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행복한 노후
칠십대라는 연륜의 문턱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삶의 속도가 눈에 들어온다.
앞서지 않아도 되고,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느려진 걸음이 뒤처짐이 아니라, 비로소 나에게 맞는 리듬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러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가까워야만 정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멀리 있다고 해서 반드시 외로움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조금씩 가르쳐준다.
젊었을 때는 관계 속에서 나를 증명하려 애썼다.
손을 놓으면 멀어질까 두려워 기를 쓰고 붙잡았고, 떨어지면 실패한 것처럼 마음을 다쳤다.
그러나 세월은 그 어떤 관계에도 숨 쉴 틈이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쇼펜하우어는 노후의 행복을 “혼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이라고 말한다.
젊은 시절의 나는 이 문장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었다.
마치 세상과 거리를 두고 혼자 버티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됐다.
이 말은 고립이 아니라 자유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 혼자 있어도 자신을 잃지 않는 상태가 노년의 가장 깊은 평온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가까워야만 따뜻한 것도 아니고, 멀다고 해서 차가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한동안 ‘홀로서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 말에는 늘 자립과 독립, 그리고 자기 책임이라는 단단한 단어들이 따라붙는다.
나 역시 이 멋진 말에 마음이 움직여 홀로서기를 연습하며 살아온 시간이 있다.
누군가의 어깨를 빌리기보다 스스로를 지탱하는 법을 먼저 배웠고, 무너지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으며 흘려보낸 계절이 이제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홀로서기는 늘 당당하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버거운 선택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조금씩 나에게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흔들리지 않는 삶‘과 우리가 자주 말해온 ’홀로서기‘는 결국 같은 자리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사람을 밀어내라는 말이 아니라, 삶의 중심을 바깥이 아닌 자기 안에 세우라는 조용한 권유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안다.
홀로서기란 혼자가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어디에 있든 나를 잃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는 것을.
그 다짐이 쌓여,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 하나를 마음 안에 남겨준다는 것을.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말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고슴도치들은 서로에게 다가간다.
온기를 나누고 싶어서, 외로움을 피하고 싶어서 몸을 붙인다.
그러나 너무 가까워지는 순간, 날카오룬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는다.
어쩌다 다시 거리를 두면, 이번에는 추위가 더 깊에 파고든다.
따뜻함과 아픔 사이에서 망설이며, 다가갔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하던 고슴도치들은, 마침내 서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체온을 나눌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찾아낸다.
이 이야기는, 우리 인간의 관계와 참 많이 닮았다고 느끼게 된다.
외로움이 두려워 다가가면 상처를 받고, 그 상처가 아파 물러나면 고독이 더 짙어진다.
가까이 가면 다칠까 겁이 나고, 멀어지면 혼자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시린다.
젊은 시절에는 이 거리의 감각을 알지 못했다.
가까울 수록 사랑이라고 믿었고, 거리를 두는 것은 사랑의 실패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말없이 가르쳐준다.
관계를 오래 지속하게 하는 것은, 밀착이 아니라 여백이라는 것을.
너무 가까워 서로를 찌르지 않고, 너무 멀어 얼어붙지 않는 거리 안에서 비로소 관계는 숨을 쉬며 이어진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된다.
그 적당한 거리를 알아가는 일, 아마도 그것이 나이가 들며 배우는 가장 조용하고도 깊은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칠십을 넘어서야 나는 비로소 홀로서기에 어느정도의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루를 혼자 보내는 일이 더 이상 불안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지를 궁리한다.
그러면서 혼자의 시간이 결핍이 아니라 선택이 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식탁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어도 허전함보다는 편안함이 먼저 찾아온다.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분주해지지 않고,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아도 하루가 허물어지지 않는다.
이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만들어진 결과라고 느낀다.
물론 지금도 가끔은 멘붕이 찾아온다.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고, 괜히 불안한 기운이 하루를 덮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여전히 나는, 혼자서는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러나 예전과 분명히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그 흔들림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외로움이 찾아오면 곧장 누군가를 떠올리고, 누군가를 찾는다.
지금은 외로움이 와도 잠시 곁에 앉혀두는 법을 안다.
이 감정이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슴도치가 가시를 가진 채 살아가듯, 나 역시 외로움이라는 가시를 가진 존재임을 받아들인다.
그 가시를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 가시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쇼펜하우어는 노후를 고립의 시간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 안에 충분한 것을 차곡차곡 쌓아온 사람에게 노년은 가장 자유로운 시기라고 말한다.
관계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인정으로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혼자 있어도 자신을 잃지 않는 상태, 그 고요한 중심을 지닌 삶이 곧 혼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이다.
노후의 행복은 만나는 사람의 수에 달려 있지 않다.
얼마나 많은 관계를 유지하느냐보다, 자기 자신과 얼마나 잘 지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 흔들리는 날이 있어도 괜찮다.
다시 돌아올 자리가 마음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 흔들림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