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반드시 붙잡아야 할 5가지! 도올 김용옥

업글할매 행복한 노후

by 업글할매

오랫만에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유튜브 강의를 듣게 됐다.


우연히 눌렀을 뿐인데, 영상 앞에서 한참을 꼼짝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젊을 때 들었던 그 목소리인데도, 귀에 닿는 결은 전혀 달랐다.


그때는 말이 세다고 느꼈고, 너무 직설적이라 마음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솔직히 말해, 가방 끈이 짧았던 나에게는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강의였다.


그런데 칠십을 넘기고 다시 들으니, 그 강한 말들 사이로 전혀 다른 것이 보인다.


호통처럼 들리던 문장 아래에,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연민이 깔려 있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주저앉지 말고, 스스로 다시 일어서라는 단단한 애정이 배어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또렷이 알아차린다.


특히 노년에 대한 도올의 가르침은, 마음이 피해 갈 틈조차 주지 않는다.


외면하고 싶었던 질문을 정면으로 들이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렵기보다는 “그래, 이제는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할 나이가 되었구나”하는 담담한 용기마저 생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조급해진다.


몸의 활력은 예전같지 않고, 기억은 문턱에서 자주 멈칫거리며, 생각은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럴수록 마음은 누군가를 붙잡고 싶어진다.


자식, 가족, 익숙했던 관계들…


그런데 도올은 말한다.


노후에는 그 무엇보다도 내 스스로가 나의 의지처가 되어야 한다고.


흔들리는 마음을 맡길 곳은, 타인의 마음이 아니라 내 삶 안에 세워둔 기둥이어야 한다는 중요한 가르침을 주신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삶의 기둥 5가지!


조용히 하나씩 꺼내본다.


chatgpt&제미나이에서 만든 이미지
1: 준비된 돌봄의 구조를
마련한다.


“노후의 안전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 “


이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는다.


우리는 오래도록 자식이 돌봐주는 모습을 가장 아름다운 효도의 장면처럼 여겨왔다.


아프면 자식이 오고, 힘들면 자식이 책임지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김용옥 선생님은 그 익숙한 생각을 조용히 뒤집는다.


자식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방치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자비라고 말한다.


내가 나를 돌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자식은 죄책감이 아니라 존중의 마음으로 부모를 바라보게 된단다.


그 말이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들렸다.


의존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차가운 독립이 아니라 서로를 지켜주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식의 효심에만 기대지 않고, 요양, 의료, 복지 시스템을 미리 알아보고 준비해야 한다.


이 준비는 쓸쓸함이 아니다.


오히려 자존을 지키는 선택이다.


누군가에게 미안해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지탱할 장치를 하나씩 마련하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름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지금 나에게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는 바로 이 ‘돌봄’의 문제인 것 같다.


예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요양원 이야기, 복지 센터, 돌봄 서비스, 웰다잉 강의 같은 것들이 요즘은 화면에 뜨기만 하면 괜히 자세를 고쳐 앉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관심이 생겼다는 건, 그만큼 가까이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내가 정말 드러눕게 되는 상황이 오면 절대로 자식에게 기대지 않겠다고 이미 큰소리는 있는 대로 다 쳐 놓았다.


하지만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오죽하면 드러 눕기전에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를 신청하겠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결국 모든 선택은 몸이 말을 들어줄 때만 허락된다.


지금은 비교적 평온하고 행복한 노후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에 요즘 나는 그저 넘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넘어지는 순간, 그 이후의 길은 너무도 선명하게 그려진다.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만 하는 삶, 바로 그 지점이 요즘 나를 가장 심란하게 만든다.


지레 걱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칠십을 넘기고, 벌써 일흔 셋이라는 나이에 들어서고 보니, ‘멀지 않은 미래의 돌봄’을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다.


현실의 돌봄 시설을 떠올리면 마음이 선뜻 놓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루하루를 조심히 살아내며 기도하는 일뿐이다.


”죽는 날까지 절대로 남한테 민폐끼치지 않고 살다가, 마지막 순간 조용하고 편히 떠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이 기도가 요즘 내 마음의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2: 혼자 있는 능력을
기른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은 마음의 결핍이고, 고독은 스스로 선택한 고요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은 말한다.


사람은 혼자 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관계에서도 자유로워진다고.


혼자 산책하고, 혼자 차를 마시고,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이 단순한 일들이 가능해지는 순간, 인간관계는 놀랄만큼 가벼워진다.


외로움은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싶은 마음에서 오지만, 고독은 나 자신과 함께 머무를 줄 아는 능력에서 온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로움의 형벌이 아니라, 평생 타인을 위해 써왔던 마음을 이제야 나에게 돌려주는 소중한 휴식이다.


돌이켜보면, 무심한 남편 곁에서 오랜 세월 외로움을 참고 견디며 살아왔다.


늘 누군가와 함께 있었지만 마음만은 혼자였던 시간들, 그 시간을 지나, 칠십을 넘어서야 비로소 ‘홀로서기’라는 자리에 조심스럽게 발을 올려놓게 되었다.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이 그 무엇보다 귀하다.


물론 아직도 사사건건 참견하는 우리 집 양반이 늘 껌딱지처럼 붙어있어서,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다.


남편이 낮잠에 빠진 그 짧은 시간, 집 안에 고요가 내려앉는 순간이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다.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한 덕분에 ‘혼자 있는 능력’이 조금씩 자라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혼자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다.

불안하지도 않다.

괜히 사람을 불러 공허함을 채우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어쩌다 주어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귀해서 그 시간을 헛되이 쓰고 싶지 않다.


차 한 잔에도 마음을 담고, 짧은 침묵에도 의미를 얹는다.


소박한 바람이 하나 있다면, 우리 집 양반에게 마음 맞는 친구가 생겨 종종 외출을 해주거나, 아니면 낮잠 시간이 아침저녁으로 조금 더 늘어나, 나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만 더 길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3: 돈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노년의 돈은 축적의 상징이 아니라, 안락함과 품위를 지키는 도구다. 돈이 불안을 줄여주는 도구가 될 때는 약이 되지만, 집착과 통제의 수단이 될 때는 고통이 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괜히 허리를 곧추세우게 된다.


맞다. 정말 그렇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면서도 병원비가 아까워 참고 있다거나,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이 나이에 무슨 사치야~~”하며 스스로를 타이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어쩌면 그 사람 속에 나도 살짝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올은 묻는다.

과연 그런 절약이 정말 미덕이냐고~~


무조건 아껴서 쌓아두는 게 능사가 아니라, 이제는 잘 쓰는 법을 배워야 할 때라고 말한다.


노년의 돈은, 즐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편안해지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쓰기 시작하면 마음이 먼저 달라진다.


아끼느라 움츠러들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진다.


내가 나를 스스로 챙기고 있다는 이 단순한 감각이, 나를 꽤 든든하게 만드는 것이다.


도올 선생님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노년의 돈에 대한 집착은 사실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 말이 어쩐지 가슴을 찌르듯 시리게 들어온다.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더 남겨주겠다고, 정작 내 아픔과 배고픔을 참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집착일 뿐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속으로 “옳소!”하고 박수를 칠 뻔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中道)처럼 너무 낭비하지도, 너무 인색하지도 않게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데 돈을 쓰라는 가르침.


이보다 노년에 어울리는 조언이 어디 또 있을까.


노년의 돈은 쌓아두는 숫자가 아니라, 오늘의 나를 얼마나 편안하게 해주는지로 가치를 매겨야 한다.


이제는 정말, 그렇게 살아도 될 나이다.



4: 나만의 작은 즐거움을
가진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이제는 뭘해도 늦었다.”는 말을 너무도 쉽게 꺼낸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엔 기운이 없다는 이유를 붙인다.


그 말 속에는 체력보다 기대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먼저 숨어 있다.


하지만 도올 김용옥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한다.


사람이 가장 빨리 늙는 순간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 때라고.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멈추는 순간, 삶은 순식간에 피로해진다.


그래서 노년일수록 큰 목표보다 작은 즐거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노년의 즐거움은 젊을 때하고는 다르다.


경쟁도 필요없고, 잘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저 마음이 편안해지고, 시간이 부드럽게 흐르는 경험이면 충분한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천천히 걷는 산책, 손으로 흙을 만지며 작은 화단을 가꾸는 일,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따뜻한 차를 마시는 시간.


이처럼 반복되는 작은 리듬이 마음을 붙잡아 준다.


노년의 즐거움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하루 이틀 반짝하다 끝나는 취미가 아니라,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아도 조금씩 이어갈 수 있는 것.


그 지속성이 노년의 삶을 지탱한다.


오늘 하루를 견디게 해주고, 내일을 너무 두렵지 않게 만드는, 그런 노년의 즐거움은 삶을 크게 바꾸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하루를 조금 덜 무겁게 만들어주면 충분하다.



5: 관계의 거리와 규칙을
지킨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은 노년의 삶에서 가장 섬세하게 다뤄야 할 문제로 ‘관계의 거리‘를 이야기한다.


특히 가장 가까운 관계인 부부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


나이가 들수록 부부는 하루 대부분을 함께 보낸다.


젊을 때는 각자의 일터와 역할이 자연스럽게 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다시 만나는 시간이 반가웠다.


하지만 노년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일상이 매일 반복된다.


그러다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소한 일들로 자주 부딪히게 된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이것은 사랑이 줄어서가 아니라, 거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불교에서는 모든 관계에 알맞은 간격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너무 멀면 차가워지고,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힌다.


노년의 부부 관계는 이 균형을 다시 배우는 시기이다.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오히려 선이 필요하다.


부부도 각자의 삶이 있고, 자식 역시 마찬가지다.


함께 산다고 해서 모든 생각과 시간을 공유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조금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용기, 서로의 침묵을 존중해 주는 여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을 남겨두는 배려.


이 작은 거리들이 사랑을 마르게 하지 않고 오래 숨 쉬게 만든다.


관계의 규칙은 차가워지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함께 오래 가기 위한 약속이다.


지켜야 할 선이 있을 때, 관계는 오히려 편안해진다.




이렇게 다섯 가지를 따라가다 보니,
노년이란,
나이를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삶의 사용법을
다시 배우는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돈에 끌려다니지 않고,
작은 즐거움으로 하루를 살찌우며,
가까운 관계일수록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것.

이게 바로 김용옥 선생님이 말한
노년에 붙잡아야 할
진짜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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