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행복한 노후
“멋쟁이 노인은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왜 그리도 웃음이 나던지…
무슨 멋을 낸다고 치매에 안 걸리겠나 싶어서, 하다 하다 별 농담을 다한다 싶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 안에 참으로 많은 것들이 숨어있는 것 같다.
흔히들 노인들이 사는 동네를 들여다보면, 옆집 순자네 할머니는 늘 몸뻬 바지에 해진 티셔츠 차림으로 골목을 휘젓고 다닌다.
반면, 건너편 영이네 할머니는 다르다.
깨끗하게 다린 꽃무늬 원피스에 밀짚모자를 쓰고, 발에는 알록달록 예쁜 운동화에, 어깨엔 에코백을 매고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동네를 산책한다.
마치 인생 자체가 패션쇼 무대인 것 같다.
과연 어느 쪽이 정상이고, 어느 쪽이 덜 치매에 가까운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둘 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 들어서 생각이 바뀌었다.
영이네 할머니처럼, 자신만의 스타일로 멋을 낼 줄 아는 사람이면 된 것이다.
진정 멋을 낼 줄 아는 노인은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니까, 이참에 ”멋‘이란 무엇일까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를 해봐야겠다.
나는 “꾸안꾸”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은근히 멋이 있는 느낌.
그런데 살다 보니 이 “꾸안꾸”라는 것처럼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다.
공을 안 들이면 그냥 ‘안 꾸민 것’이 되고, 너무 공들이다 보면 이건 ‘꾸안꾸’가 아니라 ‘꾸꾸꾸’가 되어버린다.
나는 주로 단색 옷을 즐겨 입는다.
화려한 무늬나 유행 따라가는 건 영 어울리지 않아서, 간단한 티셔츠에 편한 바지, 그리고 나름 멋진 잠바 하나 걸치면 그걸로 끝이다.
다행히 색 조합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상의랑 하의는 무난하게 맞추는데, 문제는 신발과 가방이다.
남편이 쇼핑을 극도로 싫어하는 탓에, 그저 집에 있는 것에서 맞추던지, 아니면 가끔 몰래 사갖고 오는 것으로 그럭저럭 맞춰나간다.
십 년, 이십 년 전의 물건도 기억하고 있는 우리 집 양반만 아니면, 어느 정도는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멋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것도 이번 생에서는 포기해야 할 듯…
미국에서 살 때는, 크게 유행이라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살다가. 막상 한국으로 돌아오니까 너무도 요란한 패션과 빠른 변화에 정신이 없었다.
오죽하면 미국에서 오랜만에 한국에 방문했던 사람들은, 이런 한국 사람들의 옷차림과 아주 잘생기고 예쁘게 변한 한국 사람들은 보고는, 전부 연예인인 줄 알았다고 해서 우리끼리 웃어넘기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벌써 9년째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나의 스타일은 변함이 없다.
머리도 자연스러운 것이 좋아서, 염색을 안 하고 흰머리 그대로 다닌다.
화장도 한 듯 안 한 듯, 립 클로스도 연한 색으로 바르고는 번쩍거리는 것이 싫어서 티슈로 살짝 닦아낸다.
이렇게 나만의 ‘꾸안꾸’가 완성된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답게, 그리고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아도 은근히 나만의 멋을 내려고 노력한다.
멋이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다.
나 자신에게 “오늘도 멋지게 살아보자”는 인사를 건네는 일이다.
나는 요즘도 늘 마음속에 새기고 사는 말이 있다.
바로 밀라논나, 장명숙 작가님의 말이다.
“하나뿐인 나에게 예의를 갖추자”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마치 누군가가 내 머리를 세게 두드린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이 아름다운 제목의 책 안에서 나는 오랜 시간 묵혀왔던 내 삶의 쓸쓸함과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거의 평생을 스스로를 ‘무수리’라 부르며 살았다.
늘 뒷전으로 밀리고, 양보하고, 참으면서, 내 마음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그저 남만 배려하면서 참 바보같이 살아왔다.
그런 내가, 밀라논나님의 “하나뿐인 나에게 예의를 갖추자”라는 문장을 만났을 때, 비로소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그토록 나에게 무례했을까?”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데, 과연 누가 나를 귀하게 여기고, 따뜻하게 대해줄 수 있었을까?
그때부터였다.
비로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가기 시작한 건…
거울 앞에서 살포시 미소도 지어보고, 따뜻한 밥 한 끼도 더 좋은 재료로 만들고, 옷 한 벌을 장만하더라도 이왕이면 좋은 것으로 샀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에게 예의를 갖춰나갔다.
꾸민다는 건, 단순히 외모를 가꾸는 게 아니다.
그건 내 삶에 “나는 아직도 살아있다"라는 신호를 보내는 일이다.
하루를 대충 넘기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내 인생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선언이다.
노인이 됐다고, 만사 귀찮다고, 내가 나를 꾸미는 것을 귀찮아하는 순간, 진짜 노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치매라는 친구가 나를 향해 반갑다고 손짓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살아보니, 치매처럼 무서운 것도 없는 것 같다.
다른 병들은 그래도 내가 내 의지대로, 나의 상태를 확인해가면서 살아갈 수 있지만, 치매라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니, 이것처럼 무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칠십 대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치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이다.
매일 아침, 일 년 365일 하느님한테 기도드린다.
나와 우리 남편, 어떻게 해서든지 치매만큼은 피해 가게 해달라고…
하지만 이것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겠는가…
오죽하면 평생 치매 환자를 돌보시던 의사 선생님께서도, 치매에 걸린 경우도 있다.
그런 걸 보면, 결국 모든 건 하늘이 아시는 일이다.
그래도, 정말, 치매만큼은 피해 가고 싶다.
정말 정말 간절히, 눈물 나게 바란다.
우리 집 양반은 ‘치매 DNA’를 갖고 있다.
시어머님께서 치매로 돌아가셨다.
알라스카에 살고 있는 큰 딸이 약사이다 보니, 누구보다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유전이라는 데 얼마나 무서운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딸이란 나는 치매 예방에 대해 이야기를 진지하게, 자주 한다.
먹는 음식부터 시작해서 운동, 심지어는 뇌 훈련까지 죄다 찾아본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우리 집 양반은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됐어, 나 치매 안 걸려!”
“나 아직 말짱해!”
이렇게 화를 내면서 아예 대화 자체를 피해버리니까, 나와 딸은 그저 속이 타들어간다.
진짜 속이 까맣게 타서 재가 될 지경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었다.
우선은 내가 나부터 잘 돌보자.
나라도 멀쩡해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겠는가…
노인이 될수록 깔끔하게 차려있고 다녀야 한다고 해도, 우리 집 양반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할아버지들은 옷을 하루 이틀만 입어도 옷에서 냄새가 난다.
유난히 후각이 발달한 나는, 처음엔 이 냄새가 너무도 싫어서 거의 미칠 지경이었는데, 알아보니 남자들은 노인이 되면서 호르몬의 변화로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이란다.
한 번 입은 옷은 무조건 빨아야 된다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대도, 물값 아깝고, 전기세 아깝다고 우리 집 양반은, 한 번은 바로 입고 한 번은 뒤집어 입는다.
그러다 보니, 처음 입은 날은 괜찮다가, 그다음 날 뒤집어 입은 옷은 영락없이 냄새가 나는 것이다.
가뜩이나 결벽증이 있어서 나를 괴롭히던 사람이, 어쩌자고 옷은 안 갈아입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나마 외출할 때는 깔끔해 보이는 외모 덕에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다.
가뜩이나 치매 유전자가 있는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 해진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병인데, 치매 예방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행동만 하는 남편이 답답하다.
워낙 고집이 센 사람이라,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바가 없기에, 그저 하늘에 대고 기도만 열심히 한다.
나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난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면, 그 어떤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선은 책도 부지런히 읽고, 나름 글도 열심히 쓰고, 새로운 것 있으면 시도해 보려고 노력을 한다.
헌데, 이 멋쟁이 노인이라는 말 앞에는 자신이 없다.
늘, 1년 365일을 집에만 있다 보니 딱히 멋을 부릴 일이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늘 똑같은 일상, 게다가 삼식이 아저씨를 모시고 살다 보니, 거의 부엌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이런 형편에 멋을 부린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조용히, 나만의 방식으로 멋을 지켜나가려고 노력은 한다.
요즘 아침마다 나도 모르게 옷장 앞에 선다.
예전 같았으면 세수만 하고, 편한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하나 걸치고 하루를 시작했겠지만, 이젠 아니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내 옷장을 열어본다.
거의 외출이라는 것을 안 하고 살다 보니, 아까워서 보관해뒀던 옷장 안의 좋은 옷들이 곰팡이가 날 지경이다.
이 옷들도 가끔 한 번씩은 신선한 공기를 쐬면서 나가고 싶었을 텐데, 너무 오랫동안 무심하게 방치를 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노인 심리 상담 전문가이신 이호선 교수님이 어느 강의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어차피 늙으면 달리 꾸미고 나갈 일도 없어지니까, 집안일하면서 옷장 속의 옷들을 죄 다 꺼내 입어보라고 하셨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웃어넘겼는데, 나 역시 지금 같은 처지이다 보니, 허투루 넘길 수가 없는 말이다.
어차피 옷 장 속에서 곰팡이가 피느니, 차라리 설거지 할 때도 입고, 집 앞에서 운동할 때도 걸치고 나가고, 밥 먹을 때도 예쁘게 차려입고 식사를 하란다.
그런데, 막상 시도를 하려니까 너무 웃긴다.
늘 편한 옷만 즐겨 입던 사람이 갑자기 집안에서 외출복을 차려있는다면, 너무도 어색하고 불편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 보려고 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잘 차려 입고 집에 있다 보면 마음가짐도 달라질 것 같다.
무엇보다도 “멋쟁이 노인은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라고 하니까,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행히 내 옷들은 지나치게 드레시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깔끔하게만 입으면, 오히려 멋이 날 수도 있다.
치매를 예방한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동기부여가 되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멋을 내보자.
헌데, 또 하나의 장애물이 있다.
내 옷장 문을 열면, 전부 다 어두운색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블랙, 다크 네이비, 다크 그레이, 그 사이에 빨간 재킷 하나가 유일한 포인트다.
밝아지자.
옷부터 바꿔보자.
그렇다고 요상한 옷들은 피하자.
꾸미자.
무조건 꾸미자.
오늘도 내일도 지치지 말고 꾸미자.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멋 내는 나를 보면, 내 마음 또한 활짝 피어날 것이다.
멋쟁이 노인이란, 단순히 외모를 치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옷과 화장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고, 오늘의 나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진짜 멋쟁이다.
꾸민다는 건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살아 있고, 내 삶을 사랑한다"라는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는 몸짓인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 하나만으로도 뇌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서, 치매를 예방하는 것이다.
물론, 공부도 중요하고 운동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태도인 것 같다.
나를 멋지게 가꾸려는 노력, 그 자체가 가장 고급스러운 뇌 자극이 될 것 같다.
우선, 거울 속의 주름 가득한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2년 전에 우습게 넘어져서 다친 인중의 상처가, 코하고 입술 사이를 온통 세로 주름으로 만들어 버렸다.
처음, 이 세로 주름이 주는 쇼크는 의외로 컸다.
갑자기 파파 할머니가 된 듯했다.
아무리 그 주변을 만지고 마시지를 해줘도, 전혀 펴지지를 않는다.
잠깐 우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것 또한 안고 가기로 했다.
세로 주름이 생긴 대신, 중요한 코 뼈는 안 나갔던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하기로 했다.
그 순간부터, 나의 인중의 주름은 상처가 아니라 내 삶의 기록이 되었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났고, 슬펐지만 끝내 웃음을 되찾았다.
나는 오늘도 웃는다.
삶이 내게 준 경험들을 예쁜 옷처럼 하나하나 걸치고, 나만의 하루를 뽐낸다.
그렇게 또 살아간다.
멋을 낸다는 건, 결국 삶을 사랑한다는 뜻인 것 같다.
오늘의 나를 아끼고, 내일의 나를 기대하는 일, 그 자체가 가장 고급스럽고도 따뜻한 뇌 자극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나의 주름진 얼굴에 가장 아름다운 멋을 더한다.
바로 나의 환한 미소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