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행복한 노후
굉장히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전투표를 하고 왔다.
소녀 시절의 설레임하고는 또다른, 새로운 설레임이 너무도 좋았다.
복수 국적을 신청한 덕분에, 이렇게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도 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눈물 나도록 감사하다.
괜히 내가 세상을 바꾸는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기분이 들뜨고, 마음은 하늘을 둥둥 떠다녔다.
이제야 비로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진정한 국민의 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마트가는 것 빼고는 거의 집콕이던 우리 부부, 그런 우리에게 모처럼 외출할 일이 생겼다.
그것도 부부 동반으로~~
이 모든 게 사전투표 덕분이다.
남편을 최대한 멋지게 단장시키고, 나역시 깨끗하고 예쁘게 차려입었다.
마치 어디 혼례라도 가는 양, 정성껏 모양을 낸 것이다.
그만큼 오늘의 ‘사전투표’는 우리 부부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날인 것이다.
소중한 나의 한표를, 집에서 일하던 옷차림 그대로는 나가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었던 것이다.
멀리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임시 투표장이 준비돼 있었다.
남편의 옷매무새를 다시 정돈해주고, 나 역시 깊게 숨을 들이쉰 다음 용기있게 안으로 들어섰다.
누군가에겐 그냥 ‘투표’일지 몰라도, 우리 부부에겐 이 하루가 평생 기억될 작은 민주주의 축제였다.
그래서 오늘의 외출은, 그 어떤 여행보다도 더 의미있고, 더 설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투표장에 들어서서도 여전히 우리 집 양반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기 전화 번호도 못외우는, 팔십대 중반인 남편이, 행여 엉뚱한 곳에 도장을 찍을까봐 어제부터 철저히 사전 교육에 들어갔다.
“여보~ 우리가 원하는 사람은 이 사람이야. “
”이 사람 번호가 몇 번이니까, 반드시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정확히 찍어!“
투표를 끝내고 나오는 사람한테 재차 확인했다.
“제대로 찍었어요? ”
“응~~”이란다.
남편도 기분이 좋았던지, 웬일로 나온 김에 외식하잖다.
가끔 이렇게 예쁜 짓도 한다.
그래서 부부가 오랜 세월을 같이 사는가 보다.
우리 집 양반 좋아하는 곳이 정해져있다보니, 오늘은 집 근처 중국집으로 갔다.
제법 맛있게 하는 곳이다.
늘 하던 대로 짜장면 하나에 탕수육 작은 것 한 접시를 주문해서, 둘이서 아주 맛있게 나눠 먹었다.
난, 늘 중국집에만 가면 고민이다.
짜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먹고싶고..
웬만한 사람들은 둘이서 가면, 짜장에 짬뽕 시키고 탕수육은 덤으로 시키는데, 우리 집 양반이 워낙 소식이라 우리는 그냥 하나는 포기한다.
딸내미한테 오늘 외식했다고 자랑했더니, 이왕 나간 김에 어디 근사한 데라도 가지 왜그랬냐고 한다.
나한테 외식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집돌이에 삼식이인 남편하고 어디든 상관없이 외식을 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잠시 행복함을 맛보게 해준 ‘사전투표’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사실, 우리 부부에게 ‘무슨 당’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저 바라기만 한다.
우리 집 양반 말대로 오십년 만에 돌아온 내 조국, 내 나라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나라로 남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도 미국에 남아있는 가족과 지인들한테, “괜찮냐~~”는 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다.
이민자였던 지난 세월, 우리는 수많은 차별과 편견을 견뎠다.
오죽하면 어떤 사람은 중국인이냐고 물으면,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때는, 코리아에 대한 인식이 형편없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메이드 인 코리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베스트 바이 (Best Buy)‘ 라고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아주 크고 유명한 곳이 있다.
처음에는 들어가는 입구가 온통 소니 (sony)로 진열돼 있더니.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삼성과 엘지가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침내는 소니가 뒤로 밀려나고, 제일 중요한 입구 쪽이 온통 삼성과 엘지로 가득차게 된 것이다.
그때 느꼈던 그 감동은,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이렇게 미국에서 사는 한인 이민자들은, 이런 것을 통해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내 나라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키워갔던 것이다.
아마 이제는 그 어느 이민자도, 자신이 한국 사람이 아닌 다른 동양인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같다.
이제는 이런 가전제품은 물론, BTS의 대단한 활약을 시작으로, K 푸드. K 드라마 , K 뷰티등 한국의 위상이 어마어마해졌다.
이런 노력들이 허무해지는 일이 없기를, 그저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할 뿐이다.
외국에 나가 살아본 사람은 조국의 소중함을 더 깊이 안다.
오늘, 나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생각보다 훨씬 벅차고 감동적인 일이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선택, 그 시작에 나와 우리 집 양반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제발, 우리 국민 모두가 현명한 선택을 해주기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나라가 지금보다 더 안정되고 자랑스러운 곳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