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책방 #11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왜 나는 "아내를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기를 "이라고 읽었을까?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기를 …
한 점만 부끄럽기를…
완전히 전혀 다른 문구인데도 윤동주 시인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이 시가 그냥 저절로 떠올려진다.
< 아내를 우러러 딱 한 점만 부끄럽기를 > 정말 제목을 잘 지었다. 멋있는 책 제목처럼 책의 내용 역시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식의 사랑 에세이란다. 사랑 에세이는 많이 들어봤지만 인문학 형식의 사랑 에세이라니까 이상하게 더 설레는 것 같다.
조이엘 작가님의 소개가 너무 재미있다. 서울대에 입학해 하루 종일 먹고-놀고-자면서 젊음을 낭비하다가 “인생의 책”을 만난 후 독서인으로 변신했단다. 그렇게 해서 책과 함께 30년이라는 세월을 동고동락을 하다 보니 세 가지 깨달음이 왔다고 조이엘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그 세 가지 깨달음이란 첫째, 노안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온다. 둘째, 고전보다 유명한 책이 꽤 많다. 셋째, 사람의 운명은 아내에게 달려있다.
정말로 대단하고 중요한 것을 빨리 깨달으신 것 같다. 작가님의 깨달음 중에서 나 역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같은 깨달음을 얻었는데 세 번째에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나의 운명은 바로 우리 집 양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차례
프롤로그
사랑이란
결혼이란
에필로그
이 책의 목차이다. 이렇게 깔끔하고 심플한 목차는 처음 맞이하는 것 같다.
참 신선하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사랑을 한단다. 나 자신을, 부모를, 자녀를, 친구를, 반려동물을. 그리고 이 모든 사랑을 합친 분량과 두께로 연인을 사랑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다고 조이엘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참 어렵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힘든데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다가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도 보태고 거기에다 친구 사랑, 반려동물 사랑 이 모든 것을 합친 분량으로 연인을 사랑하란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것 같다.
조이엘 작가님이 결혼을 앞두고 아내 되실 분한테 하신 말씀이 기가 막히다.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이 시월드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들었는데 내 여인에게 그런 스트레스는 평생 안 줄 거라면서 시댁 식구를 미리 볼 필요도 없으니 우리 식구는 그냥 결혼식장에서 보자고 했단다. 그래도 현명한 아내분 덕분에 다행히 상견례는 무사히 치르셨단다.
인문학을 전공하신 분을 남편으로 맞이한 부인은 평생 이런 달콤한 말을 듣고 살 수 있으니 그 인생이 얼마나 달달할까…
괜히 슬며시 죄 없는 남편을 살짝 째려본다.
조이엘 작가님의 재미있는 표현이 또 등장한다. 자존감 높은 사람을 연인으로 그것도 배우자로 맞으면 행복할 확률이 강남 아파트 시세 그래프와 같단다.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강남 아파트 시세 그래프를 본 적이 없는 나는 이 확률이 주는 의미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행복할 때 더 크게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이 불행할 때도 덜 불행하다는 작가님의 말씀에는 동감이다. 이렇게 자존감이 높은 상대방과 함께 매일 서로를 바라보며 감사하고 고마움을 표현한다면 당연히 부부는 닮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 닮고 싶은 데도 오래 같이 살다 보니 저절로 닮아가는 그런 부작용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마치 대한민국의 모든 주부들의 마음을 겨냥한 듯 조이엘 작가님은 또 말씀하신다. 남편은 친구보다는 아내를 선택하고 세상 누구보다도 아내 말을 들어야 한단다. 강원국 작가님의 아내 바라기랑 어딘지 많이 닮아있다. 조이엘 작가님 말씀에 의하면 밖에서도 강하고 아내한테도 강한 남편은 양아치란다.
왜 갑자기 속이 후련해질까?
밖에서는 온유하고 자신에겐 엄하지만 아내에겐 세상 약한 남편 그가 바로 진짜 사나이란다.
우리 삼식이 아저씨 듣고 계시는지…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윤동주 시인이 떠올려진 것이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조이엘 작가님 역시 윤동주 시인을 염두에 두고 쓰신 것 같다. 작가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윤동주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기원했지만 하늘은 됐고 나는 아내를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 싶단다. 아직은 많이 힘든 것 같아서 그래서 소원하신단다. 아내를 우러러 한 달에 딱 한 번만 부끄럽기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남편한테 이런 사랑을 받을 수가 있는지 작가님 아내분한테 여쭤보고 싶다.
그러면서 작가님은 한 가지 더 소원이 있으시단다. 다음 세상에서도 아내를 만나고 그때도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란다. 인문학 사랑 에세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냥 구구절절 달콤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다음 세상에까지 이어지는 것, 이런 것이 바로 인문학적 사랑인가 보다.
우리 부부의 사랑은 과연 어떤 식의 사랑이었을까?
새삼 부끄러워지려고 한다.
딱 한 점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온통 부끄러움투성이다. 하지만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구가 나에게 용기를 준다.
나보다 일찍 죽어요.
조금만 일찍.
당신이 집으로 오는 길을
혼자 와야 하지 않도록.
- 라이너 쿤체 -
일 년 365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 집 양반을 위해서 내가 하는 기도가 있다. 우리 집 양반을 무사히 먼저 보내고 그리고 내가 가게 해달라고, 하루라도 괜찮고 심지어는 같이 가도 괜찮다고 기도한다.
내가 없으면 그야말로 자기 전화번호도 못 외우는 사람이다. 완벽주의자에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로 사람 기피증까지 생긴 사람을 혼자 두고는 도저히 갈 수가 없다.
조이엘 작가님처럼 아내에 대한 무슨 끔찍한 사랑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허구한 날 싸우면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해왔다.
이 책을 덮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의 이 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말로 놀랍게도 남편에 대한 사랑인가 보다. 작가님처럼 그런 뜨거운 사랑은 아니었어도 우리 집 삼식이 아저씨한테 하루 세끼 지극정성으로 밥을 차리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런 기도를 해왔다는 것만으로도 나 역시 남편을 사랑했었나 보다.
이 책을 읽을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하는 순간이다. 징글징글한 인생이라고 여겨져 왔던 것이 갑자기 사랑으로 충만해져 온다. 각자의 사는 방식이 다 다르듯이 사랑하는 방법도 다 다를 것이다.
그저 서로 사랑하며 살자!
조이엘 작가님의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엄청난 사랑과 동시에 아내 자랑이 어마어마한 책이다.
작가님은 인생 최고의 행운 세 가지를 이미 받으셨는데
- 내 아내를 만난 것
- 내 아내와 결혼한 것
- 내 아내의 남편으로 사는 것
이 세 가지란다.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 바로 작가님 같은 이런 사랑꾼 남편을 만나는 것일까?
평생 남편한테서 단 한 번도 사랑해라는 말을 못 들어본 나는 마치 딴 세상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내 남편이 최고라고 억지로 자기 위안을 삼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