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책방 이야기
《 100세 할머니 약국 》, 며칠 전 윌마 출판사에서 서평 제안을 받고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책이 도착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사실 메일에서 잠깐 스쳐본 책 표지가 어찌나 내 마음을 사로잡던지, 그때부터 이미 마음 한구석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토록 고운 표지라면 내용은 또 얼마나 따뜻할까라는 기대감까지 덩달아 피어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책이 도착했다.
포장지를 조심스레 뜯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가에 스르르 미소가 번졌다.
상상 속에 그리던 그대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아름답고 온화한 표지가 내 마음을 다정하게 두드렸다.
책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표지 하나만으로도 이미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
“어머, 이 할머니 뭐야?!“
하얗고 포근한 머리칼에 작은 안경을 쓴 100세 할머니가, 약국에 앉아 노란 꽃이 가득한 찻잔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이 장면이 어찌나 따뜻하고 포근한지, 마치 약 대신 따듯함과 위로를 처방해 줄 것 같은 생각이 저절로 든 것이다.
그리고 약국이라는 공간도 참 재미있다.
우리가 아는 차갑고 무거운 약국이 아니라, 여긴 그야말로 마음의 처방전을 내주는 작은 안식처 같다.
사실, 나는 사진 찍는 걸 오래전부터 꺼려왔다.
사진만 찍으면 화면 속에 낯선 얼굴이 등장하고, 때론 괴물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래서 누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본능적으로 얼굴을 돌려버렸다.
그런데, 《 100세 할머니 약국 》, 이 표지를 보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나도 저런 얼굴로 찍힐 수만 있다면, 백 장이라고 찍고 싶다..“
저 표정, 저 온기, 저 따뜻함…
나이 든다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나 곱고 부드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걸, 이 한 장의 책 표지가 알려준다.
이 책의 표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을 기분 좋게 해본다.
히루마 에이코 작가님은 1923년 도쿄에서 태어나, 백 세가 넘도록 약국 문을 열어두신 분이다.
한때는 ‘세계 최고령 현역 약사‘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님의 삶은 단순히 오래 산 이야기만은 아니다.
마지막까지 환자들의 눈을 바라보고 마음을 돌보며, 함께 그리고 다정하게를 늘 외치면서 버텨낸 삶의 기록인 것이다.
흰 가운을 입고 매일 같은 자리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100세의 약사 할머니는, 언제나 약보다 먼저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오늘 기운이 없어 보이시네요.”
세월의 무게가 깃든 다정한 한마디와 따스한 눈빛으로, 작가님은 아픈 몸뿐 아니라 지친 마음까지 돌보신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살아온 한 사람의 기록이다.
거창한 성공담도 화려한 교훈도 없지만, 오직 “함께, 그리고 다정하게.”라는 이 두 가치로만 살아오신 작가님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조용한 응원과 위로를 건넨다.
목차:
1장 : 호기심이라는 약
2장 : 꾸준함이라는 약
3장 : 다정함이라는 약
4장 : 시간이라는 약
호기심, 꾸준함, 다정함, 시간.
이 네 가지는 병원 어디서도 구할 수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있는 약이다.
그리고 이 약은 나이 들어갈수록 그 진가가 드러나는 것 같다.
히루마 에이코 작가님은 1923년, 도쿄의 번화가 한 모퉁이에 약국의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할머니는 75년이라는 긴 세월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무더위가 찾아오고,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서 어김없이 이곳에 계셨다.
100세 할머니의 약국에 들러 따뜻한 차 한 잔과 이 네 가지 약을 처방받는다면, 이 세상 모든 병이 저절로 다 나을 것만 같다.
오늘도 마음이 힘든 모든 이들에게, 여기에 있는 네 가지 만병통치약을 건네보자.
한 알씩 천천히, 그리고 꼭꼭 씹어 삼키다 보면, 삶이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없습니다.
오늘은 당연히 어제와는 다른 일들이
벌어지지요.
이를 발견하느냐, 못 하느냐는
나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 100세 할머니 약국 18p )
호기심은 마음의 근육을 깨우는 첫 번째 약이다.
“배움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라는 할머니의 말처럼, 세상에 대해 궁금해하는 마음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자라고 있는 것이다.
칠십이 조금 넘은 나이에도 나는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다.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가보고 싶은 데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차고 넘친다.
그래서 늘 남편한테 혼이 난다.
그 나이에 뭐가 그리도 궁금하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데도 많으냐고…
아직도 나는, 새로운 음식이 나왔다 하면, “이건 대체 무슨 맛일까? 궁금해서라도 꼭 먹어보고 싶다.
요즘 핫플이 뜨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줄 서는지 한 번쯤 가보고 싶다.
대전 성심당에 가서 맛있는 빵도 먹고 싶고, 얼마 전 여의도에서 열린 ‘돈키호테’ 팝업 스토어도 구경하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제주도에 있다는 것…
제주도라는 곳이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육지로 나가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면 내 호기심은 활활 타오르는데, 현실은 발목이 꽁꽁 묶여버린다.
아마도 혼자였으면 이 또한 상관없었을 것이다.
집에만 있으려는 신랑 덕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기심이 남아있다는 것이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처방전인 것 같다.
“백 살이어도 요즘 사람이고 싶습니다.“라는 작가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한다.
나 역시 칠십 대에 접어들었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요즘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매년 11월이면 어김없이 쏟아져 나오는 트렌드 책들을 사서 꼼꼼히 읽고,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또 새로운 IT 공부에도 열을 올리며 세상과 발맞추려 노력한다.
지레 스스로를 늙은이로 만들고 싶지 않다.
여전히 배우고 싶고, 알고 싶고, 변화하고 싶다.
나이만 칠십 대이지, 내 호기심과 열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습관이 많아지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몸이 가벼워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여백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 100세 할머니 약국 55p )
히루마 에이코 작가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습관은 처음엔 조금 귀찮고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몸에 배고 나면 안 하면 오히려 더 불편해진다고…
마치 아침마다 양치질을 하고 단정히 옷매무새를 고치는 것처럼.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새로운 습관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시도해 보란다.
건강과 식사에 집중하는 삶도 훌륭한 시작이라고.
특히 100세 할머니가 꼽은 가장 중요한 습관은 세 가지다.
1: 일을 하는 습관
2: 건강을 위한 습관
3: 몸을 단정히 하는 습관
바로 이 세 가지가 작가님의 활기찬 100세 삶의 비결이다.
100세 할머니의 습관 중 하나가 참 흥미롭다.
아침에는 효소를 챙겨 먹고, 밤에는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으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즐기신단다.
그 연세에도 맥주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부럽던지~~
한때 나도 자칭 ‘맥주 덕후’였다.
하루의 피로를 날려버리듯,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키는 그 시간이야말로 내 삶의 작은 축복이자 보상이었다.
그런데 칠십을 조금 넘긴 지금, 노쇠라는 불청객이 불쑥 찾아오는 바람에 그 좋아하던 맥주를 거의 끊다시피 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재미가 하나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100세 할머니 작가님의 조언처럼, 새로운 습관 속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아야겠다.
요즘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 건강에 대한 공부도 부지런히 하고 있으니까, 어쩌면 나도 100세가 되기 전에, 나에 대한 보상으로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을 들이킬 수 있는 그런 멋진 날이 오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괜히 입가에 웃음이 돈다.
‘감사합니다’는 최고의 약입니다.
행복해서 감사한 게 아니라,
감사가 행복을 불러오지요.
(100세 할머니 약국 109p )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담는 횟수는 혼자서는 할 수 없던 일이 이루어진 횟수이자, 곧 행복의 횟수라고.
하루 세 끼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를 입에 올리다 보면, 신기하게도 감사할 일이 참 많이도 생긴단다.
그리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감사란,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최고의 보약인 셈이다.
돌아보니 참 다행이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어려서부터 잘 웃고, 감사하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아왔다.
어쩌면 그 덕분에 여기까지 잘 걸어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이 한 마디가 내 삶의 보약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밟아온 시간은
사람을 치유해 주고, 우리를
생각지도 못한 것으로 데려가기도 합니다.
시간은 그 무엇보다 훌륭한 약입니다.
( 100세 할머니 약국 115p )
시간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고, 한층 유연하게 하며, 깊은 내면을 품은 인연을 만들어낸다는 멋진 말씀을 우리한테 들려주신다.
어쩌면,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묵직한 ‘약’일지도 모른다.
난관에 부딪히기도 하고, 후회와 괴로움에 몸부림도 쳐보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치유가 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참 오랫동안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숨 막히듯 버거운 날들이 이어질 때마다, 나는 이 말을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달랬다.
어찌도 그리 힘든 세월을 살아왔는지,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모든 시간이 아득하고, 때로는 “꼭 그렇게까지 했었어만 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참으로 신기한 건, 그토록 긴 터널 같던 시간조차 결국은 흘러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 어떤 고통도, 그 어떤 슬픔도 내 곁에 영원히 머물진 않았다.
그 지난한 세월들이 나를 조금씩 치유했다.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지듯, 지친 마음을 토닥이며 나는 어느새 오늘의 나로 다듬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고요하고 평온한 노후를 누리는 사람이 되었다.
시간.
이것이야말로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묵직한 보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100세 할머니 약국 》을 읽고 나니, 마음속 깊은 곳에 하나의 확신이 더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내 삶에도 한 가지 전문성이 있었어야 했다.“
나는 그때그때의 형편에 맞춰 살아오느라, 이렇다 할 전문직 하나 없이 여기까지 달려왔다.
젊은 시절에는 오직, ”65세에 은퇴하면 폼 나게 살아보자“는 열망 하나로 죽기 살기로 일했다.
그런데 막상 은퇴를 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살아오며 남의 것을 욕심내지도 않았고, 남들이 부럽다며 말한 적도 없었다.
그저 이게 내 운명이려니, 내 팔자려니 하면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은퇴 후, 불현듯 부러운 게 생겼다.
부모 잘 만나 제때 대학 다니고, 제대로 된 직장에서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들이,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그 진가를 발휘하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가방끈이 짧다 보니 어디 가서 명함 한 장 내밀 수도 없고, 돌아보면, 그저 일만 하며 살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9월부터 나도 한국통신대학교 일학년에 정식으로 입학한다.
제대로 졸업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하늘이 도와 졸업을 한다면, 그때는 아마 거의 팔십을 향해서 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좋다.
나는 지금, 오래된 열망 하나를 조금씩 이루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가끔 당치 않은 생각도 해본다.
“나도 100세 할머니 약방의 작가님처럼, 팔십, 구십이 되어서도 조금이라도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전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상상인데, 이제는 이런 꿈마저 설레게 한다.
돌아보면, 나는 100세 시대가 이렇게 성큼 다가올 줄 미처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것을.
자기만의 일을 품고 사는 삶,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빛나게 하고, 하루하루를 살아 숨 쉬게 만든다.
돈도 더 벌 수 있으면 물론 좋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일하면서 생기는 활기다.
100세에도 약국을 열고 사람들을 맞이한 할머니가, 그래서 그렇게 건강하고 온화하셨나 보다.
나도 오늘, 그분처럼 나만의 처방전을 품고 살아가기로 결심해 본다.
참 따뜻한 책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마음을 보듬어 줄
그런 ‘처방’이 필요 한지도 모른다.
이 책은 아픈 마음을 억지로 고치기보다
다정한 손길로 가만히 안아주듯
위로를 건넨다.
윌마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값진 책을 흔쾌히 제공해 주신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