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생산적 외로움 근육'을 키우자

by 개미와 베짱이

생산적 외로움 근육을 키우자. ‘생산적’과 ‘외로움’, 그리고 ‘근육’이 의형제를 맺었다. ‘생산적 외로움 근육’은 인생 백세 플러스 알파시대를 맞이하여 새롭게 탄생한 신조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딘가 어색하다. 삐뚤빼뚤 자기 마음대로 뻗어 나간 나무가지처럼 부자연스럽다. 어느 한 쪽이 상대방에게 제발 같이 있어 달라고 매달리는 듯한 어색함과 불편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까? 외로움의 사전적 정의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다.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 어떻게 해야 생산적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생산적은 생산에 관계되거나 그것이 바탕이 되어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두 단어는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적 외로움 근육’이라는 제목을 떡하니 설정한 의도는 뭘까?


그렇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말이다. 어제 바라봤던 각도로 세상을 또 보게 되면 과거에 자신을 가두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시각을 새롭게 바꿔야 한다. 초점을 조정해야 한다. 외로움은 만병의 근원이다. 그 근원을 생산적으로 변신시켜 건강의 에너지로 활용해 보자는 의미에서 ‘생산적 외로움 근육’이라는 제목을 선택했다. 현대사회는 칸막이 사회이다. 가능하면 있는 것에 더 보태어 촘촘하게 설치하려는 경향이 있다.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코로나로 인한 강제적 사회 거리두기는 외로움을 극한으로 치닫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전 세대에 걸쳐 매년 빠르게 증가하는 1인 가구는 외로움이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오죽하면 영국에는 ‘외로움 장관’이 있을까? 이제는 외로움도 연습이 필요하다. 건강한 외로움으로 승화시키는 연습이 필요한 때이다. 바로 생산적 외로움으로 말이다. 생산적 외로움이 반복되면 튼튼한 근육이 붙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게 된다. 이제 제목을 설정한 이유가 이해가 될 것이다.


생산적 외로움이란 뭘까? 단순한 고립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고독이 독(毒)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라면 믿겠는가?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보다 나은 내일의 자아(自我)로 성장하기 위해 성찰과 자기관리로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태도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혼자’라는 단어에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약하여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흔히 ‘왕따’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생산적 외로움은 그것과 정반대에 당당하게 서 있다.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즐긴다. 자발적으로 혼자 있는 고독을 좋아한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더 늘리려 애쓴다. 더불어 혼자 노는 방법을 터득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로움으로 가득한 낭비로 간주하지 않는다. 자아가 말하려고 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 추스르고 정제하려고 애쓴다.


나이 들면서 생산적 외로움이 더 필요한 이유는 뭘까? 은퇴는 관계의 절벽과 이어진다. 명함을 주고 받으며 맺어진 비즈니스 관계는 내 명함이 없어짐과 동시에 약 70%가, 3개월이 지나면 대부분이 소멸된다. 명함에 새겨진 직책을 내려놓으면서, 상대방이 관심있는 쓰임새의 유효기간이 지났기에 관계 유지가 어려워진다. 더 이상 찾아야 할 이유가 없어지기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자연스럽게 가족과 아주 가까운 소수의 지인만 남게 된다. 왕성한 경제활동 시기와 견준다면 외로움의 끝자락에 불안하게 서 있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렇다고 일부러 관계 유지를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경제적 부유함이 결여되면 그 관계 유지는 정말 어려워진다. 계산이 반영된다. 거래 개념이 등장한다. 피곤해진다. 혼자 노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한 연습을 해야 한다. 글쓰기, 산책, 명상, 등산, 악기 다루기 등 혼자 할 수 있는 것으로 홀로 즐길 수 있는 루틴(routine)을 만들어야 한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오롯이 자신만의 시공간을 말이다. 진정한 어른은 외로움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린아이가 투정 부리듯 직장 후배나 지인들에게 만나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하다. 시간이 남는다는 이유로 관심 없는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은 비생산적 외로움 관리방법이다. 정신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에 보탬이 되는 생산적 외로움일수록 보람과 가치로 나이 들 수 있기에 떳떳하다. 만약 경제적 건강까지 보태진다면 그것은 금상첨화이다. 더움으로 얻어진 것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세상과 이별할 날만 기다리는 사람 마냥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은 바람직한 삶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은 아주 소중하다. 오늘은 자신이 살고 있는 날이자, 사용할 수 있는 날이요. 소유할 수 있는 날이다. 짜투리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자. 시간은 저축도 재활용 안된다. 철저한 소비재이다. 내가 작은 시간들의 주도권을 휘어 잡을 때 혼자 있는 것이 두렵거나 외롭지 않다. 외로움이 즐거움과 재미로 승화된다. 생산적 외로움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50대 초반부터 생산적 외로움 근육을 키워 왔다. 글쓰기, 매일 강의교안 5장 이상 생성하기, 강의(매주 월요일 고정), 섹소폰 연습하기, 매일 달리기와 근력운동, 매주 1회 이상 등산(2026년 도봉 오봉능선 30회 이상 등산, 현재 9회 완료), 매주 텃밭 가꾸기, 싸이클 등 하루가 바쁘고 일주일에 틈새가 별로 없을 만큼 꽉 차 있다. 와중에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과 여럿이 어울리는 시간도 빼 놓지 않고 담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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