서 긴장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은 속으로 ‘아…또 시작됐다’라면서 한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보통 육하원칙은 대화를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쓰이는 것이 보통인데, 꼰대들의 6하원칙은 다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논리적인 대화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위계질서인 것이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큰 소리를 치면서, 무조건 기선을 제압하려는 찌질한 발상이다.


그러면서 또 한다는 말이, “내가 이 업계에서 몇 년을 일했는지 니까짓것들이 알아~”라면서 상대방에게 통하지도 않는 무조건적인 존중을 요구한다.


그러고는 정말 치사하게도 ”내가 누구랑 친한지 알아~“라고 있지도 않은 인맥을 들춰댄다.


시대가 바뀌어도 한참을 바뀌었는데, 아직도 이런 발상이 나온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하지만 정작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묻는 사람들은, 본인도 자기 자신을 잘 모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진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웃어넘기자!

가뜩이나 피곤한 세상, 일일이 상대하다가는 내가 너무 힘들다.


이런 노인은 되지 말자!


미리캔버스

”니가 뭘 안다고 까불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이런 말을 들으면, 일단 속이 뒤집힌다. 그리고 그다음엔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도대체 저 사람은 얼마나 많이 알아서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가 있는지, 너무도 궁금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어째서 저 벼는 점점 더 하늘을 향해 뻗치는 것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


원래 빈 깡통이 요란한 법이다.


“니가 뭘 안다고~~”


이 말이 지니고 있는 것은 단순한 무시가 아니다.


내가 너보다는 조금 더 알고 있다는 지식의 우위를 이용한 권력 행사인 것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인, ‘갑질’이 여기에도 있다.


이른바 ‘지식 갑질’이 여기에 숨어있는 것이다.


이런 꼰대를 만나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아예 대화할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이야기해봤자 논쟁거리만 만들고, 결국에는 싸움으로 치닫을 것이 뻔하다.


꼰대들은 신기하게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한다.


괜히 감정 소모하지 말고, 그냥 피하는 게 답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정말 이런 노인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미리캔버스

나이가 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꼰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못 말리는 꼰대”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어딜 감히 ~~”


이 유형의 꼰대들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조금이라도 나서면 그 꼴을 못 본다.


“어딜 감히 니가 나서 ~~ ”


회의에서 젊은 직원이 의견이라도 내려고 하면, 너 몇 살이야? 어디 부서야?라고 하면서 아예 입도 뻥긋 못하게 하는 고질병인 꼰대들도 있다.


이 유형의 꼰대들은 연륜과 서열만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데, 제발 착각의 늪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서, 서열과 연륜보다는 실력과 그 사람의 태도가 중요한 세상이 됐다는 것을 하루라도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런 노인은 일찌감치 사양하자!


미리캔버스

“내가 왕년에 말이야~~”


왕년병에 걸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왕년에 장관 자리 안 해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어찌 된 게, 우리나라 왕년병 환자들 중에는 장관, 판사, 사장 출신이 그렇게도 많다.


나는 처음에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유행할 때, 솔직히 카페에서 새로 나온 커피라떼를 말하는 줄 알았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이 말이 ”나 때는 말이야~~”를 들먹이는 꼰대들의 대명사라는 것을 알고는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신조어 공부를 시작한 것이.


최소한 젊은 사람들이 내 뒷담화를 하면서 깔깔거릴 때, 왜 웃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왕년에 말이야~~“는 한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미국에 막 이민 온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이 왕년병은 실로 대단했었다.


미국에서 ”내가 왕년에 말이야~~“에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는 따로 있었다.


한국에서 왕년에 나는 서울 대를 나왔고, 왕년에 나는 한국에서 큰 사업을 했으며, 왕년에 나는 한국에서 엄청난 재산가였기 때문에, 미국에 와서 이런 허드렛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들 했다.


그러다가 이민 생활이 길어지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내가 왕년에 한국에서 말이야~~”로 시작하던 대화가, 어느 순간부터는 “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로 바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왕년에~~”를 들먹이지 않게 되면서, 그때 비로소 미국 이민 생활에 정착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왕년에 대단했던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을 살자.


미리캔버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마치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 같지만, 현실에서는 의외로 꼰대들이 배신감을 느꼈을 때 주로 하는 말이다.


꼰대의 권위가 무너졌다고 생각이 들 때, 절로 나오는 한탄사가 아닐까 싶다.


꼰대들은 자신이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저절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건 꼭 나이들은 사람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 주변의 젊은 사람들한테서도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하기사,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꼰대가 반드시 노인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실감을 한다.


꼰대들의 고정 관념은, 나이가 많거나 경력이 많으면 자동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를 않는다.


존중은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쌓아가는 것이다.


미리캔버스

“내가 그걸 왜 ~~‘

이런 말을 한다면 꼰대 확정이란다.


꼰대들은 절대 하기 싫은 일이나, 인정하기 싫은 일, 배우기 싫은 일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이 말을 내뱉는단다.


직장에서 후배들이 새로 나온 AI 기술을 배우면 업무가 훨씬 편해질 거라고 권하면, 일부 선배들은 눈을 부릅뜨고 “내가 그걸 왜 배워~~”, “그런 것 안 배워도 지금까지 잘만 해왔어!~~”라고 큰 소리를 친단다.


새로운 기술이나, 트렌드,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도 영락없는 꼰대의 모습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꼰대 하면 으례히 나이 든 사람을 떠올리지만, 내 주변의 젊은 사람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다.


어째서인지, 이 젊은 꼰대들은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데 있어서 노인들 못지않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는다.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가 보다.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기가 싫은 것이다.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발전은 없다.

과거에 머무르려 할수록, 점점 더 꼰대의 서열로 가까이 가게 된다.,


“내가 그걸 왜~~”라는 말 대신, “나도 한번 해볼까~~”라고 바꿔보자.


이 작은 변화 하나가, 우리의 삶을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1941년생인 우리 집 양반은, 고지식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게다가 고래 심줄을 삶아 먹었는지 고집 세기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이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꼰대 6하원칙”에는 하나도 해당이 안 된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마누라만 들들 볶고, 밖에 나가면 지극히 젠틀하고 배려심 많은 노인네다.


그래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남편분, 인품이 너무 좋으셔요~~”


그러면 난, 늘 속으로 중얼거린다.

“한번 살아봐~~ ”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 남편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집에서만 샌다.


일단은 남한테 민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다 보니 밖에서 욕은 안 먹는다.


밖에서도 꼰대짓을 하면, 더 피곤해질 수도 있겠다.


얄밉지만, 적어도 세상에 민폐를 끼치는 꼰대는 아니니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적어도 “이런 노인은 되지 말자”의 부류에는 속하는 것 같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나는 오늘도 묵묵히 도를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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