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행복한 노후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
평소에 너무나도 존경하고 좋아하던 장동선 박사님이 드디어 제주도에 나타나셨다.
내 인생의 제2 막을 열어준, 소중한 배움의 공간인 제주 디지털 배움터에서 이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강의는 제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실에 도착하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의외로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정말 많이 오신 것이다.
하기사, 나 역시도 칠십 대 할매인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자리는 ‘디지털 배움터’에서 스마트폰 활용 강의나 키오스크 교육을 들으신 어르신분들께서 함께 하신 자리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10시에 강의가 시작되지만, 혼잡이 예상되니까 9:30분까지는 입장을 마쳐달라는 안내가 있었는데, 이미 많은 어르신들이 자리를 꽉 채우고 앉아 계셨다.
그에 비해 젊은 분들이 좀 늦는 듯하자, 사회자님께서 웃으며 역시 어르신들은 부지런하시다는 말에 잠시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
무려 200명이 넘은 분들이 자리를 함께해 주셨단다.
아마도 제주도에서 열렸던 디지털 배움터 특강 중에서는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하지 않았나 싶다.
역시 장동선 박사님의 인기와 영향력은 대단한 것 같다.
시작 전부터 설렘이 밀려왔었는데, 드디어 박사님이 단상에 오르자 장내는 금세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거의 연예인이나 다름없는 분이시라서, 그 인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 생전에 연예인을 가까이서 본 건, 2년 전 김창욱 강사님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싶다.
알쓸신잡, 세바시, 어쩌다 어른 등, 박사님이 출연한 방송은 물론, 박사님이 운영하시는 유튜브 채널 ‘장동선의 궁금한 뇌’도 빠짐없이 챙겨 보는 충성 구독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직도 이 채널이 100만 구독자를 넘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기기 않는다.
요즘 웬만한 요리 채널도 백만을 훌쩍 넘기는 시대인데, 이토록 귀하고 유익한 뇌과학 채널이 60만 대에 머물러 있다는 건, 아직 국민들의 관심이 먹는 것에 더 많이 치우쳐 있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100세 시대를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선, 잘 먹는 것만큼 잘 생각하는 법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뇌과학‘이 자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 무서운 치매도 멀리할 수 있고, 남은 인생을 더 건강하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장동선 박사님은 뇌 과학자이자 스토리텔러이다.
아무리 복잡한 이론이어도, 박사님이 풀어주시면, 그저 재미있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덕분에 나 같은 할매도 ‘뇌과학’이라는 단어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흥미와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
내가 박사님을 처음 안 것은 ‘알쓸신잡’에서였다.
한눈에 확 들어오는 잘 생긴 외모에다가 부드럽고 순한 인상, 그리고 늘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에 그냥 반해버린 것이다.
말씀도 어쩜 그렇게 재미있게 잘하시는지,‘뇌과학자’라고 소개하는 것이 그저 신기했었다.
그때부터 나는 단단한 찐팬이 되었다.
진지한 토론을 하면서도, 늘 표정이 그 어떤 고급 지식보다도 더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래서인지, 화면 속에서는 ‘지식’을 말하지만, 화면 밖에서는 언제나 ‘사랑’을 받으시는 뇌과학자이다.
그런 분을 오늘 이렇게 실제로 만났다는 건, 나에겐 작은 기적 같은 일이다.
늘 그렇듯, 내가 갖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얌전한 옷으로 골라 입었다.
다림질도 새로 하고, 평소엔 ‘꾸안꾸’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오늘은 살짝 립 클로스도 바르고, 나름 있는 대로 신경을 썼다.
그동안 방치해서 막혀 있던 귀도, 달래고 달래서 귀걸이까지 했다.
이 작은 행동이 나로서는, 이 먼 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신 강사님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머리 손질 또한 상당히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데, 일주일 전부터 우리 동네는 계속 비 소식으로 마음이 심란했었다.
그런데 하늘이 도우셨는지, 일기 예보가 빗나가서 오늘은 흐림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덕분에 단정한 옷차림과 잘 손질된 머리 모습으로 강의를 들으러 갈 수가 있었다.
때 빼고 광내는 내 모습을 보고, 우리 집 양반 기어코 또 한 마디 한다.
다 늙은 할매, 아무도 관심 없을 텐테 웬 요란을 떠냐고 야단을 맞았다.
이런 준비 과정이 사실은 나를 들뜨게 한다.
잠시 칠십 대라는 내 나이조차 잊게 하는 것이다.
이래서 죽을 때까지 공부에 대한 끈을 놓지 말라고 하나보다.
배우는 일은, 나를 살게 한다.
그리고 오늘도, 나를 웃게 한다.
강의 시작 전, 사회자의 멘트를 기다리며 맨 앞줄에 앉아 계시던 박사님께서, 무심코 뒤를 돌아보시다가, 반가운 척하는 나를 바라보시고는 환하게 웃어주신다.
이런 친근한 매너를 갖고 계신 박사님이시기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 같다.
사람을 보면 무조건 웃고 시작하는 모습이 너무도 좋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미소로 먼저 다가가는 그 친근한 태도, 이건 배워서 되는 게 아니라, 몸에 밴 진짜 멋진 매너인 것이다.
이런 분과 마주 앉아 있으면, 마음이 먼저 열린다.
드디어 강의가 시작되었다.
본인에 대한 소개를 간단하게 하겠다고 했는데, 그 이력이 어마어마하다.
뇌과학자이면서, 커뮤니케이터, 그리고 작가이시기도 하다.
어느 하나만 해도 벅찰 이 직함들을 박사님은 모두 ‘진짜’로 살아내고 계신다.
독일에서 태어나셨고, 독일 최고의 과학 연구기관 중 하나인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뇌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뇌과학 연구활동을 하시다가, 그 유명한 ‘알쓸신잡’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하신 것이다.
대단한 이력과는 딴판으로 늘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하고, 눈 마주치는 사람에게 미소를 나누는 분이시다.
그래서 박사님의 강의는 지식보다 더 깊은 감동을 준다.
오늘은 뇌에 관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아마도 이런 박사님의 매력 때문인 것 같다.
장동선 박사님께서도 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신단다.
“이 사람, 혹시 뇌가 없는 게 아닐까?”
소통이 전혀 안되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진짜로 뇌가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박사님의 설명에 모두들 얼마나 안심하고 즐거워했는지 모른다.
그저 어떤 사람들은 뇌를 사용하지 않거나, 혹은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것일 뿐이라는 말씀에,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세상이 바뀌면 인간도 바뀌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뇌‘가 있기 때문이란다.
늙으면 뇌도 성장을 멈춘다는 옛날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엎듯이, 이제는 우리들의 뇌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평생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그래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생활습관을 조금씩만 바꿔나가도 우리의 뇌세포는 얼마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장동선 뇌과학자님의 설명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오늘 이 강의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은 희망이 있는 것이다.
배우려고 하는 그 자세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것이다.
그러니 문제는 뇌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뇌를 움직일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이다.
우기지만 말고, 버티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다시 생각하고, 다시 배우고, 다시 살아갈 수 있다.
그게 바로 “뇌가 있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뇌‘가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뇌는 혼자 살아가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란다.
우리가 가진 뇌의 가장 강력한 능력 중의 하나가 바로 “사회적 뇌”라는 박사님의 설명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작아졌다.
인간은 나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늘 집에만 있으려고 하는 남편을 이길 재간이 없다 보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사회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어딘가 모르게 저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박사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문명은, 뇌의 사회적 능력을 통해 이루어진 성취였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언어를 만들고,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기며, 앞날을 준비하기 위해 미래를 예측해 왔다.
그 모든 진보의 바탕에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진화해온 뇌’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공동육아’라는 설명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예전에는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마을 전체가 나선 것이다.
엄마가 바쁜 일이 생겨도, 이웃에다 맡기고 나갈 수도 있었고, 같은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마다하지 않고 선뜻 나서서 아이를 돌봐주던 그런 공동체 정신이 있었다.
그건 단순한 도와줌이 아니라,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뇌의 능력이란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저출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공동체 정신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박사님의 말씀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서로를 함부로 믿기 어려운 세상, 웃으며 아이를 맡길 수 없는 이웃이 되고 말았다.
이런 고립된 현실 속에서 혼자 아이를 낳고, 혼자 키우고,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점점 더 아이를 안 낳고 싶어지는 이유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망은 남아있다고 박사님은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여전히 ‘사회적 뇌’가 남아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지식을 나누고, 마음을 건네며, 기록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힘이 우리 뇌 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미래에는 어쩌면 AI 멘탈 상담사라는 이상한 직업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장동선 박사님의 말씀에 웃음이 빵 터졌다.
하다 하다 이제는 AI의 심리상태까지 봐줘야 하나보다.
지금은 우리가 AI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지만, 앞으로는 오히려 AI의 기분을 살피고, 눈치까지 보게 될지도 모른다.
행여 내 말이 AI에게 상처를 줬을 까봐 걱정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살짝 웃기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살짝 무섭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본래 마음을 나누는 존재이자, 공감하고 어루만지는 존재이다.
손을 잡고, 눈빛을 나누고,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감정보다 정보가 더 중요해졌고, 사람보다는 스크린을 더 오래 바라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럴수록 아이러니하게도, AI는 점점 더 인간다워지고, 정작 우리는 점점 덜 인간다워지는 것이다.
이러다 진짜 인간과 AI의 자리가 뒤바뀔까 봐 살짝 겁이 난다.
그래서 더더욱 AI 시대일수록 우리는 인간을 먼저 봐야 하는 것이다.
기계보다 따뜻한 눈빛, 데이터보다 깊은 공감, 그게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다움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는 누구나 나만의 AI 비서를 두고 살아가는 세상이 온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는 AI를 잘 쓰는 능력이 곧 지능이 되는 시대라고 설명을 해주시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쳇지피티를 잘 쓰는 법도 가르쳐 주셨다.
마치 내가 대 기업의 회장님이 된 것처럼, AI에게 뚜렷한 역할을 주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단순히 묻고 답하는 수준은 AI 활용법 중 가장 초보적인 방식이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괜히 찔린다.
질문을 많이 하면 혼나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라서, 아직도 제대로 물어보는 것이 어색하고 서툴다.
더 더군다나 비서를 두고 살아보지를 않아서 AI 위에 군림하면서 역할까지 부여를 한다는 것이, 아직은 딴 세상 이야기 같다.
하지만, 늘 기억하고 살아온 진실이 있다.
답을 기다리는 사람은 늘 누군가에게 의존하지만, 스스로 부딪혀보는 사람은 절대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늘 잊지 않고 살아왔기에, 이번에도 변함없이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낯설고 어려워도, 다시 배우고 익혀본다.
배우는 사람은 언제나 강하다.
그리고 서로에게 배우며 성장하는 사회는, 단단하고 오래가는 것이다.
이게 바로 장동선 박사님이 말씀 하시는 ‘사회적 뇌’인 것 같다.
2년 전, ‘제주 디지털 배움터‘에서 함께 블로그 공부를 시작했던 동기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가족들 만나는 것보다 더 설레고 기뻤다.
내 욕심 같으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얼굴을 마주하면서 같이 식사도 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다.
하지만 대부분이 가장 바쁜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40대, 50대 초반이 많다 보니 그마저도 쉽지 않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 나이 땐 정신없이 일만 하느라고, 내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의 이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느껴진다.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가장 잘 한 일중의 하나가, 바로 ‘디지털 배움터’를 만난 일이었다.
‘라이팅시온’이라는 귀한 스승님을 만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통하고 글이 통하는 따뜻한 블로그 동기들을 만났다.
게다가 이렇게 좋은 강의가 있을 때면, 늘 잊지 않고 소중한 자리에 함께 초대해 주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는 건, 살아가는 데 있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내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아마도 ‘디지털 배움터’의 열혈 홍보대사를 자처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이 벅찬 감동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박사님!
제주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