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로봇다리 김세진 접근성 스페셜리스트로 다시 서다!

세바시 명강의 모음

by 업글할매

또 한편의 명품 강의가 세바시 무대 위에 올랐다.

매번 기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하는 세바시.


이번에도 역시,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소중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런 귀한 강의를 아무런 대가 없이, 늘 우리 곁에 열어두는 세바시에게 그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때로는 마음이 지칠 때, 때로는 삶이 흐릿해질 때, 세바시는 늘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고, 때로는 작은 용기와 새로운 꿈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래서 염치없다는 걸 알면서도, 조심스레 바란다.

오래오래, 변함없이, 우리 곁에 있어주기를…


세바시 유튜브 채널 / 김세진

10년전, 세바시 무대에 ‘로봇다리 세진이와 엄마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던 소년이 있었다.


깊은 울림과 뜨거운 감동을 안겨주었던 그 ‘로봇다리 세진’이가, 10년의 세월을 지나 훌쩍 성장한 청년이 되어, 다시 세바시 무대에 섰다.


더없이 반가운 것은, 10년 전의 그 감동적인 영상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나는 그때의 벅찬 이야기를, 변치 않은 울림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어린이집에 자원봉사를 오셨던 지금의 엄마께서, 세진이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운명처럼, 그녀의 품에서 가슴으로 낳은 아이, 세진이가 탄생을 한 것이다.


세진이는, 무릎 아래로 두 다리가 없고 오른손도 두 손가락이 없는 '선천성 무형성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 시절, 세상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눈빛은 한없이 차갑고, 때로는 잔인할 만큼 무지했다.


동네 어른이라 불리던 이들은 어린 세진이 앞에서도 서슴없이 상처 주는 말을 내뱉었단다.


손잡고 같이 걷던 자신의 아이들에게, “너도 거짓말하고 말 안 들으면, 커서 저렇게 된다."라는 그 끔찍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다닌 것이다.


세진이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나는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고, 엄마 말씀을 꼭 잘 들을 거야.”


어린 마음속에 아로새겨진 그 다짐은 점점 더 깊어갔고, 세진이의 이런 마음을 알아차린 엄마는 어느 날 세진이한데 약속을 하셨단다.


“세진아, 엄마가 널 반드시 걷게 해줄게.”


의족을 하기 위해서는, 6번의 수술을 해야만 했는데, 그 당시 4살이었던 세진이에게는,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이런 고통을 견뎌내고 엄마의 약속대로 세진이는 드디어 걸을 수가 있게 됐다.

엄마의 약속대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세바시 유튜브 채널 / 김세진

어느 날, 어린 세진이가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단다.


“엄마, 왜 나는 장애인으로 태어났어요?“


그 작은 질문 앞에, 세진이의 엄마는 이런 대답을 주신 것이다.


세진아 걷는 것? 중요하지 않아.
네가 걷다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줄 아는 것이 중요해.
혹여 못 일어날 경우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것도
용기 있는 사람이야.


어떻게 생겼는지 중요하지 않아.
어떻게 살아 갈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어디로 갈 것인지
누구와 함께 갈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엄마의 이 따뜻하고 깊은 말들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세상을 향해 두려움 없이 발을 내디딜 수 있게 해준, 삶의 나침반인 것이다.


아직 어린 세진이에게, 세상이란 너무 크고, 때로는 야몰차고 매정했지만, 그 안에서 다시 일어설 용기와 따뜻한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엄마의 가르침은,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어쩜 이리도 지혜롭고 사랑이 깊은 어머니가 있을까.

그저 가슴이 뭉클해져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다.


세바시 유튜브 채널 / 김세진

세진이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무형성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엄마의 하늘 같은 사랑과 보살핌, 그리고 자신의 장애를 결코 운명의 족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의족을 딛고 일어서서,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세상 앞에 섰다.


그는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선발되었고, 2009년 세계장애인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개인혼영 200m 금메달, 자유형 150m 금메달, 접영 50m 금메달을 차례로 거머쥐었다.


국내외 대회를 통틀어 무려 150개의 메달을 쓸어 담은 세진이의 기록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이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한 인간의 뜨거운 의지와 포기하지 않는 영혼의 증명이었다.


그의 도전은 장애를 넘어, 인간이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10년 전, 어린 김세진은 커다란 꿈을 품었다.


훗날 IOC 위원이 되어, ‘힘든’ 세상을 ‘힘낼’ 세상으로 바꿔내겠다는 아름다운 약속을 스스로에게 걸은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아이들에게, 무지개 같은 다리가 되어주고 싶어요.”

10년이 흐른 지금, 잘 자란 성인이 되어 돌아온 세바시에서, 김세진 님은 말한다.


“지금은 먹고살기 위해서 그 힘들다는 직장인이 됐다"라고…


밝게 웃으면서 털어놓는 그의 모습에서 여전히 변치 않는 빛을 본다.


어쩌면 지금의 세진이는,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느껴진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가 품었던 그 약속을 이루어낼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세바시 유튜브 채널 / 김세진

세바시 무대 위에, 한 청년이 잘 생기고 또렷한 눈빛으로 관객 앞에 섰다.


어릴 적 ‘로봇다리 세진’으로 불리던 그는 이제 단단하고 멋진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다.

환한 미소를 머금고, 온 얼굴에 사랑과 자부심을 담아서 바라보는 그분은, 바로 세진의 어머니였다.


저 눈빛 속에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견디며 쌓아온 사랑과 헌신, 눈물과 기도가 담겨 있을 것이다.


아픈 시간들을 함께 걸어오며,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으켜 세우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한 어머니의 거대한 사랑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이 무대 위의 아들은, 그 사랑을 발판 삼아 스스로 당당히 선 것이다.


세바시 유튜브 채널/김세진

어린 나이에, 장애를 딛고 수영 선수로 다양한 도전들을 했던 김세진 님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취업이라는 그 힘든 세상의 문을 두드렸단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너무 다른 현실적인 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취업을 하기 어려운 조건에 부딪힌 것이다.


과거의 도전과 성취는 잊힌 채, 단지 서류에 남겨진 ‘장애 여부’만으로 평가받은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장애 여부를 체크한 지원서로는 번번이 1차 면접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쓰라린 경험 끝에, 이를 표시하지 않은 지원서로 면접까지 진출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면접장에서는 끊임없이 장애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고, 그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온전히 존중받지 못한다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어떻게 장애를 가지게 되었나요?”

“유전인가요? 사고인가요?“

”대인관계에는 문제없죠?“

”회사가 걱정할 일은 없는 거죠?“


왜 이런 것을 굳이 물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살던 미국에서는, 입사 지원서에 장애 여부를 묻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는 주마다 법이 다르기는 하지만, 아마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전부 다 같은 생각일 것이다.


장애 여부는 물론, 나이 제한 같은 것도 함부로 올렸다가는 고소를 당하기 십상이다.


내가 미국에서 장사를 할 때도, 많은 한인들이 이런 사실을 몰라 한인들이 운영하는 신문 광고에 ” 여자분 원함“, ”50세 미만“ 같은 조건을 써넣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대한민국은 지금 놀라울 만큼 발전한 나라가 됐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경제도, 기술도, 문화도 눈부시게 성장했다.


하지만 막상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살면서 느끼는 점은, 장애인을 향한 사회의 시선과 배려만큼은 미국에 비해서 여전히 멀고, 아프게 느껴진다.


진짜 선진국이란, 장애를 가진 이들이 아무런 불편함 없이, 그 어떤 차별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설명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돈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조금 늦추더라도, 주변의 불편한 몸과 아픈 마음을 지닌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건넬 수 있는 나라, 그런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


세바시 유튜브 채널/김세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세진 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접근성 스페셜리스트’라는 멋진 이름으로 다시 한번 세상 앞에 우뚝 섰다.


‘접근성 스페셜리스트’란,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정보, 서비스, 공간, 제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개선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과거에는 장애인들이 일상 속에서 정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많은 제약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는 이름 아래,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참여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가치가 강조되고 있다.


접근성 스페셜리스트는 바로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김세진 님은 바로 이런 세상을 앞장서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 모든 서비스 이용자들이 아무런 신체 또는 인지적 장벽 없이, 정보에 접근하고,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교육과 컨설팅을 진행하며 다리를 놓는 일을 하고 있다.


김세진 님이야말로 진정한 ‘접근성 스페셜리스트’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장애인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고통이 있었는지, 어떤 시선이 아팠는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가장 절실했는지를 그는 직접 겪으며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상에서 배운 지식과, 몸으로 겪은 삶의 체험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확신한다.

김세진 님은 이 분야에서 가장 진정성 있는 전문가이자, 머지않아 최고가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아직도 한국 사회는 입사 서류에서 장애 여부를 체크하게 하고, 그 한 줄의 표시로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


이런 현실 앞에,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김세진 님 같은 사람은, 그 어떤 회사라도 손 내밀어 함께하자고 간절히 청해야 할 인재다.


세진 님이 세상에 더 많은 ‘접근’의 다리를 놓아줄 수 있도록, 그리고 그의 걸음이, 다른 이들의 삶을 조금 더 넓고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진심으로 응원한다.


세바시 유튜브 채널/김세진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너무도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뜻을 한 번이라도 곱씹어 본 적이 있었는지 반성한다.


'장애인'은 한자로 '障碍人'이라고 쓴다. 여기서 '障(장)'은 '가로막는다'는 의미이며 '碍(애)'는 '거리끼다, 방해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가로막고 거리끼며 방해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얼마나 슬픈 이름인가.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아직도 이렇게 사람을 상처 입히는 단어를 무심히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단어야말로, 정말 사라져야 할 말이 아닐까.


김세진 님은 장애인이라는 말을 참 “진”, 사랑 “애”를 붙인, “진애인”이라고 바꾸면 어떻겠냐고 한다.


이 두 글자만 바꿔도, 그 의미는 상당히 바뀌면서, 그 안에 담긴 세상의 온도 또한 완전히 달라진다.


‘진애인’

진심으로 사랑받아야 할 사람, 진짜 사랑을 품은 사람, 우리 모두가 마음으로 존중해야 할 존재라는 뜻이다.


사회를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구분 짓는 게 아니라,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되는 것이라는 말에 눈물이 핑 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장애인’이라는 이름 앞에서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견뎌야 했을지 생각하면, 참 미안한 마음이 밀려온다.


우리는 이제, 사람을 단어로 상처 입히는 시대를 멈춰야 한다.


그리고 다시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누구나 저마다 한 가지 이상의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나 역시 그렇다.


평생 나와 함께 할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오른손 두 손가락에 장애를 입었다.


생각지도 못한 큰 사고로, 중지와 검지를 수술했지만 완전한 기능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평생 고무장갑 없이 그 많은 설거지들을 해 왔건만, 이제는 찬물에 조금만 담그고 있어도 손가락이 금세 굳어버린다.


날씨가 궂은 날이면, 영락없이 수술한 자리가 아파오고, 아직도 어김없이 고통을 견뎌야 한다.


무엇보다도 마음 아픈 것은, 그렇게도 좋아하던 노트 정리를 이제는 마음껏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억지로라도 펜을 쥐고 써보지만, 내가 보아도 낯설고 부끄러울 만큼 삐뚤삐뚤해진 글씨에 아예 손을 놓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서, 어디 가서 손글씨를 써야 할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슬쩍 나를 쳐다보고, 다시 내 글씨를 쳐다보는 그 시선이 참 속상하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이런 시선과 태도는 아직도 우리나라가 고쳐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진짜 선진국이란, 상대방의 글씨가 개발새발이든, 삐뚤삐뚤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 마음을 가진 나라다.


형태나 완성도를 넘어, 그 사람의 삶과 노력 자체를 존중하는 사회, 그런 따뜻한 배려가 참 그립다.


세바시 유튜브 채널/김세진

김세진 스페셜리스트가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는 정말로 열린 마음을 가진 곳이다.


편견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 보니, 가끔은 상상을 초월한 일들도 벌어진다고 한다.


지난해, 회사가 너무 바빠 전 직원이 정신없이 일하던 때, 세진 님을 배려한 실장님이 말했다.


“세진 님은 컨텍에서 빠지셔도 괜찮아요.”


그러자 세진 님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제가 알고 있어야 대응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돌아온 실장님의 대답.

“그럼, 발가락 하나 정도만 걸쳐 두세요.”


이 예상치 못한 대답에 세진님은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단다.

“제가 비록… 발가락은 없지만… ”


그 순간, 단톡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었단다.


그만큼 이 회사는, 김세진 스페셜리스트가 몸이 불편한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세진 님은 그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누군가가 나를, 내 장애나 겉모습이 아닌, 내 능력과 역량만으로 팀의 구성원으로 인정해 주는 그 사실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격스러웠단다.


이런 팀들의 아낌없는 지지와 사랑 속에서, 지난 3월, 미국에서 가장 큰 컨퍼런스로 손꼽히는 ‘국제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아시아 최초로 ‘접근성 세션’을 발표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 무대에 섰을 때, 세진 님은 비로소 깨달았단다.


자신은 이제 더 이상 ‘로봇다리 김세진’이 아니라, ‘접근성 스페셜리스트 김세진’으로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장애를 딛고 일어서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문득,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진다.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두 다리로 걷고, 불편 없이 두 팔을 움직이며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 그저 스쳐가는 일상 속에 감사함을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조금은 흠집 나고, 조금은 고장이 나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이 몸으로, 그래도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에 그동안 얼마나 무심했는지 반성한다.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내가 가진 것들을 돌아보면, 감사함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덮쳐온다.


조용히 다짐해 본다.


더는 당연함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더 자주 감사하고, 더 깊이 존중하며 살아가기를.


그리고, 나보다 아픈 누군가를 향해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기를.


반성한다.

그리고 조금 더 좋은 어른이 되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