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
얼마 전에 칠십이라는 나이에 아주 멋진 작가가 되신 어느 작가님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동안 내가 노년에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들을 원 없이 하면서 살아가시는 작가님의 모습을 보면서 대리 만족도 하고 한없이 부러워하기 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에필로그를 장식했던 어떤 문장에서 잠시 멈추고 나에 대해서 그리고 작가님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이라는 것을 해봤다.
작가님의 남편 되시는 분께서는 아침 늦게 일어나는 작가님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시면 조용히 혼자 동네 한 바퀴를 돌고는 또 조용히 들어와서 혼자 토스트를 해 드신단다. 이렇게 착한 남편도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더 놀라웠던 것은 작가님의 말씀이었다. 자신의 아침 배를 채우겠노라고 마누라를 일찍 깨우는 것은 늙은 아내에 대한 도리가 아니며 그 정도는 상식으로 알아두어야 졸혼에 이르지 않는다고 하신다.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나랑 별로 나이 차이가 없는 분한테서 이런 소리를 들으니까 갑자기 내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이고 늙어 보이고 고지식한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작가님이 나이 칠십일 때 쓰신 작품이다. 아마 남편 되시는 분은 당연히 더 나이를 드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당당한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작가님의 현대판 정신에 감탄조차 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현타가 온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 또한 드는 것이다. 그 작가님처럼 남편 아침 안 챙겨줘도 그렇게 당당하게 사시는 분도 있고, 남편분 또한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산다는 것이다. 우리 집 삼식이 아저씨는 늙은 마누라가 하루 세끼 해대는 것을 너무도 지극 당연하게 생각하고 전혀 고마워하지를 않는다.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괘씸하고 얄미웠는지 모른다.
남자가 나이 칠십이 넘어서 마누라가 하루 세끼 밥을 차려주면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하루 세끼 밥을 차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차려주는 마누라에 대한 고마움 정도는 표시하고 살았으면 하는데 워낙 고지식한 양반이라 그런 소리하면 큰 일 나는 줄 안다.
요새는 세상이 바뀌어서 젊은 남편들은 집에서 요리하고 청소하고 심지어는 애까지 보면서 못하는 것이 없다. 요즘 남편의 모습이다. 오죽하면 2024 트렌드코리아에 “요즘남편, 없던 남편”이라는 키워드로 까지 등장했다. 난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니어서 이런 젊은 사람들의 변화를 아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 중의 하나이며 동시에 젊은 사람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칠십넘은 사람들의 세상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착한 남편을 두신 아내라면 나 같으면 내 몸이 움직이는 한은 내 손으로 밥을 차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라도 아주 못 된 남편이라면 미워서 그럴 수도 있다지만 살아보니 못 된 남편들은 너무도 당당하게 아내한테 밥을 잘 얻어먹는다.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나 역시 일주일만 지나면 칠십에서 한 살 더 먹는 나이가 되고 우리 집 양반은 이미 팔십을 넘어섰다. 그러다 보니 이제 드는 생각은 이 세상 떠날 때까지 앞으로 남은 인생은 그나마 사지 육신 멀쩡할 때 하나라도 더 맛있는 것 만들어서 우리 삼식이 아저씨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더 해 주고 싶다.
물론 나도 사람이고 노인인지라 하루 세끼 밥 해대는 것이 어떨 때는 너무 지겹고 피곤할 때도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철저히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 가지씩 하기 싫다고 내려놓다 보면 나중에 어떻게 되려나 하는 걱정도 앞서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앞서 가시는 작가님보다 많이 고지식한 것인가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의 버킷 리스트 1번은 작년부터 계속해서 “꼰대가 되지 말자”이다. 나 스스로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을 한다. 하지만 꼰대가 되지 말자라는 생각과 늙은 신랑 내 손으로 따뜻한 밥 챙겨 먹이려는 생각하고는 다르지 않을까?
그 대신 며늘애한테는 완전 신세대 시어머니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 집에 놀러 오면 공주마마 대접을 해 준다. 가만히 앉혀놓고 우리 집 삼식이 아저씨한테 하듯이 맛있는 것 만들어서 먹이고, 며늘애 좋아하는 와인도 준비해 놓고 근사한 안주까지 마련해 준다. 요새는 하이볼이라는 것이 먹고 싶다고 하길래 업글할매답게 검색을 해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하이볼 만들기에 좋다는 잭 다니엘이라는 위스키도 사놓고 하이볼 잔도 사놓고 레몬이 꼭 필요하니까 레몬까지 사놓았다. 언제든지 놀러올 때 원없이 먹고 가게 하려고 만반의 준비는 다 갖춰놓았는데 문제는 영 오지를 않는다. 그래도 요즘 사람들은 다 바쁘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 소리 안한다. 이만하면 신식 시어머니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강아지 세 마리에 고양이 세 마리, 아직은 철부지인 딸, 그리고 가장 어린아이 같은 남편 키우느라고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잘해주려고 한다. 신랑 흉볼 일이 있으면 무조건 나한테 오는 것만 봐도 내가 그렇게 고약한 시어머니는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며늘애한테는 꼰대가 아닌 신식이면서 우리 집 양반한테는 한없이 구식이다. 정말로 그 옛날 조선시대 사람처럼 왜 그리도 남편 앞에서 꼼짝을 못 하는지 모르겠다. 오죽하면 딸애도 한 마디 한다. 요즘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한다. 하지만 나도 이제는 내 멋대로 하고 싫다고 속으로는 울부짖으면서도 희한하게 안 된다. 그렇게 고약 떠는 남편인데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그냥 한 마디로 정의되는 것이 무조건 측은지심이 발동하는 것이다. 요새는 뒷모습만 봐도 왜 그리도 불쌍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전처럼 고래고래 소리도 못 지르고 약해지는 힘없는 목소리도 안쓰럽다. 우리 집 양반 말대로 나는 확실히 조금 모자라는 것 같다.
그런데 칠십이라는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아보니까 이상하게도 남편한테 잘하는 여자보다는 고약하게 하는 여자들이 남편으로부터 더 대접을 받고 살더라. 그래서 나는 우리 며늘애 한테도 남편한테 너무 잘하지 말라고 한다. 버릇된다고… 있는 대로 떠 받들어 모시고 살면서도 대우 못 받고 사는 것은 나로 충분한 것 같다.
나는 오래전부터 “밥 한 번 먹자. “라는 말을 참 좋아하면서 살아왔다. 그만큼 밥이 주는 의미가 참 큰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참 잘한 일이 있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다른 사람들한테 따뜻한 밥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고 잘했었다. 우리 집에서 손수 만들어서 대접하기도 하고 바쁘거나 힘들 때는 밖에 나가서 대접하기도 하면서 참으로 오랜 세월을 가족을 비롯해서 남 먹이는 것 하나에는 그야말로 지극 정성을 다했었다.
이런 밥에 대한 지극정성이 미국에서 오랫동안 카페테리아를 운영할 때도 도움이 됐었던 것 같다. 카페테리아라는 것이 거창한 카페가 아니고 우리나라의 브런치 카페 같은 것인데 오피스 빌딩 안에 있는 아침과 점심을 파는 곳이었다. 영어도 잘 못하고 미국 음식에 대한 전문성도 없었던 사람이 그나마 그 계통에서는 나름 성공했었던 비결이 바로 이 음식을 하는 데 있어서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 통했던 것이다.
한국의 브런치 카페하고는 다르게 사무실이 있는 오피스 빌딩이다 보니 매일 같이 내려오는 손님들이 그 빌딩 안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다 보니까 더더욱 신경을 썼었다. 무조건 내 식구 내 가족 먹인다는 생각으로 정말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했더니 아무리 말 안 통하고 문화가 다른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 마음만큼은 통하더라.
이렇듯이 밥이라는 것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매 끼니마다 챙기는 그 밥이라는 것에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는 한 그 부부의 삶은 아무리 재미없게 살더라도 그럭저럭 잘 사는 모습인 것 같다.
현대판 여성이 아니어도 좋다.
고지식하다고 웃어도 좋다.
오늘도 여전히 난 우리 웬수같은 삼식이 아저씨를 위해 밥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